결국 1920년대 말이 되면 서유럽의 투표권을 가진 시민들은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최소한 천박한 거짓말이 지배했던 것은 전쟁이 벌어진 1910년대만이 아니라 그 후의 1920년대도 마찬가지였다고 확신하게 된다. 1차 대전이 벌어진 1910년대는 황제, 귀족. 장군, 정치가, 군인 등이 안장에 앉아 세상을 이끈 시대의 마지막 헐떡거림이었으며, 그 결과는 거의 완벽한 파국이었다. 그다음 1920년대에는 전쟁의 여파로 계산꾼들, 경제학자들, 정치가들이 안장에 앉았다. 이들이 내놓은 정책들은 그전처럼 1,000만 명을 죽이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신속한 성장, 안정된 소득, 물가 안정, 완전고용 등을 가져오는 데에는 실패했다.
_ 포효하는 20년대 중 - P252
1910년대와 1920년대만 해도 미국은 굉장히 불평등하고 계층적인 사회였다. 반숙련의 블루칼라 노동자가 고소득자가 되어 소득분배의 위쪽에 자리 잡는다는 생각은 급진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디트로이트에서는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있었다. 또한 사회비평가들과 포드의 모방자들은 이러한 대량생산이 경제전체로 확산되어 디트로이트가 예외가 아닌 일반적 규범이 되는비전을 품고 있었다. 포드는 이제 유명 인사를 넘어서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어느 홍보 담당자가 이런 생산 방식을 ‘대량생산mass production‘이라고 불렀다. 대량생산의 놀라운 생산성은 기술 하나만으로도 유토피아에 이를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전기에 포드는 전설, 신화, 거의 모세와 같은 인물이었다. 올더스 헉슬리 Aldous Huxley는 모호하게 디스토피아적인 소설 <멋진신세계》에서 포드를 이런 인물로 그렸다.
_ 포효하는 20년대 중 - P259
왜 그랬을까? 이전 여러 차례의 경기 하강 때에는 화폐에 대한초과수요의 성격이 유동성 쟁탈전이었다. 사람들은 오로지 현금을얻기 위해 다른 모든 자산을 미친 듯이 팔아치웠고, 보유하고 있던 국채도 마찬가지로 처분했다. 그렇게 국채 가격이 하락하자 국채금리는 상승했다. 중앙은행은 이렇게 국채 금리가 급등하자 경제에 더 많은 현금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해석했다.
_ 대공항 중 - P2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