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탤지어, 어느 위험한 감정의 연대기 - 인간은 왜 경험하지 못한 과거를 그리워하는가
애그니스 아널드포스터 지음, 손성화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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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서전문가‘ 홀로이드의 주장에 따르면, 영국인들은 여행과 탐험을 즐기며 위대한 장사꾼과 상인, 전장으로 나가는 군인들을 배출했다. 이집트에서 발생한 노스탤지어에 관한 홀로이드의 해석은 사회진화론이나 생물학적 본질주의 biological essentialism *에만 빚지고 있지 않았다. 그는 상대적으로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강력하게 응집된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힘의 맥락에서 글을 써 내려갔다. 바로 내셔널리즘nationalism과 애국심 patriotism 이었다.

_ 제국의 느린 자살 중 - P103

한마디로 내셔널리즘은 19세기에노스탤지어가 발흥하게 된 전제 조건이었다. 17세기에도 사람들-특히 스위스인들이 고국을 떠나는 것을 슬퍼하기는 했으나, 19세기 국가 정체성의 본질은 고국이 사람들에게 새로우면서도 강렬한 인력을 발휘한다는 데 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이 고국을 떠났지만,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고국을 통감했다. 아니, 적어도 그 어느 때보다 상상된, 추상적이고 정치적인 고국을 통감했다. - P104

이었다. 유럽인들이 노스탤지어를 경험하면, 그것은 가정교육을잘 받았다는 표시이자 영웅적 애국심의 징후였다. 그러나 똑같은 노스탤지어라도 비유럽인이 경험하면, 그것은 나약함의 표지였다. - P110

19세기에는 억압적인 체제하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강제로 다른 곳으로 옮겨 가 살게 된 사람들이 노스탤지어에 가장취약했다. 노예든, 한시 노예든, 군대에 징집된 남자든, 다른 집으로 보내진 아기든 19세기는 강압으로 가득했다. 그러니 노스탤지어가 융성한 듯 보인 것은 바로 이런 상황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당대인들은 물론이고 이후의 역사학자들도 인정하는 그 병의 특성이었다. 54 - P114

19세기만 해도 향수병과 노스탤지어는 동일한 스펙트럼에 있었다. 하나는 치명적이고 하나는 상대적으로 무해하나, 모두 떠나온 곳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었다. 이 둘의 행보가 갈라진 것은 앰블러 부부가 핼리팩스를 떠난 20세기 초반부터였다. - P120

향수병의 가장 극심한 아픔 가운데 하나는 귀환이 아무리 간절히 바란다고 한들 결과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버사 맥개피건 같은 사람들이 아일랜드로 돌아갈 방도가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가 떠나온 아일랜드가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지 않으리라는 얘기다. 장소들은, 유년기를 보낸 집조차 변한다. 그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아무리 크다고 해도. - P136

이 심리학 연구에서는 향수병이 일종의 작은 애도", 상실 또는 사별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것은 사람에대한 감정인 동시에 장소에 대한 감정이기도 했다. 학생들은 부모와 형제자매, 친구들만 그리워한 게 아니라 집, 학교, 동네, 떠나온 도시도 그리워했다. - P153

그가 강조하는 바에 따르면, 향수병은그 자체로 하나의 질환이며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고 더 제대로 관리되어야 하는 문제다. - P159

정신분석학자 낸더 포더는 20대에 모국인 헝가리를 떠났고죽을 때까지 돌아가지 않았다. 노스탤지어 연구는 그의 생을 관통하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비참하고 가난한 삶을 선사했던 고국이 어쩌다 동화의 나라로 둔갑하는 것일까?" - P162

원래는 일종의 동요 혹은 흥분된 정신 상태로 규정되었던 ‘감정 emotion‘이 기쁨, 애도, 희망, 공포 같은 강한 정신적 또는 본능적 느낌이라는 오늘날의 의미를 획득한 것은 불과 1800년대 초의 일이었다.

_ 태초의 집 중 - P171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람들과 노스탤지어에 빠진 사람들은 하나같이 완벽한 장소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적어도 포더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다만, 유토피아주의자들은 미래를 위해 뭔가 이상적인 것을 구축하려고 하는 반면, 노스탤지어에 빠진 사람들은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_ 태초의 집 중 - P189

노스탤지어에 관한 그의 평가는 코스모폴리터니즘cosmopolitanism (세계시민주의)이라는 상상된 이상에 대한 헌신만큼이나 지방의 벽지(그가 본 그대로)에 대한 반감에 의해 추동되었다.

_ 태초의 집 중 - P196

이것은 17세기에 스위스를 황폐하게 만들었던 전염병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노스탤지어는 살짝 통제가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을 뿐, 정상적인 감정이었다. 임상적이라기보다는 문화적인 문제였다.

_ 태초의 집 중 - P201

로렌츠 차펠베르크는 매일 새벽 4시에 화덕에 불을 지피고 직접 반죽한 브로흐텐 비스킷 500개를 구웠다. 오전 나절이면 옛날 맛을 찾는 사람들이 몽땅 사갈 터였다. 이러한 "진짜 제빵사들은 멸종 위기 업종의 대변자가 아니라 호황 산업의 수혜자였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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