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를 들으면 시간이 사라진다. 사건과 사건의 간격으로 시간을 측정한다면 오리나무의 적하 시간은 단풍나무의 적하 시간과다르다. 이 숲은 저마다 다른 시간의 무늬로 짜여 있다. 웅덩이 표면이 저마다 다른 비의 무늬로 짜여 있듯. 젓나무 바늘잎은 비의 고주파음을 내며 떨어지고 가지는 커다란 물방울처럼 ‘첨벙‘ 소리를 내며떨어지고 나무는 드물게 들리는 와르르 소리와 함께 쓰러진다. 드문것은 우리의 시간 척도가 강의 척도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을 마치 그저 하나의 사물인 것처럼, 마치 우리가 이해하는 것처럼그냥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라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 제각각 나름의 이야기를 가진 순간들만 있을 뿐. - P4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