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절의 극락전(국보 제316호)은 중국 남조시대에 유행하던 하앙식 건축물로 지어진 우리나라 유일의 목조 건축물이라서 건축학을 공부하는사람들의필수 답사처이다. 형태는 정면 3칸, 측면 3칸에 맞배지붕이고 중앙문은 네 짝으로 된 분합문이며 오른쪽과 왼쪽 문은 세 짝으로 된 분합문으로 되어 있다. 건물이 지어진 시기는 조선조 초기로 추정되는 데 극락전은 남쪽을 향하여 지어져 있다. 1m 정도의 높은 기단 위에 세웠고, 전면은 처마를 앞으로 길게 빼내기 위하여 하앙을 얹은 후 이중의 서까래를 가공한 것이다. - P27
동리산파의 중심사찰이었던 태안사는 한때 송광사와 화엄사를 말사로 거느렸을 만큼 세력이 컸으나, 고려 중기 송광사가 수선결사로 크게 사세를 떨치는 바람에 위축되었다. 조선 초기 숭유억불정책에 밀려 쇠락한 채로 간신히명맥만 유지하였는데, 그나마 절이 유지된 것은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의 원당사찰이 된 것에 힘입은 바 컸다. 숙종, 영조 때 연이어 중창해 대가람이 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버리고 남아 있는 것은 일주문과 부도탑들 뿐이다. - P36
해동 여러 산 중에 웅장하기는 두류산(지금의 지리산)이고, 청절하기는 금강산(金剛山)이며, 기이한 명승지는 박연폭포와 가야산 골짜기다. 그러나 단정하면서도 엄숙하고 밝으면서도 깨끗하며 비록 작기는 하지만 가까이 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청량산이다. - P48
천년의 세월을 견디며 앉아 있는 용선대의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95호] 아래 털썩 주저앉아 거대한 분화구처럼 펼쳐진 세상을 바라본다. 관룡산을 병풍삼아 눈 쌓인 작은 산들이 물결치듯 펼쳐나가고, 영산의 진산 영취산을 돌아 계성, 옥천의 자그마한 마을들이 점점이 나타난다. 누군가의 기원이고 간절한 소망인지도 모르는 채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이 꺼진 촛불 아래 눈보라 맞으며 젖어 있고, 여기저기 던져진 동전들이 을씨년스럽다. 어쩌면 우리나라 부처님 중에 이보다 더 외롭게 혹은 드넓게 세상을 바라보는 부처님은 없을 것이다. 또한 반야용선을 타고 극락세계로 향하는 부처님 역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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