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시대, 광기의 사랑 - 감정의 연대기 1929~1939
플로리안 일리스 지음, 한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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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쿠르트와 헬레네가 단둘이 초록색 탁자 위에 다리를 올려놓은 채 테라스에 앉아 있을 때, 천천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자연과 더불어 고요해지자, 헬레네가 쿠르트에게 말한다. 이 모든 것이, 그러니까 저멀리 반짝이는 바다와, 성서의 향기를 내뿜는 무화과나무와, 산봉우리가 서늘한 산들과, 눈이 부신 열매들이 달려 있는 레몬나무와, 부드러운 저녁 바람에 살랑이는 풀, 이 모든 것이 단지 "배경"일 뿐이라고. 쿠르트는 무엇을 위한 배경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헬레네는 이렇게 대답한다. "사랑을 위한." - P190

"나는 내 안에 온전히 나 혼자 있을 수 있고, 그 누구도그 무엇도 들어올 수 없는 공간이 필요하오. 당신의 요구는 이 공간을 위협하고 있소. 최근에 당신은 내 영혼의 속도를 여러 번 망쳐놓았소." - P193

아내가 자기를 존경한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어도 아내가 자기에게 충실한 것은 결코 확신할 수 없었다. - P203

1932년 7월에 헤세는 이렇게 쓴다. "이 잡초 뽑기가 나의 하루하루를 채우고 있다. 이 일을 하면 물질적인 충동과 사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다. 정원 일을 다 해봐야 야채 서너 바구니도안 되기 때문이다. 대신 이 일엔 종교적인 면이 있다.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잡초를 뽑는 것이 마치 제식을 행하는 것 같다. 다만 이 제식은 끝없이 새롭게 반복된다. 서너 이랑이 깨끗해지면 벌써 첫번째 이랑에 파릇파릇 잡초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이렇듯 세상으로부터 도망친 헤세는 그저 계절의 순환에 몸을 맡기고 있다. - P213

"당신은 두 사람을 소유할 권리가 없어. 나는 반쪽의 인간조차 갖지 못했다고." - P216

셀린은 자기와 섹스할 때나 식당에서 식사할 때 모든 것을 아주 한참 동안 연구했다고. 자기 허벅지만큼이나 소고기 등심도 오랫동안 연구했다고. 그러나 실제로 먹거나 사랑을 나누는 행위 자체에서는 거의 기쁨을 느끼지 못했다고. - P224

알마 말러베르펠은 위대한 독일 작가들의 자녀들이 처한 일반적인 상황을 이렇게 요약한다. "토마스 만의 자식들은 게이거나 레즈비언이고, 프랑크 베데킨트의 딸은 타락한 잡년이고, 야콥 바서만의 자식들은 놈팡이와 창녀들이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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