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거기 있었다 - 함정임의 유럽 묘지 기행
함정임 지음 / 현암사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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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정적과 석양. 몽파르나스 묘원을 산책하는 나는 자주 저먼 하늘을 본다. 하늘 이외에 달리 어디를 볼 것인가. 죽은 자들의 빈집들과 그들의 상징들, 그리고 이제는 먼지보다 가볍게 사그라진 그들의 육신을 처음부터 짓누르고 있는 현재의 검고 붉고 흰 묘석들. 영원과 순간의 교차가 파도처럼 휘몰아쳐 메마른 가슴팍을 찔러대고, 나는 지상에서 가장 깨끗한 울음을 울고 싶어진다. 나를 위해서도 저들을 위해서도 아닌 단지 이 세상 혹은 저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위해서 우는 것이다. 울음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다. - P68

열다섯 살 반, 날씬한, 오히려 연약하다고 할 수 있는 육체, 아기 젖가슴, 연한 분홍빛 분과 루주를 바른 얼굴. (중략) 모든 것이 거기에 있었고, 아직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 P69

"사랑에는 휴가란 없어. 그런 것은 있지 않아. 사랑은 권태를 포함한 모든걸 온전히 감당하는 거야, 그러니까 사랑에는 휴가가 없어." 그는 강물을 마주하고서 그녀를 바라보지 않은 채 말했다.
-마르그리트 뒤라스,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 - P78

혼자 있지 못하는 이 크나큰 불행...
-샤를 보들레르, 「고독」, 「파리의 우울」 - P82

이제 당신들의 추억조차 매몰되고
육체는 바닷속에, 이름은 기억에만 남았는가!
-빅토르 위고, 「밤의 태양」 - P88

그날 밤 나는 모래밭에서 잠자다가
시원한 바람에 꿈에서 깨었다.
두 눈을 떠보니
새벽별이 멀리 하늘에서
희미하고 아득하게 빛나고 있었다.
-빅토르 위고, 「별」 - P104

지금은 황혼
나는 문간에 앉아
일하는 마지막 순간을 비추는
하루의 나머지를 찬미합니다.
-빅토르 위고, 「씨 뿌리는 계절」 - P107

행복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사랑이라고, 누군가는 진실이라고, 그리하여 정의라고 말하리라. 졸라처럼.
비 그친 하늘가에 파란빛이 감돌고 있었다.
메당에서의 한나절이 꿈결처럼 여겨졌다. - P120

쏟아지는 빗줄기에 그리도 많은 사물이 살아난다.
비 없는 햇빛이 장미꽃을 피워낼 수 없지 않은가.
연인들아! 그대들은 기다릴지어다.
무얼 그리 한탄하는가.
-마르셀린 데보르드 발모르, 「소녀와 산비둘기] - P127

그 밑에 둥지를 틀땐 하나같이 무명이었지만 유명해지면 더 이상 머물 수 없는 곳. 꿈이 없는 사람들은 머물 수 없는 곳.
꿈이 꿈일 때까지만 잠자리를 허용하는 곳, 몽마르트르,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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