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를 그때 읽었더라면 - 가만히 외우고 싶고 베끼고 싶은 65편의 시
안도현 엮음, 신철 그림 / 모악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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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식은 귀뚜라미를 주워

하현달 눈꺼풀 사이에 묻어주고는

그늘로 덧칠해놓은 창을 닫았다 - P88

반 뼘쯤 모자란 시를 써야겠다 생각한다

생의 의지를 반 뼘쯤 놓아버린 누군가

행간으로 걸어 들어와 온 뼘이 되는 - P99

햇빛 속에
꽃밭에
누워
잠에 빠진
송아지
혓바닥으로
핥아주면
마당을 뛰어다니는
바람 속에
구름 아래
누워
일어나지 않는
송아지 - P108

꽃은 여러 송이이면서도 한 송이

한 송이이면서도 여러 송이

나무도 여러 그루이면서도 한 그루

한 그루이면서도 여러 그루

내가 너에게 다가가는 모습

한결같이

네가 나에게 다가오는 모습 - P118

늘 그럼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

늘 그럼그럼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

늘 그렁 눈에 밟히는 것 - P129

말랑말랑한 곳에 털이 날 무렵

달리는 발바닥에 잔뿌리가 내릴 무렵

손거울에 돋는 꽃눈을 세다 풋잠에 들 무렵 - P138

이제 신발만 벗으면 홀가분할 것이다 - P149

나는 1초에 16번 숨쉬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내 심장은 하루에 10만 번 뛰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 P158

가난한 새들은 너무 높이 솟았다가

그대로 꽝꽝 얼어붙어 퍼런 별이 된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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