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식은 귀뚜라미를 주워
하현달 눈꺼풀 사이에 묻어주고는
그늘로 덧칠해놓은 창을 닫았다 - P88
반 뼘쯤 모자란 시를 써야겠다 생각한다
생의 의지를 반 뼘쯤 놓아버린 누군가
행간으로 걸어 들어와 온 뼘이 되는 - P99
햇빛 속에 꽃밭에 누워 잠에 빠진 송아지 혓바닥으로 핥아주면 마당을 뛰어다니는 바람 속에 구름 아래 누워 일어나지 않는 송아지 - P108
꽃은 여러 송이이면서도 한 송이
한 송이이면서도 여러 송이
나무도 여러 그루이면서도 한 그루
한 그루이면서도 여러 그루
내가 너에게 다가가는 모습
한결같이
네가 나에게 다가오는 모습 - P118
늘 그럼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것
늘 그럼그럼 어깨를 토닥여 주는 것
늘 그렁 눈에 밟히는 것 - P129
말랑말랑한 곳에 털이 날 무렵
달리는 발바닥에 잔뿌리가 내릴 무렵
손거울에 돋는 꽃눈을 세다 풋잠에 들 무렵 - P138
이제 신발만 벗으면 홀가분할 것이다 - P149
나는 1초에 16번 숨쉬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내 심장은 하루에 10만 번 뛰는데
별은 1초에 79개씩 사라진다 - P158
가난한 새들은 너무 높이 솟았다가
그대로 꽝꽝 얼어붙어 퍼런 별이 된다 - P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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