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심각한 딜레마에 놓여 있다. 중국·러시아와 미국·일본 간에 대립이 심화하는 위태로운 상황에서, 대한민국이 선택할 수 있는 모든 지정학적 결정에는 대가와 위험이 따를 것이다. 위험부담 없이 이득만 취할 수 있는 선택지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P590
전략적 모호성이란 경쟁하는 국가 사이에서 입장을 명확히 하지 않은 채 모두로부터 이득을 취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경쟁국들의 사이가 나쁘지 않은 상황에서는 전략적 모호성을 택하는 것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 - P591
주한미군이 존재함으로 인해 중국을 공세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것은 맞지만 한반도 전쟁 발발 시 자칫 원치 않는 지상전에 휘말릴 수도 있다. 중국을 봉쇄하는 정도로 만족하자면 언제나 그랬듯이 주일미군을 강화하는것으로도 충분하다. 고립주의자라면 중국에 대한 억지력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지상전의 리스크를 없애는 쪽에 더 매력을 느낄지 모른다. 미국이 완전한고립주의로 전환하면 태평양의 서쪽은 중국의 품에 들어갈 확률이 높아진다. 일본은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에 대항하려 하겠지만,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확신할 수 없다. - P596
미국이 안보 문제와 경제 문제를 동전의 양면으로 취급하기 시작한 이상 미국에 신뢰할 수 없는 파트너로 인식되는 것은 재앙적일 수 있다. 현재 미국은 국가별 신뢰성과 필요성에 기초해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고 있다. 미국의 이런 노력은 인도와 같이 중국을 대체하는데 필수 불가결한 나라와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신뢰할 수 있는 나라를 중심으로 글로벌 공급망을 재구축하는 양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경제적 효율성과 무관하게 필수전략산업을 무조건 미국 본토로 복귀시키는 리쇼어링 reshoring과 경제적 효율성을 고려해 핵심 산업을 북미 등 인접 우호국으로 복귀시키는 니어쇼어링 nearshoring, 그리고 효율성과 필요성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중요 산업을 우방국에 안분하여 재배치하는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이 다층적으로 진행되고있다. 이때 효율성, 필요성과 함께 반드시 고려되는 요소는 가치를 공유하는국가로서의 신뢰성이다. 신뢰를 잃어 미국의 기술과 시스템, 공급망에서 배제되는 상황은 대한민국이 감당할 수 없다. - P603
이 전략문서는 미국의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핵심 과학기술을 보호하고 혁신 생태계를 육성할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핵심 의제 중 하나로 동맹국과의 협력을 꼽았다. 이미 미국은 통합억지integrated deterrence란 개념 아래군사과학기술의 연구·개발은 물론 전투함이나 군수물자의 생산을 위해서도 동맹국과 협력하고 있다. 그런데 2023년 7월 현재 이 전략에 따른 협력대상에는 대한민국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미국에 있어 한미동맹은 중요하지만, 최상급 동맹은 아니라는 뜻이다. - P604
다극화된 세상의 국제무역은 자원부국과 거대시장을 보유한 국가가 지배하고, 시장 논리 대신 중상주의적 경제정책이 득세하게 될 수 있다. 해상안보도 약화 되어 주요 항로와 면하는 연안국의 입김은 강해질 것이고, 자유무역은 그만큼 제약될 것이다. 미국의 세계 패권이해체된 미래의 모습은 대한민국에 그다지 희망적이지 않다. - P608
미국이 한반도 방위를 포기한다는 ‘가정적 상황‘을 전제로 한다면 이 정도 수준의 양해는 충분히 수용될 수 있을 것이다. 주한미군의 전력 축소나 전면 철수가 대한민국의 핵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는 것은 미국에 핵우산을 유지하도록 압박하는 효과가 있음은 물론이고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북한에 대해서도 현실적인 억지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핵무장 가능성을 공식화함으로써 오히려 핵무장이 필요한 상황을 회피할 수 있는 것이다. - P613
냉전기가 끝나고 팍스 아메리카나의 시대가 오기 전까지 남북 교류가 요원했던 것처럼, 어차피 패권 전환기라는 국제정세의 거대한 흐름이 바뀌기 이전까지 남북 교류 회복의 기회는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니 패권 전환기가 끝날 때까지는 한 손에는 억지력을, 다른 한 손에는 소통이란 끈을 쥔채 상황관리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 P617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갈등의 실체는 ‘진영 갈등‘이라고 여겨진다. 일단 진영에 소속된 개인은 부족주의와 피아식별이라는 원초적 본능에 따라 매사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모습을 보인다. 여당일 때 지지하던 정책을 야당이 되자마자 비난하고, 야당일 때 반대하던 정책을 여당이 되고선 옹호하는 코미디는 늘상 있는 일이다. 지지자들도 마찬가지다. 지지하는 정당이 여당일 때 지지하던 정책을 정권이 바뀌자마자 비난하고, 야당일 때 반대하던 정책을 정권이 바뀌었다는 이유만으로 옹호한다. - P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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