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송세월 - 초판한정 김훈 문장 엽서 나남신서 2168
김훈 지음 / 나남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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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평등, 해탈, 초월 같은 개념어들이 지향하는 궁극의 상태는 형용사적 세계일 것이다. ‘가난함‘을 ‘빈곤‘으로 이해하는사람은 가난을 모른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겪는 삶은 빈곤 poverty이 아니라 가난함 being poor이고 차별받는 사람이 원하는세상은 평등 equality이 아니라 평등함 being equal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아니지만, 해탈한 도인들의 자유는 동사나 명사의 세계가 아니라 중생들은 알 수 없는 어떤 형용사적 세계일 것이다.

_ 형용사와 부사를 생각함 중 - P147

노래는 노동에 신명을 불어넣는다. 노래하면서 노동하는 사람들은 노동으로부터 소외당하지 않고 노동 안에 인격을 존시킬 수가 있었다. 이제 노동은 기계화되었고, 노동과 노래는 분리되었다. 노래는 ‘보존‘의 대상이다. 금산리민요보존회는 분단의 사이를 흐르는 강가 마을에서 섞이고 합쳐지는 삼도품의 노래를 불러서 보존하고 있다. ‘헤이리소리‘가 그 노래이다.

_노래는 산하에 스미는구나 중 - P152

하루 종일 책을 읽고 저무는 저녁에 허균, 차천로, 김득신의독서를 생각하는 일은 슬프다. 독서는 쉽고 세상을 헤쳐 나가기가 더 어렵다고 말할 수는 없다. 세상살이는 어렵고, 책과 세상과의 관계를 세워 나가기는 더욱 어려운데, 책과 세상이 이어지지 않을 때 독서는 괴롭다.

_ 난세의 책읽기 중 - P157

경제학원론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내가 살고 있는 거리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 거리에서도 ‘보이지 않는 손‘은 작동되고 있지만, 그 작동의 결과는 자유와 조화가 아니고 억압과 구속이다. 이 억압과 구속은 밥을 사 먹는 사람과 밥을 팔아서 밥을 먹는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된다.

먹기의 괴로움 중 - P163

사람은 손과 팔을 내밀어 사랑을 한다. 사랑에는 몸과 말이 모두 필요하다. 이것은 해 본 사람은 다 안다.
나는 요즘에는 연장을 사용하는 일은 하지 못하고 연장에 기름만 치고 있다.

_ 주먹도끼 중 - P176

생산과 취사에 관련된 연장들은 그 연장을 사용하는 인간의동작을 표현하는 동사를 거느리고 있다. 언어는 행위에 바탕하고, 연장이 언어와 동작을 연결시킨다.
이 동사들은 ‘빨다, 찧다, 파다, 뚫다, 훑다, 썰다, 다지다, 갈다, 짜다, 헐다, 조이다, 고르다, 까불리다, 들이다, 감다, 말다...
들인데, 연장과 더불어 살아 있는 언어다. 민속박물관은 활물로가득 차 있다.

_ 박물괌의 똥박아지 중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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