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극장
이성아 지음 / 강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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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해의 말 한마디 없이 가정을 파탄 내는 어른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 그 무력함만큼 절망했을 것이다. 그건 어쩌면 아이에게 각인된 최초의 배신이며 폭력이리라. 하루아침에 달라져버린눈앞의 세상에, 은지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녀는 어쩌다 미국까지 가야 했을까. 전남편의 지속적인 괴롭힘에 대한 이야기를 엄마로부터 들었지만, 듣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그건 마치 세상 사람들의 입방아에 돌고돌아온 나의 추문처럼 쓰라렸다. 그 무렵, 나는 그녀를 나의 분신처럼 느끼고 있었다.

_ 스와니 강 중 - P75

세상은, 낮과 밤, 빛과 그늘, 그리고 시차로 나뉘어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태양을 공유하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우리는 이어져 있는 거라고, 서로를 끊임없이 의심하라고 아무리 무섭게 닦달해도 신비롭게 이어진 인연마저 끊을 수는 없다고,
단 한 번도 본 적 없지만 보지 않았다고 모르는 건 아니라고,
모른다고 없는 건 아니라고.
하여 그녀는, 그녀의 지워지지 않는 숫자 1은, 우리 모두라고.

_ 스와니 강 중 - P87

그가 목숨을 걸었던건 인간으로서 죽고자 함이었다.

_ 천국의 난민 중 - P124

중국에 있을 때의 엄마는 중국말이 서툴렀고 한국에서의 엄마는 한국말이 서투르다.

_ 그림자 그리기 중 - P137

평소에는 너에게 관심도 없던 아이들이다. 너는 투명인간이니까. 아니다.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지우기 시작한 건, 네가 먼저다. 너는 아이들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아이들을 하나씩 지우는데, 이상하게도 정작 지워지는 건 너 자신이다. 네가 국어책을 읽을 때 쿡쿡거리며 웃던 아이, 게임기를 자랑하며 줬다 빼앗던 아이, 쓰레기 냄새가 난다며 코를 막던 아이, 네가 입은 옷을 보고 키득거리던 아이, 네가 뭘 물어봤을 때마치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 딴청을 부리던 아이, 네 말투를 흉내 내며 네 주위를 빙빙 돌던 아이, 그 아이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며 너는 점점 그림자가 되어간다.

_ 그림자 그리기 중 - P142

너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의심은 너의 유일한 힘이다. 그것만이 지금껏 너를 지켜주었다고, 너는 생각한다.

_ 그림자 그리기 중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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