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세계 - 6가지 물질이 그려내는 인류 문명의 대서사시
에드 콘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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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 일어나면 소금은 무기로 탈바꿈한다. 미국 독립전쟁 시기에 영국군은 미국의 항구들을 봉쇄하고 대서양 연안의 소금공장을 목표로 삼았다. 미국 남북전쟁 동안에 북부군은 남부로 가는 군함에 실린 식량과 소금을 가로챘다. 북부군은 제염소를 찾아 파괴했으며, 남부군이 탈환하더라도 사용할 수 없도록 펌프를 망가트렸다. 그들도 남부군과 싸우면서 굶어 죽어가고 있었으면서 말이다.

_ 소금 중 - P166

그러나 소금은 사람들이 흔히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물질이다. 소금은 경제적 교역의 기반이고 권략의 수단인가 하면 저항의 아이콘이었다.

_ 소금 중 - P173

소금을 만드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바닷물을 증발시켜서 소금을 얻는 방법으로, 수천 년 전 볼비에서 신석기시대 사람들이 활용했다. 두 번째 방법은 땅에서 암염halite을 캐내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암염 광산은 알렉산드로스 대왕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파키스탄의 케우라 소금 광산Khewra Salt Mines 이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케우라 소금을 만났다. 케우라 소금은 오늘날 히말라야 핑크솔트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케우라 소금광산은 실제로 히말라야산맥 기슭에서 322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점에 있으므로, 이런 식으로 뻔뻔하게 이름을 붙여서 마케팅하는 것은 런던의 템스강에서 물을 떠다가 요크셔데일스 샘물이라며 판매하는 행위와 비슷하다.

_ 소금 중 - P177

소금을 만드는 세 번째 방법은 지하로부터 일종의 소금물을 추출하는 것이다. 일반적인 바닷물의 염도는 3퍼센트 정도인데, 이 소금물의염도는 무려 30퍼센트다. 일명 ‘용해채굴법solution mining으로, 어떤 의미에서는 광부가 직접 들어가서 소금을 채굴하는 방식과 별반 다르지않다(용해채광법이라고도 한다). 단지 굴착기나 다이너마이트 대신 원격호스를 사용하여 압축된 물을 퍼올린다는 점만 다를 뿐 여전히 같은 암염충을 채굴한다.

_ 소금 중 - P178

달리 말하자면, 채굴 과정은 과학인 동시에 예술의 영역이다.

_ 소금 중 - P180

곧 리버풀은 브리스톨과 함께 노예 무역의 주축 항구로 부상했다. 이 수치스러운 삼각 무역은 영국이 아프리카로 상품을 가져가고, 노예를 미국으로 데려가고, 담배와 설탕을 대금으로 받아서 영국으로 가져오는 식이었다. 리버풀 항구는 체셔-리버풀-랭커셔를 잇는 또 다른 삼각 무역의 무대이기도 했다. 랭커셔 탄광에서 나오는 석탄으로는 체셔의 소금공장을 가동했다. 소금을 가득 싣고 리버풀을 떠난 배들은 아일랜드, 로테르담, 발트해 국가들을 향해 떠났고 돌아오는 길에는 철, 목재, 삼, 아마 등을 싣고 왔다. 리버풀의 배들은 프러시아, 네덜란드, 캐나다, 러시아로 갔다. 온 세상이 체셔 소금, 일명 ‘리버풀 소금‘에 중독되기 시작했다.

_ 소금 중 - P182

그 많은 소금은 어디에 쓰일까? 감자칩에 뿌리는 소금은 시작에 불과하다. 이 책에서 염화나트륨을 6대 물질로 부르는 이유는, 소금이 오늘날 화학 산업과 제약 산업의 기반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체셔의지하 광산에서 퍼올린 소금물 중 일부만이 식염으로 사용되고, 나머지는 파이프를 타고 공장들로 운반되어 우리의 생존을 돕는 제품들로 변신한다.

_ 소금 중 - P185

클로르알칼리 공정의 과실 덕분에 우리는 깨끗한 식수와 청결한 생활을 누릴 수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비누와 세정제는값비싼 사치품에서 대량생산품으로 전환되었는데, 이것이 얼마나 굉장한 혁명이었는지 자칫하면 간과하기 쉽다. 지난 200년 동안 값싼 비누와 위생 제품의 보급은 그 어떤 혁신보다 우리의 기대 수명을 늘려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 소금이 있다.

_ 소금 중 - P187

소금물을 퍼내는 장소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체셔 마을 노스위치에 가면, 소금 디아스포라의 또 다른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한때 ICI가 운영했던 공장을 현재는 인도 회사 타타 케미컬 Tata Chemicals이 운영하고 있는데, 타타 케미컬은 브리티시 솔트의 모회사이기도 하다. 과거에 간디에게 비폭력 저항운동의 원인을 제공했던 체셔 소금이 현재는 인도 회사에 의해 생산된다니, ㅁ ㄹ질 바깥의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아이러니이다.

_ 소금 중 - P189

화학혁명은 어쩌면 산업혁명에서 가장 간과되어 온 측면이 아닐까. 화학제품의 발달은 강철의 대량생산보다 우리 생활을 더 많이 바꾸어놓았다. 화학혁명은 더 많은 목숨을 구했고, 식수를 정화했으며, 주택을 청결하게 했고, 박테리아와 세균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었다. 세균이 왜 위험한지 그 본질을 제대로 깨닫기도 전에 말이다. 우리는 제철 산업과 증기 산업의 개척자들은 높이 평가하면서도 니콜라 르블랑이나 에르네스트 솔베이 같은 초창기 화학공업의 거인들은 쉽게 잊는다. 제철과 광산업을 기리는 박물관은 많이 있지만 화학적 유산들은 대부분 하얗게 지워졌다.

_ 소금 중 - P191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유럽에서 비상용 가스를 저장한 장소도 이와 비슷한 소금 동굴들이었다. 일종의 에너지 뱅크로 삼아서 비상용 가스를 저장해 두었다가 시베리아에서 가스 공급이끊길 경우 유럽 국가들이 겨울을 나기 위한 에너지로 사용하는 것이다. 미국 에너지부는 ‘전략 비축유‘를 텍사스주와 루이지애나주 지하의 오래된 소금 동굴에 원유를 보관한다. 이러한 장소들은 새로운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자연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저장하고 대기 중 온실가스를 지하에 집적하는 공간도 있다. 태양에너지와 풍력에너지, 수소 같은 친환경 연료들을 보관하는 장소도 있다. 세계의 화학 산업이 문자 그대로 암염 위에 세워진 것처럼, 내일의 친환경에너지 산업도 소금 매장층 주위로 집결할 것이다. 우리는 이만큼이나 소금을 믿는다.

_ 소금 중 - P197

FCAB는 매우 특별한 철도이다. 본격적인 이야기를 하기 전에 먼저이 철도 부설한 목적부터 알아보자. FCAB는 사막에서 나오는 특별한 화물을 항구까지 수송하기 위해서 부설되었다. 그 화물은 소금의 일종인 질산칼륨saltpetre (초석)인데, 두 가지 의미에서 폭발적이었다. 질산칼륨을 뿌리면 식물이 건강하고 빠르게 자란다. 그러나 더 중요한 점은 전쟁의 승리를 결정 지은 화약 fire drug의 핵심 성분이 바로 질산칼륨이라는 사실이다.

_ 소금 중 - P202

19세기 중반, 미국과 유럽은 이 모든 것을 뿌리째 뒤흔드는 페루 해안가 섬들의 소식을 들었다. 친차 제도Chincha Islands는 원래 부비새, 가마우지, 펭귄 등 주로 새들이 사는 바위섬이었다. 수천 년에 걸친 새들의 배설물이 바위에 쌓여서 그 두께가 30미터를 넘을 지경이었다. 새들의 배설물은 인산염 phosphate과 질소 화합물nitrogen compound을 풍부하게 함유한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천연비료였다.
물론 새들의 배설물은 전문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 중국의 지하실이나 갠지스강의 진흙에서 발견된 질산칼륨과는 다르지만, 질소를 함유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질소는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핵심 요소로, 식물들이 광합성할 수 있도록 엽록소를 만드는 일을 돕는다. 탄소, 수소, 산소와 함께 단백질을 만드는 아미노산의 핵심 원소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세포라는 집을 이루는 블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_ 소금 중 - P204

칼리치는 전통적인 질산칼륨과는 약간 다르다. 질산칼륨이 아닌 질산나트륨 sodium nitrate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차제도가 흥망성쇠를 겪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세기, 화학자들은 질산나트륨을 이용하여 중국식 화약의 변종을 더 폭발적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질산나트륨은 질산, 니트로글리세린 nitroglycerine, 다이너마이트로 탈바꿈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고성능 폭약 덕분에 알프레드 노벨AlfredNobel은 세계 최고의 부호 대열에 합류할 수 있었다. 친차 제도의 구아노 무역이 종식되고 수십 년간 남아메리카의 질산염은 세상에서 가장중요한 원료 중 하나가 되었다.

_ 소금 중 - P207

만약 하버-보슈 공정이 개발되지 않았더라면, 1차 세계대전은 훨씬빨리 끝났을지도 모른다.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연합국은 칠레 질산염으로 만든 포탄을 독일에 퍼부었고, 독일을 비롯한 동맹국은 합성질산염으로 만든 포탄으로 응수했다. 참호, 탱크, 대포, 몇 달간 거의이동이 없는 전선으로 상징되는 이 새로운 유형의 전쟁은 부분적으로는 과학, 산업, 폭발력을 가진 소금으로 만든 무기가 빚어낸 결과였다. 프리츠 하버의 오명은 염소 가스의 개발로 더욱 더럽혀졌다. 그는 이프레의 두 번째 전투에서 가스 살포를 직접 감독했고 그 결과 수천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끔찍한 죽음을 맞이했다.

_ 소금 중 - P213

들판에 질소를 뿌리고 나면 그 절반 정도는 농작물이 아닌 공기와물 속으로 흘러든다. 땅속으로 스며들었다가 개천과 강으로 흘러들고, 물속에서 수중 생물을 질식시키는 거대한 조류 번식을 일으킨다. 프리츠 하버의 발견으로부터 한 세기가 흐른 지금, 세상은 무제한에 가까운 질산염 공급이 불러온 부작용을 잘 알게 되었다.

_ 소금 중 - P215

또한 폴리할라이트는 대부분의 비료처럼 인위적으로 가공하지 않고, 단순히 땅에서 파내어 분쇄해서 판매하기 때문에 유기농 인증을 받을 수도 있었다. 다른 비료(특히 질소 비료)는 제조 시막대한 에너지가 사용되지만, 그에 비하여 폴리할라이트는 매우 적은탄소 발자국을 남긴다.

_ 소금 중 - P222

금을 채굴할 때금광석의 99.99퍼센트 이상이 폐기되는 것에 반해, 폴리할라이트는 암석 1톤이 곧 제품 1톤이 된다. 여기에 견줄 수 있는 유일한 광물은 물론 소금뿐이다.

_ 소금 중 - P228

물질 세계의 특징 중 하나는 어디서도 사람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않는다는 점이다. 영국의 정제 공장이든, 실리콘 웨이퍼를 반도체 칩으로 가공하는 대만의 불 꺼진 반도체 공장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이곳의 노동자 대부분은 높은 통제탑에서 스크린을 응시한다.

_ 소금 중 - P230

그럼에도 우리가 계속해서 소금길을 걷는 데는 이유가 있다. 많은 화학공장과 제약 공장이 여전히 암염층 위에 자리 잡은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고대 중국의 <염철론>이 여전히 유효한 데도 이유가 있다. 역사의 대부분의 시간 동안 소금을 지배한 자가 곧 세상을 지배했기때문이다.

_ 소금 중 - P233

세상 모든 것이 강철로 만들어지진 않지만,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이 강철로 제작한 기계로 만들어진다. 부유한 선진국에서는 이런 생각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철강업은 지저분하고 에너지 집약적인 산업이기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제철소를 폐쇄하고 국내 생산을 줄이는 추세이며, 탄소 배출이 덜 문제시되는 나라에서 완제품을 수입한다. 그들은 방열복을 입은 노동자들이 뜨거운 쇳물을 용광로에 집어넣는 사진을 보면서 철강업은 이제 과거의 일이라고들 말한다.

_ 철 중 - P241

만약 인간이라는 존재가 서로 협력하고 도구를 사용하는 능력으로 정의된다면, 철과 강철은 우리를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핵심이다. 모래가 세상을 직조하는 실이고, 소금이 세상을 변형하는 마법의 재료라면, 철은 우리가 무언가를 할 수 있게끔 만든다. 장소를 이동하는 일, 건물을 짓는 일, 상품을 만드는 일, (이건 문제지만) 서로를 죽이는 일을가능하게 한다. 철과 강철은 이 모든 일을 아우르는 공통 맥락 속에 있다.

_ 철 중 - P241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또 다른 문제를 안겨준다. 강철 생산 과정에서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7~8퍼센트가 배출된다. 만약 모든 사람이 선진국처럼 1인당 15톤의 강철을 소비하기를 바란다면, 이 합금의 전 세계 재고를 1200억 톤으로 늘려야 한다. 이것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강철을 생산해 온 양의 거의 네 배에 해당하는 수치다. 하지만 온실가스 배출 없이 강철을 생산하는 방법은 여전히 실험 단계이고 비용도 많이 들기 때문에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탈탄소와 개발, 이 두 가지 목표가 서로 충돌하는 것이다. 국가가 더 부유해지고 번영할수록, 서양의 발전 과정에서 콘크리트를 쏟아붓고 강철로 만들어온 것들을 부정해야 할까?

_ 철 중 - P248

아조우스탈을 비롯한 우크라이나 제철소들이 전 세계네온의 절반을 공급하고 있던 것이다. 츠키티슈빌리의 폐쇄 조치 뒤, 전 세계에서는 네온 부족이 발생했다.

_ 철 중 - P257

그러나 철은 소금이나 유리와 마찬가지로 세상의 기반을 형성하는물질이다. 고대에도, 산업화 시대에도 그랬다. 강철은 과거의 기술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현재에도 여전히 중요하며 강철 없이는 미래를 건설할 수 없다. 그런데도 오늘날 강철의 생산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중세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 P259

석탄을 투입하는 목적은 단지 용광로를 가열하는 것뿐만 아니라 용광로 내부에서 벌어지는 매우 중요한 화학반응을 촉진하기 위해서이다. 철광석은 산화철을 풍부하게 함유한 암석으로, 본질만 놓고 보면알갱이 형태의 녹rust이라고 할 수 있다. 철광석을 금속으로 탈바꿈하려면 산소와 철을 분리해야 한다. 이 거대한 용광로가 여기 있는 궁극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철광석에서 분리된 산소와 석탄에서 나온탄소가 결합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서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 용광로의 최종 산출물은 용광로 측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철광석혹은 나중에 배출되는 슬래그가 아니라 이산화탄소이며, 그 양이 엄청나다.

_ 철 중 - P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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