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세계 - 6가지 물질이 그려내는 인류 문명의 대서사시
에드 콘웨이 지음, 이종인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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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탄소 배출 문제가 해결된다면 콘크리트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물질 세계의 주력 제품일 것이다. 전기자동차, 풍력발전 터빈, 태양광 패널 등이 아무리 환경친화적이라고 해도 나름의 환경 발자국을 남기듯이 가장 환경친화적인 시멘트 또한 여기서 자유롭지 않다. 환경친화적인 시멘트를 만들 때도 물이 필요하다. 석회석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모래, 그것도 딱 맞는 모래가 필요하다. 그러자면 대지에서 더 많은 모래를 파내야 하고, 생태계에 또 다른 위험을 안긴다. 이런 식으로 물질 세계의 불가피한 딜레마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_ 모래 중 - P110

암석은 오랜 세월에 걸쳐 마모되지만, 모래는 순환하는 과정 동안 원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다. 그것은 물질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놀라운 여행이다.

_ 모래 중 - P114

실리콘이라면 모래, 돌 혹은 콘크리트의 성분 아니던가. 실리콘은 경이로운 물질이다. 유리가 될 수 있는 독특한 성질을 갖고 있고, 콘크리트가 되어 건물을 지탱할 정도로 단단하다. 주기율표의 다른 원소들과 차별화된 전기적 특성을 갖고 있어서 반도체가 될 수 있다.

_ 모래 중 - P115

오늘날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들은적혈구보다 1,000배 더 작고 코로나19 바이러스보다도 작다. 코로나19바이러스 하나에 트랜지스터 4개가 들어갈 정도인데, 각각의 트랜지스터는 바이러스의 중심에서 내뻗은 막대기 모양의 덩굴손인 스파이크단백질과 비슷한 크기이다.

_ 모래 중 - P117

세라발에서 나오는 석영은 흔하진 않지만 굉장히 희귀한 것도 아니다. 노르웨이, 러시아, 중국, 튀르키예, 이집트에도 석영암맥이 있다. 세라발 석영은 눈처럼 희지만, 로칼린이나 퐁텐블로 등의 모래 광산에서나오는 모래보다 실리카 함량이 약간 낮은 편이다. 물론 실리카 함량이 전부는 아니며, 실리콘메탈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형태이다. 우덴-웬트워스 기준에 따르면, 여기서는 모래가 아니라 야구공보다 약간 더 큰 돌덩어리를 살펴본다.

_ 모래 중 - P121

전 세계에서 오직 소수의 학자만이 이러한 공급망의 복잡한 원리를 알고 있는데, 그중 독일 학자 라이너 하우스 Riner Haus는 이렇게 말한다. "이것들은 대형 용광로이고, 그 안에는 부글부글 끓는 이산화탄소 대류가 일어납니다. 만약 모래를 사용하면 필터를 통해 빠져나가기 때문에 용해될 수가 없겠죠. 그러므로 주먹 크기의 석영 덩어리가 필요한겁니다." - P123

순도 99.999999퍼센트의 실리콘은 숫자 9가 여덟 개 들어가는데, 이는 다결정 태양광발전 등급의 폴리실리콘이다. 9가 아홉 개인 순도99.9999999퍼센트의 실리콘은 단결정 태양광발전 등급의 폴리실리콘이다. 실제로 어마어마한 폴리실리콘이 태양광 패널로 쓰이는데 대다수가 중국에서 생산된다. 그러나 주목할 점은 중국이 아직도 실리콘세계의 마지막 관문인 반도체 등급의 폴리실리콘을 생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반도체 등급의 폴리실리콘은 순도가 99.9999999퍼센트에 달하는데 순수 실리콘 원자 10억 개 중 불순물 원자가 딱 하나인 수준이다.

_ 모래 중 - P126

닐이 가장 신경 쓰는 나라가 어딘지는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지난 20년간 중국은 실리콘 업계의 많은 부분에서 주도적 위치로 부상했다. 오늘날 실리콘 생산량의 90퍼센트가 컴퓨터 칩이 아닌 태양광 패널에 사용된다. 그 생산지는 미국 동부 해안이 아닌 중국인데, 여기에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첫째, 유럽의 실리콘은 대체에너지, 즉 수력발전으로 생산되지만 중국의 실리콘은 석영을 폴리실리콘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필요한 엄청난 에너지를 석탄에 의존한다. 실리콘 생산은 생각보다 지저분한 일인데, 중국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둘째, 중국의 실리콘 제조사들, 특히 신장웨이우얼 자치구에 위치한 기업들은비인간적 노동 환경에서 제품을 생산한다.

_ 모래 중 - P131

세라발의 눈처럼 희고 순수한 백석영을 다른 곳에서도 찾는 게 어렵다면, 스프루스파인만큼 순수한 석영을 찾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고할 수 있다.

_ 모래 중 - P133

화학물질이 없는 반도체 공장은 본질적으로 쓸모가 없다. 화학물질 없이는 트랜지스터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_ 모래 중 - P137

브래그 반사경을 만드는 법은 업계 비밀로 철저히 지켜지고 있다. 자이스의 설명에 따르면 이 거울은 50킬로그램의 실리콘 덩어리를 갈아서 만들어지는데, 로봇이 이온 빔ion beam을 쏘아서 거울 표면을 광내고 조정한다. 한 ASML 엔지니어는 브래그 반사경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인간이 만든 것 중에 가장 매끄러운 구조물일 겁니다." 거울을 미국 국토 크기로 확대하더라도 가장 많이 튀어나온 요철의 높이는 0.5밀리미터도 되지 않을 것이다. 다층 거울에 반사된 13.5나노미터 극자외선의 파장을 이용해 웨이퍼에 복잡한 설계 회로를 새긴다. 놀랍도록 완벽한 실리콘 웨이퍼가 기막히게 평평한 유리에 조각되는 이 모든 과정은 그야말로 SF소설에 나올 법한 일이지만, 판타지적 요소는 찾아볼 수 없다. 여기 실리콘 공급망의 중심에는 1차세계대전 동안 영국의 고무를 얻기 위해 독일이 어쩔 수 없이 내주었던 쌍안경용 유리를 제조한 바로 그 회사 자이스가 있다.

_ 모래 중 - P141

강철 생산, 시멘트, 제조업, 유통업, 심지어 소셜미디어에서까지 중국은 다른 국가들을 따라잡거나 능가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반도체 분야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복잡도와 가치가 낮은 저급 실리콘 칩에서는두각을 드러냈지만, 반도체 설계에서는 아직 선두를 뒤쫓는 처지다. 정부에서 엄청나게 많은 돈과 노력을 쏟아부었지만 여전히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대만과 중국을 갈라놓는 것은 해협만이 아니라 기술의 심연이기도 하다. 이 격차가 양쪽의 관계를 더욱 긴장시킨다. 2019년 모리스 창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더는 평화롭지 않기 때문에 TSMC는 전략 지정학적 관점에서 극도의 중요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_ 모래 중 - P143

이 문제는 더 생각해볼 만하다. 세계를 이끄는 초강대국 미국과 중국이 반도체 공급망의 본국 회귀, 즉 리쇼어링 reshoring을 점점 더 소리높여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조 바이든은 반도체 산업에 투자를 촉진하는 법안을 입법하면서 반도체 제조사들의 미국 복귀를 꾀하고 있다. 시진핑은 ‘중국제조 2025 Made in China 2025‘라는 정책을 수립하여 복잡한 기계부터 반도체까지 제조업 전반에서 중국이 우위를 점하고 자급자족을 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반도체의 기나긴 여정이 단 하나의 국가 안에서 모두 이루어진다는 게 정말 가능할까? 다른 국가들의 회사나 수입품에 의존하지 않은채?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 P147

그러나 유물은 발굴 작업의 시작일 뿐이었다. 땅속을 깊게 파고들수록 더 많은 것을 발견했고 더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앵글로-색슨 공동묘지(630~670년) 아래에는 로마식 건축물(70~140년)이있었고, 그 밑에는 철기시대 정착촌(기원전 200~기원후 1년)이, 더 아래쪽에는 신석기시대 유적지(기원전 3800~3700년)가 있었다. 스티브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을 할수록 놀라운 발견이 쏟아졌다.
다양한 시대의 유물들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바로 소금이었다. 사람들은 로마시대와 철기시대, 그리고 신석기시대에 이미 소금을 만든 것으로 보였다. 어째서 소금일까? 왜 이곳에서 만들어졌을까?

소금 중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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