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아가 공병우의 경력 형성 과정은 일제강점기와 광복 직후 한국 의학과 의료의 단면을 보여준다. 공병우가 의학강습소를 졸업하지 않고도 의사가 될수 있었던 것, 연고가 없었지만 경성의전과 경성제대에서 실험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 경성을 벗어나지 않고도 나고야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을 수 있었던것 등은 모두 오늘날 한국의 의료 제도에서는 일어나기 어려운 일들이다. 이와같은 성장 경로가 가능했던 것은 의사검정시험 제도, 일본식 강좌 체제, 제국대학의 네트워크 등 일제강점기 식민지 의료 체제의 특징들 때문이다. 또한 공병우가 안과 진료로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의료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등 당시 의료 현실을 반영한 것이고, 그가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갖고 사회문제를 논하는 명사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일제강점기 의료인의 위상이 높았던 역사적 맥락을 반영한다. - P144
기술혁신의 궁극적인 원동력은 발명가 한두 명의 창의력이라기보다는 그 사회의 신기술에 대한 수요와 지원이다. 사회가 그 기술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 또 그 기술이 태어날 수 있도록 인력과 자원을 투입할 수 있는지에 따라 새로운 기술이 그 사회에 자리잡을 가능성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공병우 타자기의 성장은 이런 맥락에서 입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 P1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