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한 먼지들의 책방 - 정우영 시집 창비시선 498
정우영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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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초꽃만환해요


아침에 집 나간 사람이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아요.


대문은 삐걱거리며 고개 내밀어 골목길 더듬고
창문들은 한사코 어긋나게 틈을 벌려놓지요.
불이란 불은 다 꺼져 어둠에 뭉개졌지만
다들 집 앞 가로등 피어날 때를 숨죽여 기다립니다.
밤이 깊어도 귀가하지 않는 사람을
애타게 부르던 이는 또 어디로 갔을까요.


형체도 없는 그림자들 슬금슬금 모여드는지
정신 나간 가로등이 흐릿하게나마 깜박거립니다.
욕실의 눈과 귀는 온통 가로등에게 쏠리고
부엌이 부스럭거리며 깨어나 헛밥을 안치네요.


바람의 기척조차 메말라 기울어지는 빈집.
망초꽃들만 돌아와 눈 시리게 번져갑니다. - P28

쭈글치고 앉아 한분 한분 토닥였다.
사느라 애썼다고, 가서 편안하시라고.
꽃이라고 하여 어찌 고통이 없겠는가.
땅은 썩어가고 햇볕이 불덩어리라면.
나오느니 신음인데 하염없이 목은 탄다면.

_ 동백이 쿵, 중에서 - P32

소름이 온몸을 좌악 훑더니
슴슴함이 홀라당 빠져나간다.
슴슴함도 불온만큼은 감당할 수 없다는 듯이.

_ 천하무적 중에서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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