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을 먹다 - 어머니들의 리틀 포레스트
이혜숙 지음 / 글항아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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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익으면서 소리를 냈다. 멀리 비 오는 소리, 들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 혹은 낙숫물 소리가 소란스럽게 났다가 그치고얼마 지나면 술이 되었다. 여름에는 짧고 겨울에는 길었다.
"잘 익으면 술이 용수 자리는 내주는 것이다."

_ 살림살이 중 - P137

이가 없는 어른이 계신 집은 음식 할 때 국물에 비중을 두었다. 무엇이나 자박자박물컹하게. 고우고 졸여서 소화력 약한 어른을 봉양했다. 가지는 껍질이 질기고 오이는 잇몸을 선뜩하게해 호박만 한 것이 없었다.

호박 중 - P140

봄에 엄마는 다시 싱건지 항아리를 열었다.
흰 막이 끼었을 때도 있지만 무는 더욱 매끈하고 투명해 보였다. 길게 가운데를 자르고 다시 잘라 얇게 썰어 고춧가루 파참기름에 무치면 묵은 맛이 덜어지고 새콤하고 시원한 맛이 되었다. 채반에 궁글려두었다가 된장에 박기도 했다. 채 썰어 된장국을 끓이기도 했다. 아, 봄이 오기 전 김장 김치, 갓김치, 빠개지에 물려 있을 때이기도 했다. 항아리 밑구멍에 팽개쳐둔 것이 아니었다.

_ 싱건지 중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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