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13장 20절 - P226
스미스의 삶의 궤적을 염두에 두고 <국부론》을 읽어보면 그가 교육을 직업으로삼은 사람, 즉 생계형 교육자로서 지녔던 고민이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다. 스미스는 인쇄술이 발명되기 이전에는 문필가가 보수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업무가 교이어서 교사의 업이 명예롭고 유용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인쇄술로 인해 빵을 위해 글을 쓰는 문필가가 따로 생겨나면서 그들이 교육이라는 큰 시장에서 교사와 경쟁하게 되었고, 그 때문에 교사는 향후 훨씬 더 적은 보수를 받게 될것이라고 예견했다" 스미스가 대학의 교수직을 버리고, 책을 출판해 명성을 얻고, 동행 교사로 활약한 뒤 공직으로 전업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대목이다.
_ 여행의 동반자들 중 - P247
"어디를 떠돌든 우리는 인류와 이어지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다."
-알렉산더 킹레이크 - P258
어떤 학자들은 영국인들이 여행자의 대명사가 될 정도로 열심히 대륙으로 떠난이유가 바로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보았다. 섬나라라는 지형적인 조건과 로마제국의 변경에 살고 있다는 열등감이 이탈리아에 대한 동경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런 열등감에서 출발했지만 여행을 하면서 사실은 자기 나라가 훨씬 더 선진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여행의 효과는 배가될 것이었다.
_ 코스모폴리탄으로 거듭나기 중 - P259
이렇듯 범유럽주의적 세계관이 유행할 수 있었던 데는 계몽주의가 한몫했다. 유럽에 이성의 힘을 앞세운 새로운 권력체들이 등장하고 국가들이 저마다 존립을 위해 서로를 비교하는 움직임이 나타났던 한편, 일부 계몽주의자들은 통합적인 유럽에 대한 열망과 구상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했다. 결국 통합적인 유럽에 대한 관심, 즉 코스모폴리타니즘이 훗날 유럽연합의 탄생에 영감을 주게 된 것이다. 유럽은 이제 거대한 국가들의 연합체로 여겨졌고, 거기에는 국경을 초월한 시민주권이나 인류애, 힘의 균형과 같은 개념들이 자리 잡았다.
_ 코스모폴리탄으로 거듭나기 중 - P282
기번에게 문명화된 세계란 곧 유럽만을 지칭하는 것이었다. 그 유럽은 기번이경계 지었던 것처럼 러시아를 제외하고 스칸디나비아 반도도 포함시키지 않는 작은 유럽이었다. 18세기 백과사전에는 아직도 모스크바를 아시아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고 기독교를 수용하지 않는 군주들은 완전히 유럽에서 축출해야 한다는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바깥에는 유럽과 대비되는 유럽과는다른 문화들이 존재할 터였다. 그렇기 때문에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이라고 알려진 구별 짓기의 방식을 18세기 문헌의 이곳저곳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_ 코스모폴리탄으로 거듭나기 중 - P290
유럽의 코스모폴리타니즘은 공간적 구획뿐만 아니라 시간적 틀 속에 놓여 있는것이었다. 유럽의 지식인들 사이에는 유럽이야말로 가장 진보된 시대를 살고 있다는 공통의 신념이 있었다. 동시대지만 러시아나 스칸디나비아, 그리스 같은 곳은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다. 그 와중에 더 먼 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런 유럽인들은 그 낯선 공간에 비유럽보다도 훨씬 더 먼 과거인, ‘원시‘라는 시간적 개념을 부여하게 된다. - P296
"쾌락은 우리를 자기 자신으로부터 떼어놓지만 여행은 스스로에게 자신을 다시 끌고가는 하나의 고행이다."
- 알베르 카뮈 - P298
폴 퍼셀Paul Fussell 같은 학자는 르네상스 시기에 탐험이 있었고 부르주아 시대에 여행이 있었다면 관광은 프롤레타리아의 시대에 속한다면서 여행을 여러 뭉치로 구별 지으려고 했다.
_ 엘리트 여행에서 대중 관광으로 중 - P339
프랑스혁명이 18세기 귀족적 그랜드 투어에 조종을 울렸다면나폴레옹 전쟁의 종결은 근대 매스투어리즘의 첫 번째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 P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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