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자신을 속이는 일이 자신이 완전히 혼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쉬워서였다.
_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중 - P280
기남은 우경의 무정함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제나 그랬다. 어려서 그애는 좋아하고 따르던 담임선생님도 그다음 해가 되면 완전한 타인으로 여겼다. ‘그 선생님 보고 싶지 않아?‘ 하고 기남이물으면 ‘내가 왜 그래야 하는데?‘라고 대답했다.
_ ㅛㅏ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중 - P292
어린 시절, 기남의 가장 달콤한 몽상은 고통 없이 단번에 죽어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 생각만큼 기남에게 위안을 주는건 없었다. 그런 기남의 세계에 다섯 살짜리 진경이 들어왔고, 삼년 후 우경이 태어났다. 아이들을 사랑하면 할수록 죽음이라는 관념은 위안이 아니라 두려움이 됐다. 하지만 이제 기남은 두렵지않았다. 아이들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가눌 수 없이 쓸쓸해질 때면 자신의 죽음이 아이들에게는 자유를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 P300
기남은 살면서 수시로 그 문을 열었다. 문을 열 때마다 기억의 세부는 조금씩 사라져갔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마음의 통증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여전히 그 문을 열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차갑고 단단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여전히 - P306
기남은 우경이 나간 화장실에 혼자 남아서 거울을 바라봤다. 상기된 노인의 얼굴이 보였다. 아이들이 어려서는 화장실 문을 닫을수가 없었다. 문을 닫으면 아이들이 불안해했으니까. 문을 두드리면서 어서 문을 열라고 요구했으니까. 그렇게 문을 열어둔 채 일을 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기남은 아이들이 다 자라고 나서도화장실 문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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