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레이스 커튼 사이로 내다보이는 숲과 잘 정돈된 넓디넓은 풀밭, 그 속에 고여 있는 춥지도 덥지도 않은 맑은 공기, 촘촘한 체로 걸러 놓은 것 같은 오후의 여린 빛, 그리고 적요. 아내는작은 탁자 앞의 의자에 앉고 나는 침대 위에 앉아 그 창밖 풍경을 무연히 내다본다. 마음속이 투명해지고 전에 들리지 않던 침묵의 소리가 눈과 귀를 가만히 쓰다듬는다. 좀처럼 경험하기 어려운 이 예외적인 균형의 감각. 오래 길들여 입어 온 품이 넉넉한 옷처럼, 내가 나의 삶과 잘 들어맞으니 편안하다는 느낌. 내 일생의 한 순간이 무한처럼 넓어진다.
ㅡ 여름의 묘약』 - P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