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당신은 내게 그걸 말하는 시간을 미뤄 온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힘들어하리라는 것을 아셨으니까요. 그렇지 않나요? 그렇다고 말씀해 주세요! 날 이렇게 아프게 만드는 것은 다만 나에 대한사랑 때문이었다고 말이에요! - P398

알리스의 셈법은 보다 물질주의적이었다. 모든 사람을 먹이기는 쉽지 않았고, 대부분의 피란민들이 패배주의에 빠져들기는커녕 이곳의 열광적인 분위기에 전염되어 지역 전체를 돌아다니며 식량을 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는 있었지만,
예배당에는 한계가 있었다. 중앙 회랑과 가로 회랑의 좌우 공간은 사람들로 꽉 차 바깥에서 자는 사람들까지 있었고, 인력과 의약품과 기저귀가 부족했으며, 빨래하여 널어놓은 옷들만으로도 서른 세대의 사제들이 잠들어 있는 오래된 공동묘지의 절반이 가득 찼다. 신부는 공동묘지의 나머지 반을 공동 식당으로 바꾸었고, 나뒹구는 묘비들은 다시 세워 식탁으로 사용했다. - P432

이 가련한 실향민들 앞에서, 전쟁의 이 참혹한 고통 앞에서, 모두를 위하여 어마어마하게 헌신하는 이 신부를 보면서 힘들다고 하소연하는 것은 이 판국에 사람들의 관심을 끌려는 부끄럽고도 한심한 행동이었다. - P433

「그리고 이 구절을 기억하세요. <너희의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말지니, 하느님의 집은 너희의 마음이 무엇이라도 주고싶어 하는 안식처이기 때문이니라.」 - P435

<당신을 어디서나, 그리고 항상 느낄 수 있는 이 행복감. 지금으로서는 난 이 뻔뻔한 도둑질을 즐기고 있어요. 왜냐하면 이게 내 삶 전체니까요.> - P448

난 뚱보였어. 무슨 말인지 알겠냐? 뚱보라는 것은 아주 특별한 거지. 사람들은 뚱보에게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 것은너무나 좋아하면서도, 뚱보에게 사랑에 빠지는 일은 결코 없거든. - P449

잔은 해산을 했고, 아기를 보는 순간 빼앗겼다. 루이즈가 라울을 찾는 데 들이는 그 모든 힘은 이 광경 하나만으로 정당화될 수 있었다. - P453

<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어요. 난 당신을 떠났지만, 당신은 항상 내 안에 있었고, 그래서 결심했어요. 당신의 품 안에 있을 수 있다면 지옥에 떨어져도 상관없어요………….> - P453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의사가 자신을 희생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조국을 지키기위해 참전했다. 아니면 사랑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였는지도 모른다. - P456

갈가리 찢기고 버려진 이 나라의 모습 자체인 이 피란민의물결 속에서 자동차는 천천히 덜컹거렸다. 어디에나 얼굴들, 얼굴들이 있었다. 어떤 거대한 장례 행렬 같다고 루이즈는 생각했다. 우리의 슬픔과 우리의 패배의 가혹한 거울이 된 거대한 장례 행렬이었다. - P459

그녀가 본 그의 마지막 모습은 뚱뚱한 사내가 잔해만 남은 푸조 옆에 실내화 바람으로 서서, 전투기들이 도로에 기총 소사를 하며 맹렬한 속도로 덮쳐 오는데도 불구하고 빨리 가라고, 빨리 가라고, 손을 흔들고 있는 광경이었다. - P463

「당신이 이 아이의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말하는 거예요. 내게는 가스와 물이 필요해요. 그것만 있으면 된다고요. 왜요? 내 요구가 지나친가요?」 - P515

여기서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데지레는 결코 바람둥이가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럴 기회가 없기 때문은 아니었다. 그의다양한 분신들에 끌리는 여자들이 종종 있었다. 그게 변호사든, 외과 의사든, 비행기 조종사든, 초등학교 교사이든 간에 그는 여자들의 환심을 샀다. 그런데 그가 절대로 어기지 않는 규칙이 하나 있었으니, 업무 중에는 결코 여자를 가까이 하지않는다는 점이었다. 업무 전에는 할 수도 있고, 업무 후에는 기꺼이 할 거였다. 하지만 업무 중에는 절대로 불가였다. 데지레는 프로였던 것이다. - P525

왜냐하면 세실 수녀의 어조는 단순한 비웃음의 그것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어조는 그의 내부에 그가 지금껏 놓친 적없는 경보를 울렸다. 지금 누군가가 그의 정체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전조는 조만간에 도망쳐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는것, 여기에는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었고 그도 익숙해져 있었지만, 한 가지 의문이 그를 괴롭혔다. 그들이 만난 지 하루도 되지 않았는데, 왜 이게 이렇게 빨리 일어났단 말인가...…? - P526

빈곤은 아주 확실한 교사이다. 루이즈는 몇 시간 만에 상황에 따라 다르게 구걸하는 법을 배웠다. 상대가 남자이냐 여자이냐에 따라, 혹은 젊은 사람이냐 나이 든 사람이냐에 따라 다른 식으로 말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얼굴을 빨갛게 붉히거나, 절망으로 굳은 표정을 짓는 방법들을 말이다. - P536

대위는 이 정보에 다시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전쟁 중에 결원 하나는 실패를 의미하지만, 사망자 하나는 승리를 의미하는 것이다. 부사관들도 저마다 보고를 해야 했다. 그들은 사망자 수를 세었다. 또 그 원인도 적었다. - P542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던가. 한창 달콤하게 부풀어 오를 때 전쟁이 산산조각을 내버린 허망한 환상을 만족시키려 도둑이 된 것이다. 또 자신이 더 분별 있는 자였다면 임무를 제대로 수행했을 거였다. 생각만 해도 부끄러운 죄목들의 목록(도둑놈, 거짓말쟁이, 병약한 아내를 내팽개친 남편………)에 이제 <반역자>라는 항목까지 추가할 수 있었다. 그의 가늠쇠에 두 도망병의 등이 들어왔지만, 그는 일부러 허공에 대고 쏘았다. 무의식적으로 한 짓이었다. 왜 반사적으로 그렇게 행동했는지는 이제 이해가 되었다. - P546

루이즈는 너무 빨리 대답했다. 자신은 불과 며칠 전에 그 존재를 알게 된 이부 남매를 찾기 위해 파리를 떠났다고 설명할수 있단 말인가? 피란민들이 아우성치며 도망치는 그 길에 어느 실내화 바람의 레스토랑 사장과 함께 무작정 뛰어들었다고? - P553

천장에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이, 마치 별빛 아래에서 자는 것 같았다. - P581

우리 역시 그렇게 할 것이다. 루이즈와 라울에게는 둘만의시간이 필요하고, 우리는 이 이야기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슴 뭉클한 한 장면만 엿보기로 하자. 라울은 루이즈의 옆자리에 앉았고, 두 사람은 아직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그는 호주머니 속을 열심히 뒤져 아주 조그만 종잇조각 하나를 꺼냈다. 그가 받은 편지에서 유일하게 간직한 이 조각은 바로 그녀의 서명, <루이즈>였다. - P585

하지만 가장 무섭고 그를 가장 가슴 아프게 한 것은 그 핏덩이를자기 아내의 손에, 그 못된 계모의 손에 던져 놓은 의사가 바로자신의 친부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었다. - P586

이곳은 아주 가난한 가족들이 모여 사는 곳 같아서, 모든 것을 듣지만 거기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 P5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