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표 위 경제사 - 대중음악과 자본주의, 그 동행의 역사
이두걸 지음 / 루아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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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케인스 혁명‘을 통해 인간은 시장에 예속된 존재가 아닌, 의지에 따라 시장을 바꾸고 미래를 개척할 수 있는 존재로 격상되었다.

_ ‘야만‘의 시대,그속에서 울려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중 - P310

뉴딜정책의 핵심 목표는 3R로 요약된다. 경제를 ‘회복Recovery‘시키고, 실직자와 농민들을 ‘구제Relief‘ 하고, 산업과 금융 부문들의 제도들을 ‘개혁Reform‘한다는 것이다.

_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려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 음악 중 - P310

실제로 1933년 이후 경기 회복은 금융의 역할이 지대했다. 1933년 미국이금본위제를 이탈하고 달러화를 평가절하하면서 금이 계속 유입되었고, 덕분에 본원통화가 그해부터 1937년까지 연 10% 이상 증가했다. 통화량 증가는 명목이자율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상업어음 할인율은1934년 이후 거의 제로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자율 하락은 투자와 소비 수요를 자극했다.

_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려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 음악 중 - P313

1943년 12월 루스벨트 대통령이 기자회견 중 언급한 대로 "뉴딜 박사Dr. New Deal는 승전 박사 Dr. Win the War에게 길을 양보하고 물러났다. 대공황은 세계경제를 전무후무한 구렁텅이에 빠뜨렸고, 이는 다시 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비극을 불러오는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인류의 비극은 미국과 세계 자본주의에 축복으로 되돌아왔다.

_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올려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중 - P314

그는 호르크하이머와 공저한 <계몽의 변증법》(1947년)을 통해 ‘문화산업‘은 자본주의 사회의 파편화된 삶을 살아가는 개인들의 균열된 삶을 봉합시키는 장치로 기능한다고 봤다. 문화산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예술장르는 전통을 반복하기만 하는 기존 ‘음악적 전통‘에 충실한 음악이다. 이런 음악들은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여전히 ‘공동체의 민요가 불릴 수 있다‘고 대중들을 기만한다.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러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중 - P317

누구나 영원하리라 굳게 믿었던 진보와 이성에 대한 희망은 양차 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두 폭탄으로 산산조각난 상태였다. 이 시대를 반영해야 하는 음악은 과거의 유산과 과감한 단절을 선언한 현대음악이어야 한다는 취지다. 이제 모더니즘음악의 시초부터 차근차근 짚어보자.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러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중 - P318

브람스나 말러는 그들이 물려받은 고전음악의 유산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그러나 20세기 작곡가들은 ‘옛 음악‘ 대신 조성의 붕괴와 소리의 확장을 대안으로 삼았다. 그 시작이 바로 인상주의 음악이다.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러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중 - P319

결국 핵심은 "바라보이는 객관적 실체 대신 바라본다는 주관적 행위의 재현이다. 이에 대상이나 인물은 희미한 선이나 색깔로 표현된 모호한 형태로 제시된다. 대신 그 빈자리는 화가와 감상자의 감정과 느낌으로 채워진다."

_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러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중 - P320

드뷔시는 "교향곡 형식의 공허함은 이미 베토벤 때부터 증거가 나타나고 있다. 슈만, 멘델스존은 똑같은 형식을 베토벤보다 무기력하게 반복하며 경의를 표하고 있을 뿐이라고 격렬히 비판했다.

_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러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중 - P322

피카소의 다음 말은 사티의 음악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나는 루이 15세의 안락의자를 절대로 그리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특정한 사람들을 위한 대상이지 ‘누구나‘를 위한 대상은 아니다."

_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러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중 - P326

드뷔시가 형식, 쇤베르크가 화성으로 모더니즘음악의 문을 열었다면, 스트라빈스키는 바로 리듬으로 모더니즘음악을 새롭게 개척했다.

_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러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중 - P328

19세기 전반에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후반에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유럽을 휩쓸었다면, 20세기 전반은 <봄의 제전>의 시대였다."

_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러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중 - P330

현대음악은 ‘들을 귀 있는 몇몇 사람만 즐기고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 되었다." 모더니즘음악은 대학 등 아카데미의 영역에서만 명맥을 유지할 뿐이다.

_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러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중 - P331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의 고전음악 공연장의 관객 태반은 노년층이다. 한국 역시 이 흐름이 뚜렷하다. 급속한 고령화와 극심한 빈부격차는 청년이 사라진 공연장의 추세를 더욱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다. 애석하게도 재생산이 끊긴 대상은 생명력을 유지할 수 없다.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러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중 - P332

나치는 ‘적‘이 아닌 ‘친구‘였다. 오히려 미국 엘리트들은 대공황이한창이던 1930년대에 눈부신 성장을 이룩한 소련 볼셰비키를 더 큰위협으로 받아들였다.

_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러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중 - P338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이 미국의 2차 세계대전 참전을 불러온 게 아니다. 미국을 완전히 전쟁으로 끌어들인 것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이었다"는 미국 역사학자 하워드진의 지적은 상당한 진실을 담고 있다.

_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러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중 - P338

1932~1933년 사이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홀로도모르’ 역시소련의 잔혹한 고도성장과 관련해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홀로도모르는 우크라이나어로 ‘기아로 인한 치사‘라는 뜻이다. 우크라이나에서의대기근으로 250~350만 명이 사망한 사건을 말한다. 홀로도모르는 자연재해가 아닌 소비에트 정부의 실책으로 자행되었다. 스탈린의 농장집단화정책은 농촌 지역에 커다란 반발을 산다. 이에 소비에트 정부는 부농들의 곡물들과 가축들을 강제 수용하려 했고, 부농들은 가축도살로 이에 저항했다.

_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러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중 - P344

하지만 소련의 성장은 더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1980~1985년사이 GDP 성장률은 1.8%로 뚝 떨어졌다. 국가 경제의 조정을 통해 경제를 재건하는 건 가능했지만 효율을 높이는 건 애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_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러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중 - P346

세월이 지난 뒤 한 독일 군인은 지휘자 엘리아스베르크에게 당시를 이렇게 떠올렸다. "우리가 결코 레닌그라드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굶주림보다, 공포와 죽음보다 더 강력한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으로 남으려는 의지였습니다.""

_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러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중 - P365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에게 학살당했던 우크라이나 민중의후손들은 80년 가까이 흐른 현재, 또다른 ‘바비 야르‘에서 러시아군에게 무참히 학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전쟁의 책임을 푸틴에게만온전히 돌릴 수 있을까. 우크라이나를 향해 세력을 확대하고, 막상 전쟁이 벌어지자 무책임한 모습으로 일관했던 미국과 유럽은 아무런 책임이 없을까. 쇼스타코비치가 음악을 통해 역설한 것처럼 우리 역시 방관을 통해 학살을 부추긴 게 아니냐고, 우크라이나 민중의 희생과 고통에 함께 눈물 흘리며 싸워야 하는 게 아니냐고 자문해야 하지 않을까. 공감 못하는 음악과 예술은 과연 존재 가치가 있는지 되하지 물어야 하지 않을까.

_ ‘야만‘의 시대, 그 속에서 울러 퍼진 재즈와 모더니즘음악 중 - P368

2차 세계대전은 유럽 국가들에게는 악몽이었지만 미국에게는 ‘축복‘이었다.

_ 호황에 들뜬 세계, 로큰롤에 흘리다 중 - P374

1600만 명의 군인이 전쟁에서 돌아오자 베이비붐에 따른 인구 증가와 주택 수요 급증을 불러왔고, 이는 고스란히 내수 경제의 활성화로 이어졌다. 법 제도면에서는 ‘제대군인원호법GI Bill‘이 미국의 번성에 크게 기여했다. 이법의 뼈대는 제대 군인에 대해 대학 학비 등을 광범위하게 지원하는것이다. 이를 통해 780만 명의 제대군인이 학비 걱정 없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이는 학위 소유자와 대학의 질적·양적 향상을 가져왔고, 다시 지식산업의 성장과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면서 미국의 제성장을 촉진했다.

__ 호황에 들뜬 세계, 로큰롤에 흘리다 중 - P374

해당 기간 유럽 내 무역은 70%, 서유럽과 다른세계 간의 수출과 수입은 각각 66%, 20% 증가했다. " 전후 프랑스의실용품 생산에서 속옷에 이어 둘째로 우선시되었던 품목은 유모차였다. 1949년 영국의 출생률은 1937년에 비해 11% 증가했고, 프랑스는같은 기간 33% 증가했다. 새로운 유럽이 탄생하고 있다는 징표였다."

_ _ 호황에 들뜬 세계, 로큰롤에 흘리다 중 - P377

2차 세계대전 전 세계 최대 규모의 채권국이었던 영국은 세계 최대 채무국으로 전락했다. "미국은 압도적 경제력과 달러의 영향력을 등에 업고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부터 세계경제의 새로운 질서를 그리기 시작한다. 각국의 협력 부족으로 세계경제가 대공황이라는 재난을 맞고, 이것이 나치즘의 등장과 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으로 연결되었다는 판단에서다.

_ 호황에 들뜬 세계, 로큰롤에 흘리다 중 - P378

1943년 "어느 사회든 아기에게 우유를 먹이는 것보다 더 좋은 투자는 없다"라고 말한 이는 다름 아닌 처칠이었다." 복지제도는 당시 선진국에서 보편적인 ‘탈이데올로기‘ 현상이었다."

_ 호황에 들뜬 세계, 로큰롤에 흘리다 중 - P387

텔레비전의 보급 확대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인기에 불을 지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텔레비전은 1925년 영국에서 발명되었지만 화질이나 가격 문제로 바로 대중화되지는 못했다. 텔레비전이 자동차와 더불어 중산층의 전유물이 된 것은 1950년대부터다. 1953년 미국 전역에 2700만 대의 텔레비전이 보급된 데 이어 1956년에는3700만 대로 늘어났다.

_ 호황에 즐뜬 세계, 로큰롤에 홀리다 중 - P394

인구의 3분의 1이 21세 이하의 젊은이들과 청소년들이었다. 로큰롤시장의 급격한 팽창을 주도한 것도 10대였다. 더구나 이들은 스스로를 기성세대와 구분되는 ‘10대‘라는 새로운 세대로 규정하고, 그에 걸맞은 정체성과 문화적 양식을 확보해간다. 이때 이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가 로큰롤이었다. 로큰롤은 "청년들에게 정체감과 소속감을 부여하는 동시에 특정 방식으로 자신을 투여하고 권능화하는 문화적 공간을 제공"했고, 이에 따라 "청년과 로큰롤 간의 동맹"이 가능해졌다.

_ 호황에 즐뜬 세계, 로큰롤에 홀리다 중 - P396

대중음악사에 남긴 그의 업적은 비틀스 못지않다. 미국에서만1억 장 이상, 전 세계에서 10억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했다. 미국에서18곡, 영국에서 18곡 등 모두 31곡(5곡은 양국에서 1위 기록)이 싱글차트 1위에 오르며 제왕의 시대를 열었다. 로큰롤에 대한 기성세대들의 반감(프랭크 시나트라, ‘로큰롤은 거칠고 추하고 무모하며 사악한 것"을 극복하고 청춘 음악으로 자리매김시킨 건 전적으로 그의 공로다.

_ 호황에 즐뜬 세계, 로큰롤에 홀리다 중 - P397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경제의 호황 역시 68혁명 확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앞서 살펴본 대로 일자리는 넘쳐났고 성장의 과실이 일반 시민에게 배분되면서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에 많은 나라에서 다수의 시민이 1960년대와 1970년대 초의 문화적 격동과 사회적 격변에 참여하는 것을 가능케 했고, 오랫동안 존재했던 사회적 불의에 맞서 목소리를 높일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당시 각국의 경제적 번영은 중도우파와 중도좌파의 안정적인 공동 집권을 가능케 했다. 이 역시 당시 급진적인 청년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거세당했다고 여겼다.

_ 호황에 즐뜬 세계, 로큰롤에 홀리다 중 - P400

68혁명을 주도했던 청년들이 정작 ‘혁명‘을 원치 않았다는 점도 실패의 결정적 원인이다. 이들은 모두 ‘있는 집‘ 자식들이었다. "이들이 거리에서 프랑스 국가의 군대에 맞설 때 안락한 부르주아의 아파트 창문으로 내려다본 자들은 그들의 부모이자 조부모, 일가 친척들이었다. 따라서 이들이 추구한 건 구호를 통해 기득권층을 모욕하는 잔치였지, 특정 방향으로 사회를 바꾸겠다는 혁명이 아니었다.

_ 호황에 즐뜬 세계, 로큰롤에 홀리다 중 - P403

여기는 ‘진보적 유럽‘은 68혁명을 계기로 시작된 것이다. "이제껏 세계 혁명은 단 둘뿐이었다. 하나는 (2월혁명이 벌어진) 1848년에, 또 하나는 1968년에 일어났다. 둘 다 역사적인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둘다 세계를 바꿔 놓았다"라는 국제정치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ImmanuelWallerstein, 1930~2019의 언설은 68혁명의 본질을 적확히 표현하고 있다.

_ 호황에 즐뜬 세계, 로큰롤에 홀리다 중 - P405

일본이 20세기 초반 군사력으로 아시아 지역에 ‘욱일기旭日旗’를 휘날렸다면 20세기 후반에는 ‘주식회사 일본의 이름으로 ‘Made InJapan‘ 제품들을 전세계로 뿌렸다.

_ 호황에 즐뜬 세계, 로큰롤에 홀리다 중 - 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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