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표 위 경제사 - 대중음악과 자본주의, 그 동행의 역사
이두걸 지음 / 루아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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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부터 1898년까지 영국과 프랑스, 벨기에, 독일, 포르투갈이 대거 아프리카 쟁탈전에 참여했다. 결국 에티오피아와 라이베리아만 독립국으로 남았다. 동남아시아에서 영국은 미얀마와 말레이시아를, 프랑스는 인도차이나반도를 장악했다. 뒤늦게 제국주의 국가 대열에 동참한 미국은 1898~1902년에 스페인을 격파하고 필리핀을 전리품으로 얻었다. 오직 태국만이 독립을 유지했다. 그 결과 20세기 초반에는 전세계 영토의 4분의 1이 영국과 독일, 프랑스 등 6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 환경들은 국가 간 적대감만 키웠다. 결국 "경제투쟁과 정치적대립이라는 두 경쟁 형태가 하나로 뭉쳐 세력권 추구의 결정적 고양을 가져왔다. 이것을 우리는 ‘신제국주의‘라 부르고 있다.

_ 자본주의에 드리운 유령, 불황 중 - P179

민족주의는 당시 고전음악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독일, 프랑스, 영국 등 그때까지의 음악선진국 외의 다른 지역에서 국민음악파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_ 자본주의에 드리운 유령, 불황 중 - P181

19세기 중반까지 서구음악의 중심은 독일과 오스트리아였다.
베토벤, 슈베르트, 멘델스존, 슈만 등 지금까지 살펴본 작곡가들이 모두 이곳 출신이었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이후 경향은 조금씩 바뀐다.
체코와 핀란드, 러시아 등 변방의 음악가들이 속속 등장한 것이다. 오페라 강국인 이탈리아의 영향력도 더 강력해졌다. 이는 한 세기 전 영국에서 태동한 자본주의의 물결이 19세기 초반 이후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는 경제적 배경을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부르주아계급의 확대는 음악 저변 확대로 이어졌고, 기존 불모지에서도 음악가들이 활동할 수 있는 경제적 토양을 조성했다. 물론 브람스와 바그너 등 독일 음악가들의 우위는 여전했다. 변방의 음악가들도 음악 수업을해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를 찾았다. 다만 ‘독일 혈통‘ 위주의 기존 음악계와는 성격이 달라진 셈이다. 그들은 ‘베토벤‘들과 경쟁하는 대신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접했던 고국의 민속음악을 돌파구로 삼았다.

_ 자본주의에ㅜ드리웅 유령, 불황 중 - P183

차이콥스키는 화산처럼 끓어오르면서도 쓸쓸한 비애의 감정을 잘 드러낸 작곡가 중 최선두에 서 있다. 후대의 라흐마니노프로 계승되는 매혹적이면서도 우수에 젖은 러시아 선율을 인류에게 선사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곡가로 손꼽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는 그의 개인적 성향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다. 그는 평생 극심한 심기증(건강염려증)과 불안에 시달렸다. 무엇보다 20세기 중반까지 서구에서 범죄로 취급받던 동성애자였다.

_ 자본주의에 드리운 유령, 불황 중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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