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표 위 경제사 - 대중음악과 자본주의, 그 동행의 역사
이두걸 지음 / 루아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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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은 ‘산업 - 욕구‘는 바로 자본의 욕구이고, 자본주의의 역사적 전개 과정임을 밝힌다. 박람회를 일컬어 ‘상품물신주의의 순례자‘라고 비판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_ 세계를 통합한 부르조아, 낭만을 노래하다 중 - P98

다만 ‘팍스 브리태니카‘는 19세기 후반점차 저물었다. 정확하게는 19세기 중반부터 영국의 쇠퇴가 예견되었다. 영국에 뒤이은 강국으로 프랑스 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1859은 미국을, 사회주의 혁명가이자 사상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1895는 독일을 꼽았다. 실제로 1913년 기준으로 영국의 전 세계 공업생산 비중은 13.6%로 줄어든 반면, 미국과 독일은 각각 32%, 14.8%로 크게 늘었다. 물론 영국은 1차 세계대전 전까지 광대한 식민지를 거느린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위상을 유지했다. 국제금융과 상품 거래 중심지로서 ‘시티 오브 런던‘의 위상도 여전했다. 하지만 최소한 공업생산 면에서는 이미 1위 자리를 미국에 내준 상태였다.

_ 세계를 통합한 부르조아, 낭만을 노래하다 중 - P100

유럽에서는 자본가가 경멸의 대상이었지만 미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부정적인시각이 약했다. 미국의 ‘자본주의가 아닌 자본가를 발명했다‘는 표현은 이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_ 세계를 통합한 부르조아, 낭만을 노래하다 중 - P101

미국 역사학자 제임스 맥퍼James M. McPherson의 표현처럼 "당시 어떤 나라도 이런 폭발적인 성장의 단일 요소조차 따라잡지 못했다. 세 가지 요소(재정 확충, 영토 확대, 인구 증가)의 조합이 미국을 19세기의 ‘기린아wunderkind‘로 만들었다".

_ 세계를 통합한 부르조아, 낭만을 노래하다 중 - P102

북부의 승리는 예견되어 있었다. 북부와 남부는 체급 자체가 달랐다. 북부는 미국 전체 산업생산량의 90% 이상을 보유하고 있었다. 북부 인구는 2200만 명으로 실제 전투에 나설 수 있는 성인 남성은 400만 명이었다. 남부 인구는 고작 900만 명이었고, 성인 남성은 120만 명에 불과했다. 북부는 미국에 부설된 철도망의 70%, 은행 예치액의 81% 정도를 확보하고 있었다. 북부에 속한 메사추세츠 주 스프링필드의 미합중국 조병창은 윈체스터연발소총 같은 최첨단 무기들을 북군에게 공급했다. 1853년 크림전쟁에서 영국과 프랑스 연합군이 막강한 러시아 육군을 격파할 때 손에 들었던 바로 그 무기다." 다만 전쟁은 4년이나 이어지면서 무려 62만명이 희생된 뒤에야 북부의 승리로 종결된다.

_ 세계를 통합한 부르조아, 낭만을 노래하다 중 - P103

이에 따라 음악 문화의 헤게모니도 귀족에서 시민사회, 곧 부르주아 계층으로 넘어갔다. "음악은 시민계급의 독점적 소유물이 되었다.

_ 세계를 통합한 부르조아, 낭만을 노래하다 중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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