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만튀르크 제국에 머무는 동안 몬터규는 그곳 여성들이 독자적으로재산을 소유하고 심지어 사업을 통해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받았다. 결혼한 여성에게는 재산권이 아예 주어지지 않는 영국에서는 꿈도꿀 수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또한 튀르크 여성들이 이혼을 요구할 수 있고, 심지어 섹스를 거부할 수 있는 권리 등 일반적인 유럽 여성들이 전혀 갖지못한 권리를 누리고 있음에 놀라게 되었다. 몬터규는 튀르크 여성들이 누리는 자유와 권리가 그들의 의상에도 반영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온몸을 조이고 육체의 굴곡을 과장하는 유럽의 드레스에 비해 튀르크 여성들의 편안하고 절제된 스타일의 의상은 마치 그녀들이 누리는 권리와 안락함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_ 튀르크풍 의상의 유행과 쇠퇴 중 - P283
중세에는 온천이 있던 곳에 수도원이 세워졌다. 16세기 초 종교개혁과 더불어 수도원이 파괴되었고, 순례도 금지되었다. 그러자 중세 내내 순례를 핑계로 속박된 토지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순례를 대치할 여행의 명분과 장소를 찾게 되었다. 이 때 등장한 것이 르네상스 의학의 한 분야였던 수치료법, 즉 온천요법이다.
_ 100년전, 온천에서 서비스를 소비하다 중 - P294
17세기 바스의 발달과 인공온천장의 설립은 소비혁명 테제를 재검토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18세기에 부를 축적한 중간계급의 자신감과 공론장의 확대로 인해 소비에 대한 수요가 생겼고, 소비혁명이 일어났다는 테제 말이다. 위의 예들이 보여주듯이 18세기 이전, 이미 16~17세기에 온천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되었고, 사람들은 활발하게 그 서비스를 소비했다. 이러한 변화의 원인은 종교개혁이 불러온 사회 전반의 세속화였다. 이를 통해 볼 때 어쩌면 서비스 분야에서의 소비혁명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보다 먼저 발달했고, 그것이 본격적인 소비혁명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_ 100년 전, 온천에서 서비스를 소비하다 중 - P307
대박람회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1850년대 영국이 번영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업화와 해외 식민지 수탈로 얻은 대영제국의풍요가 조금씩 사회 하층에까지 스며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 임금 상승 등 노동계급의 상황도 개선되어갔다. 1830~1840년대 차티스트운동 등으로 표출되었던 사회적 불만이 서서히 가라앉으며 물질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좀 더 여유로운 시절이 도래했던 것이다. 수정궁을 찾은 노동자들은 이제 더 이상 집단행동을 통해 권리를 찾으려 하는 위험한 군중이 아니었다. 이들은 거대한 상품 더미의 스펙터클을 보러 모여든 구경꾼이었다.
_ 신기한 상품 더미의 스펙터클 중 - P322
시간은 달라도 수정궁에서는 왕족부터 노동자까지 모두 같은 상품을 직접볼 수 있었다. 역사학자 토머스 리처즈Thomas Richards, 1878~1962의 말처럼 그경험은 "콕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이 진귀하고 고급스런 물건들 하나하나가 언젠가는 누구나의 손에 평등하게 쥐어질 것이라고 약속하는 듯"했던 것이다." 여러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소비자‘라는 새로운, 하나의 집단으로 태어나는 순간이었다.
_ 신기한 상품 더미의 스펙터클 중 - P323
그런데 소비의 역사에서 카탈로그 쇼핑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게 된 시점은 우편제도가 충분히 갖추어진 이후였다. 카탈로그 쇼핑이 기본적으로 우편주문mail-order 을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우편제도는 철도 같은 교통수단의 발달에 힘입어 한층 더 정비되었다. 영국에서는 1840년 ‘페니 포스트(Penny Post, 1페니 우편제)‘가 시행되면서 사람들이 부담 없이 우편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게 되었다.
_ 홈쇼핑의 기원 중 - P327
백화점이 소비의 평등화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소비를 둘러싼 ‘열망과 욕구의 평등화‘를 제공하게 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_ 홈쇼핑의 기원 중 - P339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는 성장사회를 재화를 생산하는 사회이기 이전에 특권을 생산하는 사회라고 규정한바 있다. 그런데 빈곤을 수반하지 않는 특권은 존재하지 않는다. 기술의 진보가 성장사회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특권 계급, 즉 불평등한 사회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필요성이 곧 성장을 생산해낸다는 통찰이다. 결국 성장 사회의지속은 지배질서가 유지되는 한도 내에서 끊임없이 불평등 구조가 재생산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것이 소비라는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지속적으로 학습되며 실행되는 것이다.
_ 혼쇼핑의 기원 중 - P340
무엇보다 백화점이 대부분 도심에 입지한 반면 쇼핑몰은 교외suburb에 건설되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따라서 쇼핑몰의 탄생은 교외라는 공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_ 쇼핑몰의 이상과 한계 중 - P345
쇼핑몰 개발업자들은 갈수록 적극적으로 현재 쇼핑 행위 자체를 희석할수 있는 다양한 방식들을 고안해냈다.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을 쓰는 행위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도록 그런 느낌을 순간적으로 가리거나 정당화할 만한 장치들을 구축하려는 것이었다. 그런 맥락에서 쇼핑몰은 일상성에서 벗어날수 있는 환상을 제공해야 했다. 쇼핑몰이라는 공간에서 경험하게 될 환상은공간성뿐 아니라 시간성에서도 탈현실적인 것이 되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쇼핑몰은 일상의 대표적인 두 공간, 즉 일터와 가정과는 전혀 다른 ‘제3의 공간‘이 되어야 했다. 이제 쇼핑몰은 지중해식 건축물이나 카리브 해안을모티브로 삼거나 할리우드 같은 연예산업의 중심지가 주는 휘황찬란함, 심지어 미래지향적인 우주 공간 등을 차용하여 실내를 꾸몄다.
_ 쇼핑몰의 이상과 한계 중 - P353
흥미로운 사실은 노예제 폐지운동의 발흥을 순수하게 인도주의적 차원에서만 볼 수 없다는 점이다. 경제사가들은 노예노동에 의존하던 중상주의적 식민주의 경제가 자유무역에 기초한 자본주의적 제국주의 체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노예제가 폐지될 필요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하자면 세계 경제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노예노동은 더 이상 이전만큼의 효율성이나 이익을 내지 못했기 때문에 폐기 수순을 밟을 시점에 봉착했었다는 말이다. 당시 사회의 지배세력으로 떠오르던 부르주아 중 일부는 노예제 자체가개인의 자유와 이익 추구를 기초로 하는 시장체제와 양립할 수 없다는 이념적 이유에서 반대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노예제 폐지운동은 인도주의적 시민 의식이 이끌어가고 있었다.
_ 노예저 폐지와 설탕거부운동 중 - P365
가정에서 여성, 즉 부인이나 어머니가 가족 구성원들에게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18세기 말이 되면 "권력은 남성을 위한 것이지만 영향력은 여성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사회에 널리 통용되었다.
_ 노예제 폐지와 설탕거부운동 중 - P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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