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굴레 - 헤이안 시대에서 아베 정권까지, 타인의 눈으로 안에서 통찰해낸 일본의 빛과 그늘
R. 태가트 머피 지음, 윤영수 외 옮김 / 글항아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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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가 끝나갈 무렵, 일본은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전 세계 모든 비유럽 국가들을 장악한 유럽 제국주의의 손아귀에서 벗어난 나라는 일본을 빼면 타이와 에티오피아 정도였다.

_ 근대 국가로서의 일본의 탄생 중 - P86

그 특징이란 바로 공권력을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이 중앙 정부에만 주어졌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자면 국가의 정치권력이 국가보다 하위 단위(영주 혹은 번)나, 국가를 초월하는 지위(천황)가 아닌, 일국의 정부 단위에서 행사된다는 점이다.

_ 근대 국가로서의 일본의 탄생 중 - P88

당시 일본의 축성술이나 사무라이의 전투력에 대해서 감탄하고 있던 유럽인들도 인정하던 바였다. 유럽이 일본에 위협이 되었던 것은 기술이나 군사력이 아니라 기독교로 대표되는 사상이었다.

_ 근대 국가로서의 일본의 탄생 중 - P90

그럼에도 ‘숨은 기독교인들은 두 세기반을 살아남아 은밀하게 신앙을 대물림했다. 이들 일대기 최후의 비극이라고 해야 할까, 그 후손들이 가장 많이 모여 살던 지역은 1945년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에 의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_ 근대 국가로서의 일본의 탄생 중 - P94

외부인들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현대 일본의 수많은 모순은, 에도 시대에 존재하던 공식적인 시스템의 구조와 실제 사회의 간극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20세기 말 일본은 역사상 가장 눈부신 경제적 성공을 거둔 나라인 동시에 꽉 막힌 얼굴 없는 관료주의의 대명사이기도 했다.

_ 근대 국가로서의 일본의 탄생 중 - P102

600년 전 숨 막힐 만큼 아름다운 헤이안 귀족 문화가 당시 세상에 만연하던 난잡함에 균형을 잡아주었듯이, 풍류세계의 양식미, 심미안, 품격은 그 세계의 기반이 되는 착취구조를 상쇄하는 역할을 했다.

_ 근대 국가로서의 일본의 탄생 중 - P106

오시오는 "알고서 행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不行只是未는 유명한 말을 남긴 명나라 유학자 왕양명王陽明(1472~1529)의 추종자였다. 언행일치를 강조하는 왕양명의 사상(양명학)은 청나라와 도쿠가와일본의 주류 사상이던 신유학, 즉 주자학과 충돌했다. 왕양명의 저술에 깔린 급진주의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동아시아에서 수많은 개혁사상가에게 영감을 주게 된다.

_ 근대 국가로서의 일본의 탄생 중 - P113

하지만 일본의 정치사상에서는, 정당하게 설립된 정치권력 자체가 신성을 지닌다. 도쿠가와 막부는 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오래된 개념을 적극 장려해서 어느 누구도 막부의 통치에 도전할 생각을 품지 못하도록 했다.

_ 근대 국가로서의 일본의 탄생 중 - P118

1000년이 넘도록 천황이 절대 권력을 실제로 누리지 못한일본에서, 천황에게 권력을 ‘유신‘했다는 행위는 일본의 새 정부에게 단박에 정통성을 부여했다. 천황이 직접 통치한다는 환상과, 그런 환상을 이용해 스스로의 목적을 달성하는 과두 집권층이 통치하는 정부라는 현실 사이의 간극은 반세기 후 일본 역사상 최악의 재난을 불러오게 된다.

_ 근대 국가로서의 일본의 탄생 중 - P123

하지만 시들어가는 청나라가 서구 열강들의 점점 노골적인 침략에 저항력을 잃어가면서, 일본은 한국이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 또스스로 독립을 유지하기 위한 개혁을 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점 때문에 한국이 서구 식민화의 좋은 먹잇감이 되지 않을까 염려했다. 한국이 중국을 벗어나 누군가의 식민지가 된다면 일본은 스스로 그 누군가가 되고자 했다.

_ 메이지 유신에서 미군정기까지 중 - P134

러일전쟁에서 일본의 승리는 10년 전 청일전쟁의 승리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콘스탄티노플 멸망 이후 처음으로 비기독, 비서구 국가가 기독교 국가에 승리를 거둔 사건이었다. 일본의 해군은 한국의 남해안에서 러시아 배들을 대부분 격침시켰고, 육군은 최종적으로 아서항을 포위함으로써 육지에서도 우위를 점해 육군과 해군 모두 눈부신 전과를 올렸다.

_ 메이저 유신에서 미군정기까지 중 - P137

그렇게 기피 대상이기는 했어도, 징병제는 공공 의무교육과 함께 농민들(그리고 공장 지대와 도시에 나가 있는 그들의 자녀에게 근대 국가에 필수적인 정신 자세를 주입한다는 이데올로기적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했다.

_ 메이지 유신에서 미군정기까지 중 - P139

‘문명개화(분메이카이카)‘라는 구호 아래 진행되었다. ‘부국강병(후코쿠쿄헤이)‘만큼이나 메이지 시대를 연상시키는 슬로건이다.

_ 메이지 유신에서 미군정기까지 - P146

그러나 일본이 유독 독특했던 것은 나라의 지배 구조에 대해 하나도 아닌두 가지 다른 허구가 병존했기 때문이다. 하나는 과거로부터 이어져온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서양에서 들어온 것이었다. 과거로부터 이어받은허구는 천황제이고 서양으로부터 들어온 허구는 입헌정치와 법치주의다. 이 중 후자는 부분적으로 자유민권운동이나 이타가키와 같은 사람의 대의정치 요구에 대한 응답이기도 했지만, 더 큰 동력은 일본에 대한 서양의 기대로부터 나왔다. 일본이 근대 국가로 인정받으려면 마땅히 의회와 법원이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근대 국가의 국민이라면 고기를 먹고남녀 혼탕을 삼가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_ 메이지 유신에서 미군정기까지 중 - P149

소위 원로라 불리며 20세기까지 살아남은 메이지 지도자들은 적극적인 정책활동에서 물러나면서 추밀원 같은 자문기관으로 소속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서 거부권을 행사하되 결과에는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역할을 맡으면서, 거대한 정치적 무책임의 무대가 마련되었다. 이런 무책임의 정치는 승리할 전망이 없는 아시아에서의 지상전에 뛰어든다든가, 일본보다 열 배는 더 큰 산업 기반을 가진 열강을 향해 침공을 감행한데서 그 절정을 보여준다. 그 결과 일본은 메이지 지도자들이 처음부터미연에 방지하고자 했던 바로 그 상황, 즉 독립국가로서의 지위를 상실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_ 메이지 유신에서 미군정까지 중 - P152

중국에 있어 제2차 세계대전이 가져다준 가장 중요한 결과는 중국 공산당의 집권일지 모른다.

_ 메이지 유신에서 미군정기까지 중 - P161

이 전쟁의 궁극적인 원인은 또는 적어도 전쟁에서 일본에 책임이 있는 부분에 관해서 말하자면) 권력을 탈취한 사람들의 손에 권력이 집중된 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권력이 통제를 벗어나 여기저기 분산되었다는 데 있었다.

_ 메이지 유신에서 미군정기까지 중 - P166

더 힘센 존재를 달래고 조종하는 기술은, 유치원 교실에서 시작해서 정부나 기업의 꼭대기에 오르는 데까지, 일본에서 성공하는 데 있어금과옥조로 여겨진다.

_ 경제 기적 중 - P180

그렇기는 하더라도, 미군정은 초기 멤버들이 이루려고 노력했던 일본사회의 민주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는 결국 실패했다. 존 다우어는 이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군사정부가 직접 통치했던 전후 독일과는달리 일본의 미군정은 기존 정부 조직을 통해 ‘간접‘ 통치를 했다. 이는 항복 이전의 일본 정치체제에서도 가장 비민주적었던 두 가지 제도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다름 아닌 관료제와 천황제다."

_ 경제 개혁 중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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