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충돌 - ‘차이메리카’에서 ‘신냉전’으로
훙호펑 지음, 하남석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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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산당 지도자들은 스스로 나서서 1980년대에 시장자유화를 채택하고 1990년대에 중국의 세계 자유무역 체제 편입을 모색했다. 베이징 당국은 심지어 미국 기업들을 동원해 미국의 대중국 정책을 초기의 인권 중심의 정치적 대립에서 경제적 관여로 향하게 했다. 중국은 자청해서 냉전 이후 세계 자유시장에 진입했다.

_ 공생 중 - P26

연례 검토의 실제 결과와 상관없이 MFN 지위를 인권 조건과 연계시키는 것은 미중 무역의 성장과 미국 기업 공급망의 중국내 확장에 효과적으로제동을 걸었다. 수출주도형 성장으로 전환하려는 중국의 시도는 큰걸림돌에 부딪혔다.

_ 공생 중 - P33

백악관에서 월가의 견해가 우위를 차지하면서 중국의 권위주의체제를 약화시키기 위해 무역 정책을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외교 정책 엘리트들 대신 대중국 무역을 확대하려는 연합 세력을 구축한 기업의 목소리가 강력해졌다.

_ 공생 중 - P40

클린턴 행정부의 첫해에 워싱턴의 외교 정책 엘리트들은 중국의 인권 개선을 위한 수단으로 무역을 우선시했다. 중국공산당과 국가는 가장 강력한 미국 기업 중 일부를 자신들의 ‘대리로비스트‘가 되도록 동원해 미국 정책을 흔들었고, 민주당 정부가 정치적 자유화보다 중국과의 자유무역을 우선시하도록 만들었다.
사후 정당화로 클린턴 행정부는 중국과의 자유무역이 중국의 민간기업과 중산층에 힘을 실어줄 수 있고, 이는 결국 정치적 자유화의 추진으로 이어진다는 ‘건설적 관여‘ 이론을 내세웠다. 어쨌든 중국은 자신의 권위주의적 일당 통치에 손상을 입지 않고 미국 주도의 세계 자유무역 질서에 성공적으로 스스로를 초대했다.

_ 공생 중 - P50

중국의 경제 상황에서 투자와 수출의 쌍발 엔진은 결국 수출의 단발 엔진이라 할수 있다.

_ 공생 중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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