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엄마는 내가 남편을 혼자내버려두고 심야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이, 또한 결혼한 지 십 년이다 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까지도, 모두 다 작은오빠의 탓인것처럼 흥분했다. - P14

그의 훌륭한 학벌은 흉기나 다름없었다. 그의 주변에는 쟁쟁한재력가들이 우글우글했다. 그의 동문들은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자리들을 줄줄이비엔나처럼 꿰차고 있었다. - P18

파국적 위기를 맞았을 때 인간은 보통 네 단계의 감정을 거친다고 한다. 분노, 부정, 회피, 인정, 아빠가 이혼이라는 뻔뻔한 카드를 내밀었을 때 우리 가족의 반응은 각각의 단계를 대표했다. 나는 지구를 뒤엎을 기세로 분노했고, 작은오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듯이 부정했고, 큰오빠는 자기에게만은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회피했다. 당사자인 엄마만 오히려 모든 단계를 쉽게 뛰어넘어 담담하게 이혼을 받아들였다. - P22

큰오빠가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곧 현금수익을 기대한다는 뜻이었다. 돈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나 사물은큰오빠의 관심권 안에 머물지 못했다. 즉 아빠를 제외한 엄마와 작은오빠와 나는 큰오빠의 관심에서 한참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저 돈 없는 것들과는 멀리 지내는 것이 최선이라는 좌우명을 가진 큰오빠가 무슨 생각으로 나를 여기까지 불렀는지 모를 일이었다. - P36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는 부르면언제든 달려올 수 있다는 거였다. 한 가지 더 알고 있는 게 있다면. 뭘 하든 결국은 망한다는 거다. - P44

우리 가족의 특징은 한 푼도 벌 줄은 모르면서 돈 단위만 대책없이 크다는 거였다. - P76

주여, 제발 스톱. 나는 내가 대한민국 국민인 것을 증오했다. 내가 피치 못하게 김학원의 혈육으로 한세상을 살아가야만 하는 운명이라면, 나는 저기 서아시아나 북아프리카 어디쯤, 명예살인이 허용되는 땅에서 태어났어야 했다. 허리띠에서 신월도를 꺼내 그의 목을 베고 "나와 내 가족의 명예를 더럽힌 자를 처단하는 것은 알라의뜻이요, 알라 외에 신은 없다!" 라고 외칠 수 있는 화끈한 모래땅에서 태어났어야만 했다. - P83

두 올케들이 엄마의 맛없는 반찬들을 쌍수 들어 환영하는 이유는 판이하게 달랐다. 큰올케는 경제적인 관점에서 접근했다. 엄마가해주는 반찬들을 먹으면 식비가 절감된다는 거였다. 작은올케는 타협을 모르는 건강식이의 탈레반으로, 오개닉이 곧 오르가슴이었다. 천연 유기농이라면 양잿물도 항아리째 들이켤 여자였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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