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정원 - 제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바로 그거였다. 아버지는 필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우회 공격을 했다. 게다가 아버지는 실제로 존재하는 문제를 해결하려 들지않고 그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의 약점을 공격함으로써 상대방에게상처를 주고 일을 덮어버렸다. 그래서 엄마가 비열하다고 말한 거였다.

_난독의 시대 중 - P128

열한 살의 나이 차이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던 나는 9년이라는시간 앞에서 결정적으로 기가 죽고 말았다. 그래. 그건 ‘거의‘ 가능성이 없는 일이다. 나를 어른으로 생각하시는 선생님, 웃으면 눈매가 활처럼 굽이치는 곡선을 그리는 선생님,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모르는 우리 둘만의 수많은 약속들을 만들고, 수업이 끝난 다음에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서로의 속마음을 남김없이 털어놓는 박영은 선생님, 선생님과 결혼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거의‘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

_ 난독의 시대 중 - P183

쿠데타가 또 일어날 수는 없을 거라고?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지? 그동안 권력은 군부의 손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어. 권력자에게나 국민에게나 독재는 지겹도록 신은 낡은 구두 같은 거란 말이야. 반면 민주는 한 번도 신어본 적이 없는 새 구두지. 언제까지나 낡은 구두를 신고 살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당장은 새 구두보다 편안해. 군부는, 우리에게 다시 헌 구두를 내밀면서 너덜너덜해져서 더 이상 신을 수 없을 때까지 계속 신으라고 말할 거야. 지금 민주의 희망을 꺾고 다시 군부독재의 시절로 돌아가도록 강압한다면 사람들은 새 구두를 빼앗긴 것에 분노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새 구두를 신고 발뒤꿈치가 쏠리는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에 안도할 테지.

_ 황금빛 깃털의 새 중 - P242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토록 쥐어짜내려 했던 용기는 혁명의 대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동지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한 것이었어요. 결국 나는 눈치를 보고 있었던 거죠.

_ 황금빛 깃털의 새 중 - P248

나는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는데, 영주가 상상했던 것처럼 손등으로 눈물을 닦는 것이 아니라, 여러 번 시멘트 벽이 깨지도록 이마를 들이박았다. 아버지의 이마는 곧 틈새를 열고 짓뭉개진 애벌레의 진물을 내보냈다.

_ 황금빛 깃털의 새 중 - P297

아버지는 꽤 늦은 시간에야 혼자 들어왔다. 엄마와 함께 들어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던 나는 혼자 들어오는 아버지를 보자 맥이 탁풀렸다. 아버지는 방문을 열고 내다보는 나를 보자 걱정 말고 얼른자라고, 엄마는 내일 돌아오실 거라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목소리에 기운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보아 엄마는 내일도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역시나 짐작대로 엄마는 다음 날 돌아오지 않았고, 단지 기력을 회복한 할머니가 일어나 앉아 모실 할머니가 차려놓은 밥상을 깨끗이 비웠다.

_ 정원을 떠나며 중 - P310

외양간에서 버석버석하는 볏짚을 깔고 자고, 깔고 있던 볏짚 한 가닥을 씹는 텅 빈 눈길의 소처럼, 남은 식구들은 물기 없는 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집안일을 다른 사람들이 도와준다고 해도 엄마가 있는 집과 엄마가 없는 집은 하늘과 땅처럼 큰 차이가 있었다.

_ 정원을 떠나며 중 - P329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집에 없으니 집안 꼴도 엉망이고불편한 일도 한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엄마에게 닥친 그 모든 일들을 곁에서 지켜보고서도 우리의 편리만을 따져서 엄마를 원망할수는 없었다

_ 정원을 떠나며 중 - P334

아름다운 정원의 모습은 이제 기억 속에 하나의 영상으로만 남게 되었다. 차가운 철문을 힘주어 당기며 나는 아름다운 정원에 작별을 고했다. 안녕, 아름다운 정원. 안녕, 황금빛 곤줄박이.

아름다운 정원에 이제 다시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나는 섭섭해하지 않으려 한다.

_ 정원을 떠나며 중 - P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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