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싸움을 제외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서로를 견뎠다. 감정을 분출하고 서로에게 욕을 해서 그 반동을 확인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었다. 싸움도 일말의 애정이 있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았고 그도 나를 미워하지 않았다. 나는 그의 말이나 행동으로 상처받지 않았다. 그도 그러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나쁘게 대하는 법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가장 나쁜 건 서로에게 나쁘게 대하지도 못하는 그 무지 안에 있었다. _ 한지와 영주 중 - P129
시간은 지나고 사람들은 떠나고 우리는 다시 혼자가 된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억은 현재를 부식시키고 마음을 지치게 해 우리를 늙고 병들게 한다. 한지와 영주 중 - P164
"네가 왜 이러는지 묻지 않을게. 알게 된다면 마음은 후련해지겠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겠니. 내가 너에게 잘못한 게 있다면, 용서하고용서하지 않고는 너의 자유야. 나의 잘못 때문도 아니라면, 너의 사정때문에 이러는 거라면 그게 무엇이든 나는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누군가의 말 때문에 날 오해했다면, 내 진심을 보지 못했다면 그건 정말안타까운 일일 거야." _ 한지와 여ㅇ주 중 - P172
침묵은 나의 헐벗은 마음을 정직하게 보게 했다. 사랑받고 싶은 마음, 누군가와 깊이 결합하여 분리되고 싶지 않은마음, 잊고 싶은 마음, 잊고 싶지 않은 마음, 잊히고 싶은 마음, 잊히고 싶지 않은 마음, 온전히 이해받으면서도 해부되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고 싶지 않은 마음, 상처받아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 무엇보다도 한지를 보고 싶다는 마음을. _ 한지와 영주 중 - P174
나는 우리 노래가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었다고 생각해. 나만은 어둠을 따라 살지 말자는다짐. 함께 노래 부를 수 있는 행복. 그것만으로 충분했다고 생각해. 나는 우리가 부르는 노래가 조회시간에 태극기 앞에서 부르는 애국가같은 게 아니길 바랐어. _ 먼 곳에서 온 편지 중 - P201
나에 대한 선배의 끝없는 관심과 조언이 고마웠지만 그 고마움만큼이나 불쾌감도 커졌다. 선배가 ‘나‘의 테두리를 짓밟고, ‘나‘라는 공간을 무례하게 침입하는 것 같았다. 선배는 멀리에 있으면서도 내게 너무 가까웠다. 나는 나의 가장 추한 얼굴까지도 거부하지 않는 선배의마음을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애초부터 사랑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인간이었으니까. _ 먼 곳에서 온노래 중 - P206
그녀는 차라리 엄마가 스스로의 처지에 솔직해져서 불평하기를 바랐다. 초라한 현실에 대한 엄마의 감사가 얼마간은 기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_ 미카엘라 중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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