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코의 미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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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중에 섞인 수분은 그 자체로 땀 같았다. 땀구멍으로 땀이 나오는 게 아니라, 공기중에 녹아 있는 땀이 내 피부에 닿아서 흐르는 것 같았다. _ 쇼코의 미소 중 - P22

나는 그냥 쇼코의 가상 친구나 일기장 정도였는데, 쇼코는 그냥 그 일기장에 일기 쓰기를 그만둔 것뿐인데, 일기장 주제에 쇼코의 삶에 개입하려고 했다니. _ 쇼코의 미소 중 - P23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 P24

"하지만 증오할수록 벗어날 수 없게 돼." - P27

쇼코는 마치 그게 가능한 일이라는 듯이 발랄하게 말했다. 나는 다시는 쇼코를 보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저 열일곱 살의 쇼코를 기억하고 연락이 끊어져버린 걸 안타깝게 여기며 그렇게 서서히 잊어버렸으면 좋았으리라고.
뉴욕 시립 도서관 앞에서 하나와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쇼코에 대한 안타까움과 궁금증을 품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렇게 쇼코를 기억 속에서 지워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어디로 떠나지도 못하면서 그렇다고 그렇게 박혀버린 삶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의 맨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은 유쾌하지 않았다. _ 쇼코의 미소 중 - P28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마음속으로 비웃었다. 그런 이상한 오만으로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렸지만, 그때는 나의 삶이 속물적이고 답답한 쇼코의 삶과는 전혀 다른, 자유롭고 하루하루가 생생한 삶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_ 쇼코의 미소 중 - P31

영화 일이 꿈이었다면, 그래서 내가 꿈을 좇았다면 나는 적어도 어느 부분에서는 보람을 느끼고 행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단지 감독이 되겠다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마음에도 없는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나 자신도 설득할 수 없는 영화에 타인의 마음이 움직이기를 바라는 건 착각이었다. _ 쇼코의 미소 중 - P33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했다. 꼬인 혀로 영화 없이는 살 수 없어, 영화는 정말 절실해,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제대로 풀리지 않는 욕망의 비린내를 맡았다. 내 욕망이 그들보다 더 컸으면 컸지 결코 더 작지 않았지만 나는 마치 이 일이 절실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_ 쇼코의 미소 중 - P34

나의 아빠는 교육받아야 할 때 교육받지 못하고 즐겨야 할 때 즐기지 못했던 사람이라며 우리 할아버지를 받아들였다. 아빠가 그토록 질색하는 담배를 할아버지가 환기도 시키지 않고 피우는 것도, 하루종일 소파에 앉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도 그럴 수 있는 거라고 말했다. _ 쇼코의 미소 중 - P52

시간이 지나고 하나의 관계가 끝날 때마다 나는 누가 떠나는 쪽이고 누가 남겨지는 쪽인지 생각했다. 어떤 경우 나는 떠났고, 어떤 경우 남겨졌지만 정말 소중한 관계가 부서졌을 때는 누가 떠나고 누가남겨지는 쪽인지 알 수 없었다. _씬짜오, 씬짜오 중 - P89

헤어지고 나서도 다시 웃으며 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끝이 어떠했는추억만으로도 웃음지을 수 있는 사이가 있는 한편, 어떤 헤어짐은 긴시간이 지나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상심으로 남는다고. _ 씬짜오, 씬짜오 중 - P90

그녀가 내 엄마여서가 아니라 오래 외로웠던 사람이었기에, 이제 나는 사람의 의지와 노력이 생의 행복과 꼭 정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엄마가 우리 곁에서 행복하지 못했던 건생에 대한 무책임도 자기 자신에 대한 방임도 아니었다는 것을
_ 씬짜오, 씬짜오 중 - P92

상대의 고통을 같이 나눠 질 수 없다면, 상대의 삶을 일정 부분 같이 살아낼 용기도 없다면 어설픈 애정보다는 무정함을 택하는것이 나았다. 그게 할머니의 방식이었다. _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중 - P105

세상은 사람에 대한 사람의 사랑을, 제 목숨을 몇 번이고 팔아서라도 사람을 살려내고 싶다는 그 간절한 마음을 도리어 비웃었다. 사람에 대한 사랑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러니 너희 힘없는 인간들은 언제나 조심하고 사는 것이 좋을 거라고, 그 평범한 인간 여덟 명의 목숨 따위가 뭐가 대수냐고, 우리가 법이라고 하면 법이고 빨갱이라고 하면 빨갱이인 거라고, 꿇으라면 끊으라고, 사람 같은 거 명분만달아놓으면 쉽게 죽일 수도 있는 거라고, 그러니 입다물고 말이나 잘 들으라고. _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중 - P108

서로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했던 그런 태도가 서서히 그들의 사이를 멀게 했고, 함께 살았던 시간 동안 쌓아왔던 마음들도 더 이상 그 관계를 지탱해주지 못했다. 엄마가 임신을 하고 아기를 낳는동안 엄마와 이모는 더 데면데면한 사이가 됐다. 임신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이 이모의 힘들었던 시절을 연상시키리라는 생각 때문에 엄마는 몸의 변화나 출산 준비에 대해서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이모에게 전화를 해야겠다고 생각만 하고 미루게 되자 연락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순애 언니……라고 편지를 쓰다가도 할 말이 동이 나서 더이상 쓰지 못했다. _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안니 중 - P114

크게 싸우고 헤어지는 사람들도 있지만 아주 조금씩 멀어져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더 오래 기억에 남는 사람들은 후자다. _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중 - P115

시간은 이모를 한 때 엄마의 삶에 머물렀다 스쳐간 사람으로 기록했고 엄마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_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중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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