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없는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의지도 신념도 없이 굴러온 돌이자 남의 둥지를 탐내는 뻐꾸기일 뿐이라는 말이 깊이 우리를 베고 지나간다 해도 어쩌면 회복할 수 없을 만큼의 상처는 아닐 수도 있었다. 사람들은 그런 부류의 기대를 희망이라고 부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희망이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그러나 연진은 알 수 없었다. _ 경계선 사이로 중 - P128
저는 엄마가 술에 취하면 왜 트리 뒤에서 노상방뇨를 했는지, 뭐가 슬피서 울있던 건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요, 그런 엄마가 너무 싫어서, 단순히 싶은 것이 아니라 부정하고 싶을 만큼 부끄러워서. 단 한 번도 제대로 물은 적이 없었죠. 제게는 산업재해의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의 표본이 바로 엄마인데, 저는 엄마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고 알려 하지도 않았던 거예요. _ 경계선 사이로 중 - P131
남편과 나는서로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게 하는 것에 실패한 셈이다. 어쩌면 우리의 모든 것이 실패했는지도 모른다. _ 파종하는 밤 중 - P146
우리의 계급이 추락했고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술가가 아니라는 선고가 그 고백에 이어질지도 몰랐다. 불안이 실체가 되지 않도록 그의 고백을 차단하여 침묵의 공유지를 유지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할 수 있는 것도 그뿐이었다. _ 파종하는 밤 중 - P147
불안할 땐 대개 그렇듯,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장면만 자꾸 상상됐다. _ 파종하는 밤 중 - P156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M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완성할 것이며 계속해서 익명의 죽음을 카메라에 담을 거라고, 산 자의 기억은 죽은 자의 유일한 특권이기 때문에, 내게는 그것이 위안이 맞으며 절실하게 필요하다고도. 그때쯤이면 남편은 조금은 질린 얼굴로 변해 있을 것이고, 나는 차가운 침묵 속에서 내게 남은 정상인의 함량이 과연평균치인지 고민했을지 모른다. _ 파종하는 밤 중 - P159
고통스러운 위안이었다. _ 파종하는 밤 중 - P16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