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숨
조해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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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이나 가족, 심지어 욕망도 없이 산속 은둔자로 사는 지인이란 속세의 경쟁에서 밀려나거나 패배했을 때 그 쓰라린 마음을 되비춰볼 만한 거울로 퍽 쓸모가 있을 테니까. 상대적인 박탈감을 위로받을 수 있는 영원한 타자……… _ 환한 나무 꼭대기 중 - P12

이곳에서라면 찰랑거리는 물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듯 남은 생을 소모할 수 있겠다는 뜻밖의 기대감이 차올랐다. _ 환한 나무 꼭대기 중 - P17

가장 무서운 게 뭔지 알아? 죽었는데, 죽었다는 걸 알고 느낄 수 있는 거야. 죽었다는 걸 아는 상태는 영원할 거잖아,
죽음처럼, 안 그래?
_ 환한 나무 꼭대기 중 - P19

날마다 그녀의 일부가 하수구로, 하수구의 구정물 속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으며 언젠가는 그녀의 모든 것이 그리될 거라는 비관적인 허무에서 도무지 벗어날 길이 없던 시절이었다. 절에 들어간 이유라면, 오직 그뿐이었다. _ 환한 나무 꼭대기 중 - P28

외로움은 해변으로 밀려와 퇴적되는 세상의 물건들처럼 그녀의 마음 가장자리에 쌓여갔다. _ 환한 나무 꼭대기 중 - P33

인 양 찰랑거리는 여름밤을 올려다봤다. 나뭇가지 무늬로 조각났지만 전체이면서 영원으로 가닿는 밤이었다. 시간이 좀더 흐르자 구름 속에 숨어 있던 꽉 찬 달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그란 달은 이곳과 다른 세계를 이어주는 통로처럼 보였고, 덕분에 그녀는 이 세계가 끝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그것이 진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었다. 달빛은 나무 꼭대기부터 환하게 물들였다. 버스는 오지 않았다. _ 환한 나무 꼭대기 중 - P37

지금껏 내 것인 줄 알았던 트랙에서 벗어나 새로운 트랙에 익숙해져가는 지난한 순례가 시작되는 것이다. _ 흩어지는 구름 중 - P46

석 교수 밑에서 일했던 6년여 동안, 뉴스를 보다가 부역자나 공모자 같은 단어가 들려올 때면 조용히 화장실로 들어가 잇몸에 상처가 날 때까지오래오래 이를 닦곤 했다. 환부나 증상 없이 나는 투병했다.아무도 모르게…… _ 흩어지는 구름 중 - P47

아니, 미래의 유언을 미리 끌어와 남매가겪은 외로움에 지불하려 했다. 한 시절의 외로움이 회수되거나 소비될 리 없으니 미래에서 온 엄마의 유언에는 아무런 지불 능력이 없었다. _ 흩어지는 구름 중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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