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친구들 - 세기의 걸작을 만든 은밀하고 매혹적인 만남
이소영 지음 / 어크로스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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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공동 작업은 같은 소재, 비슷한 구성과 화법으로 완성한 그림으로 남아 있다. 피사로는 세잔에게 "자연과 접촉하며 느낀 감각을 표현하라"고 조언했고, 이 시기 세잔은 "자연이라는 위대한 작품이 간직한 신비를 받아들이고", "일상에서 마주치는 것들"에 새로운 감정을 품고, 조화를 찾아 표현하는 법을 배웠다. 피사로는 교과서적인 지식을 알려주는 선생이 아니라, 흔쾌히 공동 작업에 뛰어들어 실천을 통해 상대를 변화시키는 진정한 의미의 스승이었다. _ 신처럼 너그러웠던 스승 중 - P166

한 세기가 가고 새로운 세기가 도래하던 1900년 즈음,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 빈은 세계에서 가장 특별한 곳이었다. 철학, 심리학, 미술, 문학, 음악, 건축 등 분야를 막론하고 20세기 문화를 설명할 많은 키워드들이 바로 그때, 이 도시에서 싹텄다. 위에 열거한 이들에 의해서 말이다. 그리고 후대의 여러 학자들은 이 도시를 그토록 특별하게 만든 장소로 커피하우스와 살롱을 꼽는다. _ 화가는 빈의 살롱에서 생물학 수업을 듣는다 중 - P240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르네상스 이후 많은 화가들이 해부학에 적극적이었다. 인체를 샅샅이 파악해 ‘겉‘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해서였다. 반면 클림트에게 생물학과 의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가는 도구였다. 인간의 근원, 생명의 본질을 그리고자 했던 클림트는 현미경으로 본 세포의 모습과 정자와 난자의 형상에 매혹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_ 화가는 빈의 살롱에서 생물학 수업을 듣는다 중 - P246

1870년대 프랑스는 과학을 숭배했다. 1871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는 거대한 상실감에 휩싸였고, 바닥에 떨어진국가의 위신을 다시 세우기 위해 과학이 동원됐다. 과학은 자존심이고 해답이었다. 하지만 르동은 시끌벅적한 과학 숭배 속에서 쇠퇴‘와 ‘퇴화‘를 볼 줄 알았다. 진화가 가능하다면 퇴화도 가능할 테니 말이다. _ 어느 식물학자가 전해준 색의 세계 중 - P258

화가는 어떻게 흑백뿐인 세계에서 색의 세계로 넘어갔을까? 사실 그 협곡을 건널 다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르동은 뛰어넘은게 아니라 위로 솟구쳐 올랐을 것이다. 씨앗이 검은 땅속에서 오래숨을 죽이고 기다린 끝에 해 아래로 나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 나비를 맞듯이 말이다. 클라보가 그에게 전해준 불교는 젊은 시절의부처〉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나무 아래 앉은 부처는 꽃무리에 감싸여 있다. 조화로움과 환희로 가득한 화면이다. 르동은 클라보가 추구했던 과학과 신비가 조화를 이루는 생명의 경이를 그렇게 그렸다. - P262

엘리자베스는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일으켜 세웠다. 그러나 그 이름은 시간과 함께 희미해졌다. 엘리자베스 블랙웰의 삶은 앙상한 줄거리만 남아서 전한다. 호의를 베풀어준 사람들이 있었으니 런던은 그녀에게 크기만 하지 척박하고 황량한 곳만은 아니었겠다. 우리는 모르지만 분명 가슴 뭉클한 사연이 한둘은 있었을 것이다. _ 의사들은 왜 식물도감을 응원했나 중 - P272

스승은 자신이 아끼던 파치올리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이론가이자 건축가였던 레온 알베르티에게 소개했다. 전성기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화가와 이론가, 후원자들과 두루 긴밀한 관계를 맺은 파치올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친구로 이탈리아 르네상스가 절정의 꽃을 피우는 순간을 함께했다. 게다가 파치올리는 북유럽 르네상스의 대표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에게 알프스 이남의 원근법을 전달한 사람이다. 루카 파치올리 한 사람에게서 알프스 이남과 이북 르네상스의 거장들이 연결된다. 그는 화가의 제자이자 동료였으며, 예술가들을 연결하는 수학자였다. _ 르네상스 거장이 수학책에 삽화를 그린 이유 중 - P286

예술 작품 속에는 늘 우리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숨어있다. 화가와 소설가는 작품을 통해 과학 기술의 발달과 생명에 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예술가의 자리는 안도 밖도 아닌 경계에 있다. 그래서 그들에겐 외로움이 숙명처럼 붙어 다닌다. _ 보름달 밤의 회합이 낳은 그림 중 - P297

릴케는 레퀴엠에서 "삶과 위대한 예술 사이에는 어딘가 해묵은 적대감이 있다며 어머니 되기라는 숙제 때문에 완벽한 예술가가 되지 못하고 죽은 친구의 삶을 통탄했다. 하지만 파울라에게 예술과 모성은 적대 관계가 아니었다. 파울라는 스스로 어머니 되기를 선택하면서 그 둘 사이의 조화를 용감하게 추구했다. 임신과 출산은 타협이 아니라 도전이었다. 그러니 그녀가 건강하게 화가이자어머니로 더 살았다면, 더없이 좋았을 것이다. 여전히 자아와 모성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수많은 여성들에게, 힘을 주는 그림들을 참많이 그렸을 것이다. _ 뒤늦게 전달된 릴케의 진혼곡 중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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