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산등성이에 퍼져가는 집들을 만든 것은 서울에 모여든 피란민들이며, 그들 또한 서울의 도시 경관과 풍경을 만들어내는 힘이다.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한 박정희 대통령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한것은 서울의 인구 조절과 그에 따른 정책" 이라는 농담이 있었을 정도로, 그들의 삶은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국가정책을 무력화하거나 그것을 초월하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만들어내는, 함부로 파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힘이다. _ 개발의 불도저, 파국을 맞이하다 중 - P301
1970년대 ‘민중‘에 대한 숱한 논의들은 민중의 전형을 만들어왔다. 불결하지만 건강하고, 좌절하지만 저항하는 사람들로서의 민중, 더럽고 남루한 환경에서 살지만 누구보다 정 많고 활기차며, 적절한 시기에 다다르면 저항의식을 드러내는 민중이란 사실상 실체가 없이 상상된 허구의 관념이다. 고향을 떠나 서울의 빈민가를 굴러다니다 광주대단지까지 흘러들어온 밑바닥 인생이라면, 으레 가져야 하는 품성과 의식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_ 개발의 불도저, 파국을 맞이하다 중 - P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