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 이 불안하고 소란한 세상에서
이윤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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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본디 내성적인 사람들에게 중요한 조건이다. 그들은 틈과 간격 속에서 판단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듣자마자 대꾸하고, 말하자마자 행동하는 것은 내성적인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속도다. 말보다 글이 편한 것도같은 이유에서다. 글에는 내가 직접 운용할 수 있는 틈과간격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조바심이 생기지 않고, 내성적인 사람들의 에너지는 조바심이 없을 때 발휘된다. _ 세상은 내게 결코 편지를 쓰지 않겠지만 중 - P16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교감과 소통에 대한 갈망이 덜한 게 아니다. 다만 빨리, 한꺼번에 하지 못할 뿐이다. 머뭇거리고 주춤거리기 좋은 틈과 간격 속에서 내성적인 사람들은 더 깊고 단단한 통로를 낸다. 글쓰기도 그렇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따지기 앞서, 글을 적어나가는 과정에서 확보되는 거리가 쓰는 사람을 안심시킨다.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물러섰다가 한 번 더 고민한 뒤에 한 걸음만 나아가도 된다는 사실이 그들의 에너지를 끌어낸다. - P17

이것은 세계에 보내는 편지야.
세계는 결코 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지만.
-- 에밀리 디킨슨 - P19

쓰기‘가 통증을 줄여준다는 것,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아팠나, 어떻게 아팠나, 얼마큼 아팠나, 아프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 병원에 가면 의사가 으레 묻는 말들에 대답하듯 그냥 내가 직접 묻고 답했다. 다른 점은, 병원에서는 문진 뒤에 처방을 따로 해주지만 글쓰기는 자문자답의 과정 자체가 처방이 된다는 점이었다. 쓰면 나아졌다. _ 슬픔이 언어가 되면 슬픔은 나를 삼키지 못한다. 중 - P21

슬픔이 언어가 되면 슬픔은 나를 삼키지 못한다.
그 대신 내가 슬픔을 ‘본다‘.
쓰기 전에 슬픔은 나 자신이었지만
쓰고 난 후에는 내게서 분리된다.
손으로 공을 굴리듯,
그것은 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무엇이 된다. - P22

글쓰기도 마가지다. 적어도 내게 이것은 기계적으로 채워지는 루틴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태도에 가깝다. _ 쓰는 사람을 모욕하긴 힘들다 중 - P32

기쁨은 언어가 되는 순간 불어나고 슬픔은언어가 되는 순간 견딜 만한 것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_ 그건 짜증이 아니라 슬픔이지 중 - P37

내가 겪은 일을 언어로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은
희한하게도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것이 구체적인 세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지 못해도,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내게 구체적인 힘이 되었다. - P41

삶이 너무 지독할 때는 쓸 수가 없다.
하지만 지독하지 않으면 쓸 이유가 없다.
그 중간의 어딘가에
모든 글쓰기가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 P44

마치 어떤 사람이 마음이 악해서가 아니라 단지 외투의 단추를 풀고 지갑을 꺼내기 귀찮아서 거지에게 적선을 베풀지 않은 것처럼, 삶은 나를 그렇게 대했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 P59

세상에서 나밖에 모르는 나의 고통을, 세상에서 내 고통이 으뜸이라는 술주정이 되지 않게 하면서도, 세상에 굳이 전달해야 하는 이유를 예리하게 찾아내야 한다. 고통받되 고통에 잡아먹히지 않고 고통을 바라보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_ 에세이가 술주정이 되지 않으려면 중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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