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글쓰기는 오롯한 목표였던 적이 없다. 글을 쓰고 싶어서 글을 썼던 적도, 글쓰기가 행복했던 적도 없다. 그럼에도글쓰기를 멈추지 못하는 이유는 외면하지 못해서이다. _ 나는 왜 쓰는가 중 - P19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Si vales bene, va-leo) 라틴어로 쓰인 이 글귀는 로마인들이 편지를 쓸 때 첫 인사로 사용하던 말이라고 한다. ‘그대가 평안해야 비로소 나도 평안하다‘는 로마인들의 인사법에 마치 그런 인사를 건네받은 것처럼 마음이 먹먹해진다. 오늘 스쳐 지나간 당신이 잘지내는 것은 나의 안녕의 조건이다. 37도의 열덩어리가 아닌 사람들의 평안을 기원한다. _ 4 당신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중 - P194
오늘 내가 타자에게 베푸는 환대는 미지의 어느 날 내가 혹은 내 후대가 이 세상 어딘가를 유랑하는 타자가 되었을 때 받기 원하는 대접에 다름 아니다. - P202
5500만 광년 저편 우주의 일도, 배달원의 노동 없이는 드러날 수 없었다. 지상에서 한 집배원이 소리 없이 사라져가는것은, 한 우주의 상실이다. - P206
문화혁명의 격동기를 살아내며 배신과 자기부정, 우정, 사랑을 발견했던 중국의 작가 다이허우잉은 자전적인 소설『사람아 아, 사람아!』에 이런 구절을 남겼습니다. "함께 배웠다 하여 끝까지 같은 길을 걷는 것도 아니며 길이 다르다 하여 반드시 다른 목적지에 이르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때, 서로가 선 자리가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P218
홍보영상 아래 넣은 CNN의 메시지는 이렇게 마무리된다. "사실이 확립된 뒤에 의견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의견도중요하지만 그것이 사실을 바꾸지는 않습니다." 사과는 바나나가 아니고, 지구는 평평하지 않다. 사실은 아무리 사소해도 사실이다. - P222
내 편은 선이고, 상대는 악의 영역에 있으며 듣기 싫은이야기는 차단해버리면 그만이라는 세상에서 흘러 다니는이야기들은 뻔하고 겹이 얇다. 그렇게 얄팍한 이야기들은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지 못한다. - P226
수정처럼 맑고 단단한 슬픔은 어둠에 모든 것이 묻힌 세상을 비춘다. _ 1 안부를 묻다 중 - P78
세상의 어린 생명들은 누군가의 등에 업혀 비바람을 피하고, 누군가가 그 어린 발을 만져주며 잘 자라거라 기원해주는 공덕으로 마침내 땅을 딛고 일어서서 걸어간다. 나 또한 그런 어린 생명이었을 게다. _ 2 귀한 시간 중 - P84
험한 세상에 아이들을 내어보내려면, 맷집을 기르듯이어떤 어려움이 와도 견디라고 엄하게 가르치기보다는 부모가 너희들을 존중했듯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네 것이든 남의 것이든 그 존중이 침해당할 때 반드시 자기도, 억울한 다른 사람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게맞는 일인 것 같기는 한데. 내가 세 번 생각하고 백 번을 참지못하는 엄마라서……. 91
부모란 아이와 함께 있으면 애가 뭘 잘 못하는지만 눈에 보이고, 혼자 있으면 내가 뭐가 부족한 사람인지만 떠오르는 자리인 것 같다. - P106
우리는 반항하는 법을 잊은 것이냐고, "페스트를 이기는 유일한 답이 성실성"인 것처럼 아름다움과 굴욕 그 어느 하나에도 불성실할 수 없는 것 아니나고. _ 3 잃어가며 읽고 쓰기 중 - P140
말들을 가슴에 새겨 넣듯 붉은 볼펜으로 밑줄을 긋던 아이도 없고, 술에 취해 울음 대신 무언가를 꾹꾹 써 내려가던기갈 든 청춘도 없다. 남아서 변색되어가는 오래된 책들은 그저 내게 ‘꽃시절이 모두 지나고 나면 봄빛이 사라졌음을 알게 된다. 천만 조각 흩날리고 낙화도 바닥나면 우리가 살았던 곳이 과연 어디였는지 깨닫게 된다’고 알려줄 뿐이다. - P166
타향에서 고향을 느낄 수 있었던 건, 네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기도 해. 그곳에 다시 가도 네가 있을 거란 사실에, 내 마음이 편안해진다. - P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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