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를 보면 녹아내리는 빙하는 극적인 장관이다. 어마어마한 얼음덩어리가 우르릉 쾅쾅 부딪히며 바다로 흘러든다. 하지만 죽어가는 빙하는 봄만큼 조용하다. 얼음은 열기와 햇볕에 녹아 개울이 되어 졸졸 흐른다. 사실 죽어가는 빙하는 슬프고 연약한 광경이다. 말없이 사라지는, 레이철 카슨이 살충제가 자연에미치는 영향을 다룬 책의 제목에 이미 쓰지 않았다면 이 상황을 ‘침묵의 봄‘이라고 불러도 좋으리라. 봄이 가면 여름이 온다. 기나긴 지구의 여름이. (p.214)
오펜하이머의 핵폭탄은 새로운 지질시대를 표시하기 위해 선택된 기준점이지만, 지질학적 전환점은, 새로운 지질학적 세기는그 이전인지도 모른다. 지구온난화, 빙하 해빙, 해수면 상승, 해수산성화, 멸종으로 알려지게 될 인류의 지질시대는 1736년 스코틀랜드 그리녹에서 태어난 제임스 와트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p.218)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은 석유 연소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천연가스와 석탄도 한몫한다. 우리는 해마다 약 40억 톤의 석탄을 태운다. 한 사람당 600킬로그램 꼴이다. 해마다 120억 톤의석유, 천연가스, 석탄을 태워 얻는 탄소 에너지는 360억 톤 이상의 CO2로 전환된다. 무려 36기가톤이다. (p.226)
우리가 지금 누리는 안락한 삶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들을 희생시킨 대가다. (p.229)
화폐, 산업, 생산 능력을 바탕으로 세상을 정의하는 사람들은생물학, 지질학, 생태학을 굳이 이해하려 들지 않는 듯하다. 그들은 통계를 계산하여 상황을 낙관한다. ‘바람직한 경제 전망‘이라는 말 속에는 지구에 치명적이고 미래에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 석유 생산량을 늘리는 것은 경제에 유익하다. 알루미늄 생산량을 배가하는 것도 유익하다. 경제성장은 지속 가능성과 지속 불가능성을 구별하지 않는다. 튼튼해지는 것과 뚱뚱해지는 것, 자궁에서 태아가 자라는 것과 종양이 자라는 것을 구별하지 않는다고 상상해보라. 그들에게 성장은 무조건 좋은 것이다. 양성이든 악성이든. (p.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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