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치운 누군가의 죽음으로 누군가의 살림이 채워졌으니 이 건물의 죽음과 살림엔 구분이 없었다. 이 건물에서 산다는 것과 죽는다는 것의 차이는 내가 거둔 유품과 내가 파는 고물의 차이만큼이나 가까웠다. (p.348) _ 40. 망치 중에서

그들과 나의 가난은 아무리 망치질을 해도 수리되지 않았다. (p.351) _ 40. 망치 중에서

그놈(들)이 묻힌 불법의 얼룩 때문에 최용구는 국가기관과 금융회사들로부터 20년 가까이 추궁을 받고 있었다. 범죄집단과 포악한 사회가 누가 주범인지 모를 만큼 시스템처럼 얽혀 거리에 부려진 그의 살을 바르고 뼈를 추렸다. 그의 범죄가 아니라고 말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고, 왜 그의 범죄가 아닌지도 최용구는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 (p.363) _41. 그놈 중에서

그날 그 코스에서 점심을 무료로 먹을 수 있는 ‘거기‘는 ‘거기’뿐이었고 거기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그때’뿐이었다. (p.385) _ 43. 단짝 중에서

실패하더라도 본전이었다. 도박은 자제가 안 된다고 하지만 도박을 자제시키는 것은 가난이었다. (p.396) _ 45. 쾅쾅 중에서

자신의 가난을 전시해서라도 부끄러움보다 무서운 배고픔에 맞서는 일은 격렬한 순례였다.
얻어먹는 자들의 걸음도 벌어먹는 자들의 노동만큼 고단했다. 몸을 쓰고 기운을 소진해야 밥을 먹을 수 있다는사실은 벌어먹는 자나 얻어먹는 자나 다르지 않았다. "몸이 힘든 것보다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더 싫었던" 조만수도 굶주림 앞에서 부끄러움을 죽였다. (p.413) _ 46.순례 중에서

그때마다복지와 행정은 어딘가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국가는 희미하고 개인의 고통은 선명한 사회에서 "이런다고삶이 나아지진 않겠지만 죽지 않을 순 있겠다"며 의지해온
‘이런 일이 짤짤이였다. (p.415) _ 46. 순례 중에서

12시간 10분 동안 26.3킬로미터를 걸었다.
자전거를 1.7킬로미터 탔다.
지하철로 39개 역을 이동했다.
교회 열세 곳과 성당 세 곳, 사찰 한 곳과 학교 한 곳을돌았다.
무료 식사 세 끼, 라면 두 개, 티셔츠 한 개를 얻었다.
현금은 8800원이었다.
(p.417) _ 46. 순례 중에서

나의 우울은 충격이 더는 충격이 아닐 만큼 점점 충격적으로 변하는 내 삶의 쓸쓸함에서 왔다. (p.421) _ 47. 미소 중에서

이런 생각.
가난해서 무능하고 무능해서 가난하다는 생각.
네 가난은 충분히 노력하지 않은 네 탓이지만,
내 부모의 재산은 타고난 나의 능력이란 생각.
그런 생각.
(p.424) _ 47. 미소 중에서

중단된 리모델링 앞에서 가난은 리모델링되지도 보수되지도 않았다. (p.446) _ 50.땜질 중에서

그들의 젊은 날은 서로 다른 시기에 속했고, 그들의 기억은 서로 다른 길 위에뿌려져 있었다. 평생 만난 적 없는 그들은 평생 쌍둥이 삶을 살았다. 국가가 ‘정화‘를 선언할 때마다 닦아야 할 얼룩처럼 청소됐고, 도시가 ‘정비‘를 추진할 때마다 수리해야할 부품처럼 교체됐다. (p.451) _ 52. 쌍생 중에서

도시가 지우려 해도 그들은 완벽하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들을 변방으로 밀어내며 도시는 덩치를 키웠다. 수십년 거듭된 ‘정비‘와 ‘정화‘로 동자동과 남대문로5가 주위엔올려다보기도 벅찬 빌딩숲이 솟았다. 그 숲들이 강렬한을 발산하며 어둡고 움푹한 방들을 굽어봤다. 닮은 것이두 사람만은 아니었다. 박철관과 김형구가 숲을 헤치며 오간 길은 그들만의 경로가 아니었다. 50년 넘게 그 길을 밟아온 ‘박철관들’과 ‘김형구들’의 걸음이 박철관과 김형구의가난한 경로 위에 누적돼 있었다. 밝고 맑은 도시는 자력으로 존재할 수 없었다. 어두운 것들을 몰아넣은 땅이 있어야 그들 없는 깨끗하고 찬란한 도시도 완성됐다. 불결한그 땅이 사라지면 순결한 도시도 유지되지 못할 것이었다.
닦아도 닦이지 않는 얼룩처럼 수십 수백 수천의 쌍둥이 삶들이 도시에 묻어 끝내 살아갈 것이었다. (p.460) _ 52. 쌍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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