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하지만 나는 이 말을 하지 못했다. 어느 시인은 "가난은 순간적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고도 했지만 이 시대의 가난은 순간적이지 않아 보였다. 보통은 대물림되고 빠져나오기 어려운 늪이 되는 것 같았다. 신애도 가난의 핸디캡을 뛰어넘어 디자이너의 꿈을 이루기란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오늘도 신애는 10킬로그램이 넘는 상자를 번쩍 들어 올리며 밝게 웃고 있었다. (p.150)

하지만 경비에게는 꽃잎도 치워야 할 쓰레기다. 종일 꽃잎을 쓸고 있는 내게 고참이 한 수 가르쳐 준다면서 말했다.
"이 사람 경비원 되려면 아직 멀었군. 그렇게 꽃잎만 쓸다가 다른 일은 언제 하나. 꽃은 말이야, 봉오리로 있을 때 미리털어 내야 되는 거야. 꽃이 아예 피지를 못 하게 하는 거지. 그래야 떨어지는 꽃잎이 줄어들거든, 주민들이 보게 되면 민원을넣게 되니까 새벽 일찍 털어야 해." (p.180-181)

문제 해결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결국 불법 주정차 단속은 철저히 하되 이로 인해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경비원 몫이라는뜻이었다.
본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민원은 이유를 막론하고 이름이거론된 사람의 잘못으로 처리되며, 본사에서는 나를 잘라 달라는 요구에 대한 처리 결과를 민원인에게 통보한다고 했다.
화장실에서 거울을 봤더니 내 눈에 우울함이 잔뜩 서려 있 었다. 한참 동안 나를 바라봤다. 지금쯤 그들은 내게 했던 일들 을 모두 잊었을 텐데 나 혼자 잊지 못하고 눈물을 쏟고 있었다. (p.189)

그러나 가마 타는 사람은가마 메는 사람의 수고를 알지 못한다고 했다. (p.230)

내가 처음으로 부상을 입었던 동명고속은 영세한 기업이었다. 그러나 일하다 병에 걸렸던 터미널고속은 국내 굴지의대기업이었다. 영세한 기업도, 대기업도 아프면 바로 자를 줄만 알지. 치료해 줘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파견 근로자는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더라도 일회용품과 다름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p.249)

아내 매원, 둘째 출산을 앞둔 딸 아명이, 사위 황 서방, 손녀,
서연이, 아들 우명이에게 사랑을 전한다. 가족에게 부탁이 있다. 이 글은 이 땅의 늙은 어머니 아버지들, 수많은 임계장들의 이야기를 나의 노동 일지로 대신 전해 보고자 쓴 것이니 책을 읽고, 몰랐던 것을 알게 되더라도 마음 아파하지 말기 바란다.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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