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계장 이야기 - 63세 임시 계약직 노인장의 노동 일지 우리시대의 논리 27
조정진 지음 / 후마니타스 / 2020년 3월
평점 :
절판


나는 삶에 대해 낙관적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삶에는비상구가 있기 마련이고, 살고자 하면 살아남는 법‘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갈 날들을 근심하지 않았고 노후에 대해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퇴직하자마자 전혀 생각지 못했던 상황들이 연달아 돌출했다. 언제 어디서나 있을 것이라 믿어 왔던 삶의 비상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p.15)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원죄에 가까운 것이었다. (p.17)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보급이 전혀 없는 병사들과 같았다. 보급품이 필요하면 자신의 시급을 털어 넣어 조달해야 한다. 시급 일터는 다 그랬다. (p.35)

호칭은 바뀌지 않았다. 계속 듣게 되니 이제 남은 삶은 온전히 임계장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이 들면 온화한 눈빛으로 살아가고 싶었는데 백발이 되어서도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생계를 이어 가게 될 줄은 몰랐다. 문득터미널을 둘러봤다. 구석구석을 쓸고 있는 등이 굽은 할아버지들과 늦은 오후 영화관으로 출근하는 할머니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터미널만 봐도 인력의 80퍼센트가 비정규직이고 그중많은 수가 임계장들이었다. 이 고단한 이름은 수많은 은퇴자들이 앞으로 불리게 될 이름이기도 할 것이다. 임계장은 나 혼자가 아니었다. 어느덧 나는 임계장을 내 삶의 2막에서 얻게 된새로운 이름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래, 이제부터 내 이름은임계장이다! (p.39)

그들은 걸핏하면 나한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 이라고 했다. 그러나 산재를 입은 직원을 치료해 주는 것은 그들이알아야 하는 세상 물정이었다. 그들은 세상 물정이라는 말로 당연하지 않은 것을 당연하게 만들어 버렸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소송을 하든, 노동청에 진정을 하든 법에 호소한다면 이길 수 있었을 것이다. (p.45)

경비원을 시작할 때 선임자가 해준 첫 번째 충고는 주민과 다투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랬다. 다투면 항상 졌다. 내가 옳으면 주민은 항상 더 옳았다. (p.69)

힘없는 노인들의 심부름은 힘이 조금 남아 있는 내가 기꺼이 해드렸다. 그러나 멀쩡하게 젊은 사람들의 심부름은 기꺼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거절하기는 더 어려운 노릇이었다. (p.81)

물론 아파트 주민들이 모두 김갑두는 아니다. 주민들은 좋은 사람 소수와 무관심한 다수, 그리고 극소수의 나쁜 사람, 이렇게 세 가지 유형이 있었다. 사실 고마운 사람들도 많았다. (p.10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