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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잊은 그대에게 - 공대생의 가슴을 울린 시 강의
정재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5년 6월
평점 :
품절
빛은 실재이고 어둠은 결국 현상에 불과한 것. (p. 101)
그런데도 왜 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걸까. 외롭기 때문이다. 외로운 자들은 하늘을 본다. 거기서 그들은 별을 만나고 대화를 하며 위로를 구한다. 가장 순수하고 고결하며 아름다운 우주적 존재와 홀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알퐁스 도데의 목동도, 윤동주도 하나같이 외로운 사람들이다. 외롭지 않다면 굳이 밤하늘 별을 헤아릴 이유가 없다. (p.54)
동백꽃은 해안선을 가득 메우고도 군집으로서의 현란한 힘을 이루지않는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 동백은 떨어져 죽을 때 추접스런 꼴을 보이지 않는다. 절정에 도달한 그 꽃은, 마치 백제가 무너지듯이, 절정에서 문득 추락해버린다. ‘눈물처럼 후드득 떨어져버린다. ......
매화는 질 때, 꽃송이가 떨어지지 않고 꽃잎 한 개 한 개가 낱낱이 바람에 날려 산화한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가지에서 떨어져서 땅에 닿는 동안, 바람에 흩날리는 그 잠시 동안이 매화의 절정이고,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배꽃과 복사꽃과 벚꽃이 다 이와 같다. 선암산 뒷산에는 산수유가 피었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산수유가 사라지면 목련이 핀다.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꽃잎을 아직 오므리고 있을 때가 목련의 절정이다. 목련은 자의식에 가득 차 있다. 그 꽃은 존재의 중량감을 과시하면서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올린다. 꽃이 질 때,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 누렇게 말라 비틀어진 꽃잎은 누더기가 되어 나뭇가지에서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목련꽃은 냉큼 죽지 않고 한꺼번에 통째로 뚝 떨어지지도 않는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꽃잎 조각들은 저마다의 생로병사를 끝까지 치러낸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천천히 진행되는 말기암 환자처럼,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야 비로소 떨어진다. 펄쩍, 소리를 내면서 무겁게 떨어진다. 그 무거운 소리로 목련은 살아 있는 동안의 중량감을 마감한다. 봄의 꽃들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 가벼운 꽃은 가볍게 죽고 무거운 꽃은 무겁게 죽는데, 목련이 지고 나면 봄은 다 간 것이다. - 김훈, <자전거 여행> 중에서 p. 64-6
자기한테 세금의 혜택이 돌아오는 것은 공평한 일이고 자기돈이 타인의 혜택으로 돌아가면 불공평하다고 여기기 일쑤다. 더가공할 일은 불평등을 당연시하는 시선, 곧 무관심이다. 그것은또 다른 가난, 곧 마음의 가난이다. (p.90)
빛은 실재이고 어둠은 결국 현상에 불과한 것. (p. 101)
눈을 떠도 아니 보이고 눈을 감아도 아니 보이는 것, 그대 등 뒤에 걸린 커다란 하늘은 실눈을 뜨고서야 비로소 보인다. - 그대 등 뒤의 사랑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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