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 김영민 논어 에세이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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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를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구나!" 자공이 말했다. "어째서 선생님을 알아주는 이가 아무도 없겠습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탓하지않고, 범속한 것을 공부하는 것으로부터 고매한 곳에 이르니, 나를 알아줄 것은 아마 하늘이런가!"

子曰, 莫我知也夫, 子貢曰, 何爲其莫知子也, 子曰, 不怨天, 不光人, 下學而上達, 知我者其天乎.

- 논어, 헌문편 중에서, (p. 108)

공자의 이 언명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임기응변(權)이란, 규범에 맞추어 자신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立) 경지를 완수한사람에게나 가능한, 최후의 경지라는 사실이다. (p. 124)

새로운 답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채로, 21세기 한국에서도 여전히 많은 아이들이 동의 없이 태어나고, 많은 노인들이 동의 없이 요양원으로 실려 간다. (p. 182)

우리가 일으킬 수 있는 ‘기적‘은 오직 ‘밍기적’뿐이라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밍기적 유토피아‘가 실현된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게으른 사람들에게 큰축복일 것이다. 그러나 그 유토피아는 아무 일도 하지 않 았기 때문에‘만사형통하는 세계인가, 아니면 아무것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만사형통하는 세계인가. (p. 189)

단조로움과 화려함의 대조가 빚는 간극이야말로 피지배층과 지배층의 간격이다. 지배층은 자신의 아름다움과 화려함이 두드러지도록, 피지배층은 초라하고 단조로운 상태에 머물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피지배층이 지배층의 아름다움을 동경하는 순간, 그 피지배층은 지배층의 지배와 사회의 위계 질서를 감수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치 아름다운 사람이 뱉는 침과 그가 때리는 따귀라면 감수할 용의가 있는 것처럼. 부러우면 지는 거다. 아니, 부러우면 지배당하는 거다. (p. 198)

더 창의적인 재현은 현실’을’ 모사하고자 하는 집착을 버리고, 현실에 ‘대하여’ 재현하려 든다. 영정 사진이 얼마나 훌륭한지는, 그 영정 사진이 망자의 검버섯 하나하나를 얼마나 핍진하게 보여주고 있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망자에 ‘대하여’ 얼마나 잘 이야기해주고 있느냐에 의해 결정된다. (p. 220)

시작이 있는 것은 끝이 있기 마련, 더 나은 세상을 열망했던 사상가들도 그렇게 죽음을 맞이한다.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이 지구도 언젠가는 차갑게 식을 것이다. 재현에 종사하는 이들의 궁극적인 소망은 이 지구의 영정사진을 찍는 것이다. (p.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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