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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간신히 희망할 수 있는 것 - 김영민 논어 에세이
김영민 지음 / 사회평론 / 2019년 11월
평점 :
『논어』 ‘미자微子‘ 편은 말한다. ˝도가 행해지지 않음은 (공자도) 이미 알고 있다.˝(道之不行 已知之矣.)이것은 공자를 모순적이며 비극적인 인물로 만든다. 그는 실패할 것임을 알면서도 그 실패를 향해 전진한다. 그리고 이러한 일견 비합리적인 행동은, 눈앞의 손익을 따지는 이는 꿈꾸지 못할 영웅적인 광채를 공자에게 부여한다. (p. 50) _ 모순과 함께 걸었다 중에서
이와 같이 침묵을 매질媒質로 삼은 메시지는 그에 걸맞게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독해자를 요청한다. 이것은 『논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논어』에서 공자孔子(기원전 551~479)는 말하거나 혹은 침묵한다. 그리고 한걸음 더 나아가 명시적으로 자신은 특정 사안에 대해 침묵하고자 함을 표명한다. "나는 말하지 않고자 한다."(子欲無言, 『논어』 ‘양화陽貨 편)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논어』 텍스트 전체는 발화한 것, 침묵한 것, 침묵하겠다고 발화한 것, 이 세가지로 분류될 수 있다. 이러한 분류를 염두에 두고, 독해자는 의도된 침묵마저 읽어낼 자세를 가지고 『논어』를 탐사해 나가야 한다. (p. 29)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말을 하지 않고자 한다."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께서 말을 하지 않으시면, 저희들은 무엇을 좇는단 말입니까?"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이 무엇을 말하더냐. 사계절이 운행하고 만물이 생장한다. 하늘이 무엇을 말하더냐."
子曰, 子欲無言, 子貢曰, 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子日,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 논어, 양화편중에서 (p. 31)
자로가 말하였다. "벼슬하지 않는 것은 의義가 없는 것이다. 장유의 도덕 질서는 없앨 수 없는데, 군신 간의 의를 어찌 그저 없앨 수 있겠는가? 자기 한 몸 깨끗이 하려다 큰 인륜을 망치는 법이다. 군자가 벼슬하는 것은 그 의를 행하는 것이다. 도가 행해지지 않음은 이미 알고 있다." 子路曰, 不在無義, 長幼之節, 不可廢也, 君臣之義, 如之何其廢之, 欲潔其身, 而亂大倫, 君子之任也, 行其義也, 道之不行, 已知之矣. _ 논어, 미자 편중에서 (p. 52)
공자가 떠나버린 일은 조국을 사랑하되, 그 조국을 비판해야 하는 딜레마 속에서, 섬세하게 선택한 사려깊은 행위이다. (p. 59) _ 떠나는 이유에 대해 침묵해야 할 때가 있다 중에서
그렇다면 바람직한 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섬세한 소통과 해석을 가능케 하는 바탕을 공유하고 유지하는 일이 필요하다. 소통과 해석의 질은 곧 정치의 질이기도 하다. 커뮤니케이션이거칠어진 나머지, 구호와 폭력만이 만연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부를 수 없으며, 곧 정치적 타락의 지표가 된다. (p. 61)
세계 학계의 사상사 연구 흐름은 천재적이고 뛰어난 사상가로 알려져 있던 과거의 사상가들이 황무지에서 느닷없이 솟아난 존재들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을 가능하게 한 당대의 지적 담론의 소산이라는 것, 그리고 그들의 명성을 영속시킨 힘도 단순히 그들의 천재성 때문만이 아니라 그 이후 전개된 여러 역사적 맥락 때문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인류의 정신을 새롭게 열어젖힌 천재로 알려진 니콜로 마키아벨리나 존 로크도 그런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었다. (p. 68~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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