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장난감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3
로베르토 아를트 지음, 엄지영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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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장난감

로베르토 아를트 | 엄지영 옮김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013

나는 앞으로 죽은 사람처럼 인생을 살아갈 겁니다. 내 눈에는 인생이 그렇게 보여요. 거대한 노란 사막처럼 말이죠.

263 페이지

언뜻 생각하기론 실비오 저 말은 절망의 말처럼 들리지만 맥락을 이해하면 얼마나 희망에 가득 찬 말인지 알 수 있다. 주류사회에서 밀려난 작가 아를트의 소설 [미친 장난감]은 그 자신이 반영된, 어찌 보면 자전적인 내용인 듯싶다. 돈이 없어도, 교육을 못 받아도 절대 굴하지 않겠다는 다짐, 끝까지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이 아닐까 한다.

돈이 있는 자는 돈이 있기 때문에 윤락한 환경 속에서 매끄러운 문체를 개발할 줄 안다. 하지만 그보다 더한 급하고 새롭고 진기한 것들이 많기에 그는 글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아를트 같이 돈은 없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있고, 쓰겠다고 마음가짐만 갖고 있는다면 문체가 어떻든, 맞춤법이 어떻든지 간에 그 글은 읽히는 글로 쓰여진다. 전자의 글이 오로지 자기 집안사람들만을 위한, 소수들을 위한 글쓰기라면 (흡사 정치인들의 에세이 같은) 후자의 글은 스스로가 반영된 피와 땀이 서린 글쓰기다.

실비오는 책을 통해 꿈을 꿨다. 하지만 그 책이란 것은 거대한 자본의 상징이었다. 어느 것 하나 스스로의 것이 될 수 없었다. 그가 그토록 갈망하면서 읽었던 도둑들의 이야기인 장르 소설 로킹볼을 읽고 그는 위대한 도적이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책에서 읽은 장면, 장면들은 그의 기억 속으로 스며들어 체험하지도 않았는데 흡사 경험한 것처럼 그에게는 읽힌다. 도서관에서 책을 훔치던 날 그들은 루소를 떠올리면서 위로 삼기도 하고, 실비오는 자신의 발명품에 관해서 말할 때에는 로킹볼의 모습을 떠올린다.

소설 속에서는 문학을 돈에 비유해서 신랄한 비평을 한다. 훔친 도서관 책들에 대한 그들의 평가는 때론 너무도 적확해서 전율이 일 정도이다. 절판된 책에서 나올 수 있는 돈, 고등수학 서적에 대한 판단, 보들레르 시인의 전기에 대한 냉철함 (결국 이는 푼돈으로 취급된다.) 등 등은 오늘날에서도 책의 가격을 매기는 데 이와 비슷하다는 것에 놀라운 마음이 든다.

오늘날 출판시장을 보면 이제는 살 만한 책 자체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알록달록한 그림책들, 000 수식어의 화려한 수상 이력, 이슈되는 작가의 배경, 고급 화질의 사진으로 장식된 책들 등등 ... 문고판은 점점 귀해지고, 저마다 판형을 크게 하고 무슨 무슨 에디션, 무슨 무슨 컬렉션, 한정판 표지 등등을 내세운다. 세계문학의 경우는 나오는 출판사들이 너무 많아서 어떠한 것을 골라야 할지 헤매게 된다. 아... 그 속의 내용으로 평가를 해야 하는데, 이미 겉모습에서 패배를 당하는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도 역시 자본의 결과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비오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생은 아름답고 찬란하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그가 아르세니오 비트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의 찬란함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알았다. 그것이 비록 영원하지는 않을지라도 믿는다는 것을... 그와 악수를 나누다가 돌아서면서 의자에 부딪혀 넘어질 뻔했다는 것... 삶이란 것이 언제든 스스로의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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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4
보리스 비앙 지음, 이재형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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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보리스 비앙 소설 | 이재형 옮김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014

딱 100페이지만 읽고 일어나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나를 그렇게 놔주질 않았다. 결국 친구와의 약속시간에 늦고 말았다. 보리스 비앙의 [너희들 무덤에 침을 뱉으마]는 그가 다른 이름인 버넌 설리번으로 발표한 누아르 소설이다. 친구인 폴 베르농과 재즈 피아니스트인 조 설리번에서 빌려 온 이 이름은 후에 사람들의 세간에 오르내린다. 과연 이런 누아르 소설을 창조해 낸 작가 버넌 설리번은 과연 누구인지 말이다. 이 소설은 보리스 비앙이 영어판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로 인해 엉겁결에 보리스 비앙은 영어 원서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를 위해서 영어로 소설을 다시 썼다고 한다. 소설의 성공이 참 묘하게도 작동했던 지점이었던 같다. 거짓을 참으로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위해 다시 거짓을 참으로 만들기 위해 증거 또한 만들어 내야 하다니 말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화자 리 앤더슨이 전체적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소설은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 앤더슨을 미국 남주 지역 도시 벅턴으로 보내지면서 다시 새로운 이야기가 태어나는 형식이다. 앤더슨이 겪은 일은 초반에 언급된다. 그는 거의 백인에 가까운 흑인이지만 사람들의 이목에는 그는 여전히 흑인이었으며, 그의 집안은 흑인 집안이다. 앤더슨의 어린 동생이 백인 여성을 사랑하게 되지만 이는 곧 비극적인 죽음으로 이어진다. 바로 여자아이의 아버지와 오빠가 동생을 죽였으니 말이다. 아마 이 당시에는 흑인과의 접촉 만으로도 커다란 이슈로 여겨졌음에 틀림없다. 서로가 서로를 전염병 보듯 했을 그 살벌한 풍경이 연상된다. 영화 [그린 북]에서도 상당히 충격적인 차별에 대해서 나오는데 막상 그것을 겪어본 자가 아니라면 차마 이해한다고 말하지도 못했을 그런 종류의 인종 차별이리라...... .

리 앤더슨은 동생에 대한 죽음으로 인해 백인 사회에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그가 벅턴에 온 계기는 형인 톰이 그를 살리려고 보냈을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새로운 복수의 장을 여는 시작점이 된다. 여기서 아주 완벽한 사냥감을 발견했으니 말이다. 처음부터 앤더슨은 치유되지 못할 병에 걸린 사람으로 보인다. 어차피 그는 동생의 죽음으로 스스로도 죽였다. 아무리 외모가 백인 같아도 그는 백인은 아닌 것이다. 아무리 노래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그 목소리 역시 흑인 블루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소설 속을 관통하는 폭력, 그리고 그보다 더한 폭력으로 묘사되는 섹스... 흡사 여성에게 가하는 잔인한 성적 묘사는 몹시도 폭력적으로 그려져 사실 읽는 내내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그리고 왜 리 앤더슨은 복수의 대상을 자신과 아무런 상관없고, 그저 그를 좋아했던 여성으로 삼아야 했는지는 이해가 가질 않는다. 처음부터 흑인임이 알려졌더라면 사람들이 그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을까? 그래, 아마 달라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의 형 톰에게 친구 클렘이 존재했던 것처럼...... . 결국 마지막에 그의 복수심은 채워졌을지 모르지만 그의 무덤에 찾아오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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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1
에밀리 브론테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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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장편소설 |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011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의 강렬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한바탕의 거센 물결이 내 속의 휘젓다가 고요히 잔잔해진 느낌이라고 할까? 아니면 시종일관 파도타기를 한 서핑 선수와 빗대어 표현될 수 있을까? 생애 첫 소설이 이토록 강력할 수 있다니 새삼 에밀리 브론테의 이른 죽음이 안타까워진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그녀의 하나밖에 없는 유작이다. 결핵에 의해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그녀는 제인 에어로 유명했던 언니인 샬롯 브론테의 동생이다. 1847년에 이 작품이 발표됐지만 때마침 같이 나왔던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만큼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사후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 비견될 만큼 명작으로 인정되며 세간의 칭송을 받는다.

고립된 시골마을의 두 가문이었던 언쇼집안과 린턴 집안... 언쇼 집안의 소유는 폭풍의 언덕이고, 린턴 집안의 소유는 티티새 농원이라 불린다. 원래 소설의 원제는 워더링 하이츠였지만 우리말로 옮길 적에 폭풍의 언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원제 그 자체여도 나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들이 너무 많거나 왜곡되니까 말이다.

언쇼 집안에 찾아온 히스클리프... 그는 고아로 자라서 이 집에 오지만 양쪽 집안에서 모두 환영받지 못한다. 그를 유독 따뜻하게 맞아준 이는 오직 한 명, 바로 캐서린뿐이었다. 후에 그토록 사랑하던 캐서린이 언쇼 가문의 남자인 에드가가 결혼하자 히스클리프는 복수심과 질투심에 불타올라 집을 나가게 된다. 그 후 다시 돌아온 그는 달라져있었다. 온통 복수심으로 무장한 채로 언쇼와 린턴 가문 모두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히스클리프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준 이가 한 명 있다면 그는 아마도 힌들리의 아들 헤어턴 언쇼일 것이다. 어릴 적부터 히스클리프로부터 모진 학대를 당하지만 그는 꿋꿋했다. 결코 복수심으로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았다. 아마 히스클리프는 그에게서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비바람이 나무를 아무리 흔들어도 꺾이는 가지와 꺾이지 않는 가지가 존재하듯이 (히스클리프 그 스스로 말했듯이) 그는 이미 환경에 의해 꺾인 가지였고, 헤어턴 언쇼는 불우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가지였다. 환경이 결코 그 스스로의 전부를 결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복수를 이룬 히스클리프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가 무너뜨리고자 애썼던 존재는 끝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소설 마지막에 언급된 편집자의 말처럼 히스클리프는 결국 헤어턴 언쇼였고, 헤어턴은 캐서린이었고, 캐시도 바로 캐서린이었다. 소설 속 언급된 주인공들은 모두가 서로 서로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한쪽은 꺾인 채로, 다른 한쪽은 꼿꼿한 채로 말이다.

무언가 강력한 토네이도가 몰고 간 언덕에 홀로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 모양의 히스가 여기저기 피어있는 풍경을 상상해 본다. 결국 모든 것은 돌고 돈다. 복수도 분노도, 질투심마저도 말이다. 하지만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꺾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할지는 아마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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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시대 - 불핀치의 그리스 로마 신화 열린책들 세계문학 281
토마스 불핀치 지음, 박중서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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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시대

토머스 불핀치 신화집 | 박중서 옮김 | 열린책들

역대 그리스 로마 신화집 중에서 가장 명확한 책이라 할 수 있는 토머스 불핀치의 [신화의 시대]... 이 책에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한 고대의 신화들이 한데 모여 있다. 그리고 거기에 해설이 덧붙여져서 이해하기 쉽도록 해놓았다. 불핀치는 문학에 대한 이해와 신화에 대한 이해를 동일 선상에 놓고 보았다. 신화에 대한 이해 없이는 문학에 대한, 특히 영미문학에 대한 이해는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 책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집의 새로운 시대를 독자에게 열어주었다. 가장 유명하면서 대표적인 그리스 로마 신화집인 토머스 불핀치의 [신화의 시대]..그 명성은 과히 헛되지 않았다.

항상 신화를 읽다가 궁금한 점이 있었는데, 과연 이 이야기의 시작이란 어디서 온 것일까?이다. 이 책의 제35장에서는 그런 궁금증에 대해 답해주는 해설이 실려있다. 첫 번째로 신화의 기원이 성경에서 왔다는 이야기이다. 데우칼리온은 노아, 헤라클레스는 삼손, 아리온의 요나의 다른 이름이라고 말한다. 이는 바로 [성서 이론]에 속한다. 두 번째로 신화에서 나온 인물이 실제 인물이었다는 설의 [역사 이론]이다. 바람의 왕이며 신인 아이올로스의 이야기는 사실 티레니아 해의 통치자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며 그는 정의롭고 경건한 인물로 묘사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설은 [우의 이론]이다. 이는 모든 고대 신화가 우의적이며 상징적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크로노스가 자기 아이들을 삼켰다는 이야기는 그리스어의 크로노스의 뜻, 즉 시간이 갖고 있는 힘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시간은 자기가 존재하게 만드는 만물을 언젠가는 결국 파괴한다고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넷째는 [자연 이론]이다. 공기와 불, 물 같은 원소들은 예부터 숭배의 대상이었고 주요 신들이 바로 이러한 자연의 의인화라는 것이다. 그리스인의 발랄한 상상력으로 모든 자연물에 이렇게 실체를 부여한 것이라는 설이 바로 자연 이론이다. 하지만 이 중 어떤 이론이 신화의 뿌리를 명확히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말 그대로 설일뿐이다. 설이라고 해도 대단하다. 이 방대한 신화 이야기가 아직도 전승되고 그 뿌리가 깊어서 계속 되풀이되고 각종 문학작품, 연극, 영화 등지에서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는 사실이 말이다.

개인적으로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벌거벗은 세계사]와 [벌거벗은 한국사]를 즐겨보는 편인데 거기에 프로메테우스에 대해 설명하는 방송이 나온 적이 있었다. 어떻게 신화 속 존재가 프랑스 혁명에 영향을 주고, 모든 민중에게 투쟁의 불꽃을 쏘아 올렸는지,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히는 끔찍한 형벌을 당하면서도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 대한 희망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에게는 예지력이 있었으므로 모든 앞일을 계획하여 미리 알 수 있었다. 프로메테우스는 자신이 제우스에게 당할 형벌 역시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다. 당당히 견디고 또 견디었다. 헤라클레스가 자신을 풀어줄 날을 알고 있었으므로 말이다.

역사란 반복되는가? 신화란 다시금 실현될 이야기인가? 우리에게 헤라클레스는 과연 누구일까? 현시대를 생각하면 왠지 씁쓸한 생각이 든다. 신화를 되새기는 지금이라는 시간이 참 쓰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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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의 모험 열린책들 세계문학 282
아서 코난 도일 지음, 오숙은 옮김 / 열린책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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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스의 모험

아서 코넌 도일 단편집 | 오숙은 옮김 | 열린 책들

아마 세상에서 가장 매력적인 소설 속 캐릭터를 뽑으라고 한다면 분명히 들어갔을 인물이 바로 셜록 홈스가 아닐까 한다. 개인적으로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연기하는 영국 BBC 드라마를 무척 인상 깊게 보아서인지 내게 셜록의 이미지 하면 이제는 바로 컴버배치가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물론 영화로는 셜록을 연기한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도 있었지만 그는 셜록보다는 아이언맨이니...ㅎㅎ

코넌 도일의 셜록에 대한 단편집을 사실 몇 번을 읽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다. 읽을 때마다 셜록에 대한 이미지가 다르게 다가온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그저 추리를 잘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면, 점점 그에 대한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는 셜록을 잘 보좌해 주는 왓슨에 대한 느낌 역시도 그렇게 변한다는 것이다. 아마 이것은 왠지 모르게 캐릭터의 살아있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두 명의 캐릭터가 시대가 바뀌어도 여전히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영원히 박제되어 소설 속에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묘한 안도감으로 자리 잡는다. 악인은 언젠가는 꼭 심판받을 것이고, 셜록의 매서운 눈이 보이지 않는 진실의 장막을 거두는 것처럼, 세상에서 숨겨진 비밀은 꼭 밝혀지리라는 믿음... 아마 이것이 추리소설을 읽는 희망이자 매력이 아닐까 한다. 정의로운 사회를 믿는 힘 말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인 [보헤미아 스캔들]에서부터 익숙한 단편이었던 [빨간 머리 연맹] 등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한 몇 가지 에피소드들... 다들 너무 재미있었다. 역자 해설에 실린 셜록 홈스라는 우주를 마음껏 헤엄치고 다닌 느낌이다. 그리고 다시 그 우주 속으로 언제든 뛰어들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 또한 중요하다. 언젠가 제2의 코난 도일이 나타나서 셜록이라는 우주가 더 한껏 확장되었으면 좋겠다. 셜록과의 정적인 그 유명한 모리아티와의 에피소드 등도 더 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아마 셜록의 중독은 고쳐졌을 지도 모르겠고, 다른 중독이 생겼을 지도 모를 일이다. 셜록의 우주를 하나 둘 상상으로 채워가면 또 다른 주인공인 왓슨의 우주도 함께 펼쳐진다. 이제 셜록과 왓슨은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 힘든 인물이다.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인 동시에 가장 부러울만한 브로맨스를 보여주는 주인공들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으면 셜록 홈스가 어디서 혹시 살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엘리엇이 말한 홈스의 가장 큰 수수께끼인 그가 실존한다는 환상에 빠지는 것!! 이는 아마 셜록 홈스 자체를 사랑하는 독자들 모두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캐릭터로서 홈스는 절대 완벽한 인간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그의 결점이 그의 명석한 두뇌를 더 부각시켰고, 그 모든 것들이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온 것같다. 그리고 아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낀 사람들이 반대로 인간에 대한 매력을 느끼고자 할때 다시 셜록 홈스를 찾는 것일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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