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11
에밀리 브론테 지음,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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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장편소설 | 황유원 옮김 |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011

처음 이 소설을 읽었을 때의 강렬함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 한바탕의 거센 물결이 내 속의 휘젓다가 고요히 잔잔해진 느낌이라고 할까? 아니면 시종일관 파도타기를 한 서핑 선수와 빗대어 표현될 수 있을까? 생애 첫 소설이 이토록 강력할 수 있다니 새삼 에밀리 브론테의 이른 죽음이 안타까워진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은 그녀의 하나밖에 없는 유작이다. 결핵에 의해 서른 살에 세상을 떠나야 했던 그녀는 제인 에어로 유명했던 언니인 샬롯 브론테의 동생이다. 1847년에 이 작품이 발표됐지만 때마침 같이 나왔던 샬롯 브론테의 [제인 에어]만큼의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녀의 사후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리어 왕에 비견될 만큼 명작으로 인정되며 세간의 칭송을 받는다.

고립된 시골마을의 두 가문이었던 언쇼집안과 린턴 집안... 언쇼 집안의 소유는 폭풍의 언덕이고, 린턴 집안의 소유는 티티새 농원이라 불린다. 원래 소설의 원제는 워더링 하이츠였지만 우리말로 옮길 적에 폭풍의 언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원제 그 자체여도 나쁘지 않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제목에서 연상되는 것들이 너무 많거나 왜곡되니까 말이다.

언쇼 집안에 찾아온 히스클리프... 그는 고아로 자라서 이 집에 오지만 양쪽 집안에서 모두 환영받지 못한다. 그를 유독 따뜻하게 맞아준 이는 오직 한 명, 바로 캐서린뿐이었다. 후에 그토록 사랑하던 캐서린이 언쇼 가문의 남자인 에드가가 결혼하자 히스클리프는 복수심과 질투심에 불타올라 집을 나가게 된다. 그 후 다시 돌아온 그는 달라져있었다. 온통 복수심으로 무장한 채로 언쇼와 린턴 가문 모두의 주인이 되고자 한다.

히스클리프의 민낯을 제대로 보여준 이가 한 명 있다면 그는 아마도 힌들리의 아들 헤어턴 언쇼일 것이다. 어릴 적부터 히스클리프로부터 모진 학대를 당하지만 그는 꿋꿋했다. 결코 복수심으로 스스로를 갉아먹지 않았다. 아마 히스클리프는 그에게서 자신을 보았을 것이다. 비바람이 나무를 아무리 흔들어도 꺾이는 가지와 꺾이지 않는 가지가 존재하듯이 (히스클리프 그 스스로 말했듯이) 그는 이미 환경에 의해 꺾인 가지였고, 헤어턴 언쇼는 불우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꺾이지 않는 가지였다. 환경이 결코 그 스스로의 전부를 결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복수를 이룬 히스클리프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그가 무너뜨리고자 애썼던 존재는 끝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소설 마지막에 언급된 편집자의 말처럼 히스클리프는 결국 헤어턴 언쇼였고, 헤어턴은 캐서린이었고, 캐시도 바로 캐서린이었다. 소설 속 언급된 주인공들은 모두가 서로 서로의 모습을 닮아있었다. 한쪽은 꺾인 채로, 다른 한쪽은 꼿꼿한 채로 말이다.

무언가 강력한 토네이도가 몰고 간 언덕에 홀로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 모양의 히스가 여기저기 피어있는 풍경을 상상해 본다. 결국 모든 것은 돌고 돈다. 복수도 분노도, 질투심마저도 말이다. 하지만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꺾임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한다. 어느 쪽이 더 행복할지는 아마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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