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선택 아로파 - 고장난 자본주의의 해법을 찾아 65,000km 길을 떠나다
SBS 최후의 제국 제작팀.홍기빈 지음 / 아로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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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로파(aropa)는 원래 연민, 나눔, 협동, 사랑이라는 말이라고 한다. 남태평양의 작은 섬인 아누타라는 섬에는 빅맨이 이끄는 작은 공동체가 있다. 21세기의 자본주의가 가진자과 없는자의 양극화가 극명해지는 이때에 서도 더불어 함께하는 대안을 찾기 위해 시작된 프로그램에서 시작되었다.


특히나 중국 상하이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돈의 힘이 얼마나 극명해지고 가진 1%에 비해 가지지 못하고 굶주리는 사람들의 비율이 해마다 늘어나는 시점이기도 하다.

현대 사회에서 돈의 힘이라는것은 더 많은 자유와 권력을 말한다. 그 돈의 힘은 인간 사회를 구성하는 소중한 구성요소일 뿐 아니라 사회 번영을 위해 적극 권장할 필요가 잇는 것으로 여겨지기까지 되었다.


미국의 리먼사태이후 집을 잃고 거리에서 굶주리는 사람들은 중산층이었던 사람들이었고, 직업을 잃음과 동시에 갑자기 빈민층으로 떨어진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지금의 자본주의는 모래위의 집처럼 누구나 갑자기 무너질수 있는 집위에 살고 있는것과 같은 상태이다. 


'인간이란 끊임없이 팽창하는 욕망 덩어리'라고 홉스는 말했다. 작은 섬에서만 이루어질수 있는 아로파가 아닌 중국 미국에서 아로파의 철학이 자본주의의 대안이 될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인간이 인간인 이유는 욕망을 가진 동시에 나눔을 실철할줄 아는 존재이기 때문에 희망을 걸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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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 1
정병철 지음 / 일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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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 앞쪽에 있는 일러두기가 가장 인상이 깊었다고 해야 할것 같다. 스토리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에서 거의 한치의 어긋남도 없는데 꾸며낸 이야기를 사실과 혼동하지 말라거나 이름과 기관은 창조했다고 말하고 있으니...


사실 나도 소위 사모님 사건으로 알려진 이 보도를 tv를 통해 보았다. 국내에 잘나가는 기업을 하는 회사의 사모님으로 딸과 결혼한 사위가 바람을 피운다고 의심해서 그것도 이종사촌인 명문대 여대생과 불륜이라고 의심해서 미행하고 괴롭힌 사건이다.


급기야 그 여대생은 얼굴에 6발의 총을 맞고 형체도 알아볼수 없는 지경의 모습으로 피살되고 범인들은 도주후 잡히고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다. 그리고 사모님은 살인교사죄를 형을 집행받아야 하지만 몇년후 tv 프로그램에서 취재한 바에 따르면 대형병원 특실에서 병을 핑계로 호화롭게 살고 있으며 외출도 하고 있었다.


가히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업그레이드된 형태라고 봐야 할 그런 사건이었기에 사람들은 있지도 않은 병이 있다고 진단해준 의사와 관련 검사들을 벌줘야 한다고, 그리고 양심없는 그 기업의 회장도 벌을 받아야 한다고 떠들었다.


1권에서 여대생의 죽음과 범인들이 잡히고 사건의 전말이 들어나면서 끝이 나지만 2권에서는 사모님쪽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미행하라고 시키긴 했지만, 죽이라 한적없다거나 실제 70대 노인에 한쪽 눈도 실명상태의 정말 아픈 사람인데 모든 국민들이 회사와 사모님을 언론 보도만 믿고 진실은 알려고도 않은채 비난한다고 말하고 있다.


나 또한 이미 익숙해진 사건에 대해 스스로 사모님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한다고 믿고 있어서 그런지 2권의 내용이 변명처럼 들리는것 또한 나도 작가가 주장하는 어떤 프레임 속에 갖혀 버려 다시 생각하기가 않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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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말할 권리 - 다르게 보고 말하는 인권
김희윤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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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권리를 찾는 기본이 되는 법 조항이나 용어가 반드시 법률전문가를 거쳐야 하는 상태는 마치 조선시대 초기 한글을 만들기를 거부했던 일부 특권층의 의도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법 앞에 평등하다고 하지만, 실제 평등하게 법 집행이 이루어 지는것도아니고 일반사람은 법조인을 대리인으로 삼은 이후에야 법앞에 설수 있는 것 자체가 평등할 권리를 거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나면서부터 부모로 부터 은혜받은 존재였던 개인이 전혀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느끼는건 별로 오래 걸리지 않는다. 부당한 사회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들고 오히려 더 심해지는 양극화와 학교 생활이 시작되면서 아니 그 보다 훨씬 전 부터 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창 청춘을 즐기며 시대를 아파해야 할 20대는 엄청난 스펙경쟁에 내몰려 우리가 감히 그들에게 부모님 세대처럼 시대를 아파하며 인문학을 할수 없느냐고 말할수 없는 입장이다. 나는 아직껏 이처럼 어둡고 대안 없는 20대를 본적이 없기에 너무나 안타깝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자본을 가진 사람의 성장율을 따라갈수 없는 지금의 사회에서 '누구의 자식으로 태어나는가?'와 '누구와 결혼하는가?'가 더 중요해지는 지금의 사회가 걱정된다. 이사회의 평범한 젊은이라면 부조리를 토로하기 보다 주류에 들어가야 살수 있기에 때로는 비굴하고 때로는 개인의 권리는 무시되어도 마땅히 견디게 된다.


사실 우리는 많은 것들로 부터 권리를 침해 당하지만 권리를 말하기 보다 그 순간을 참고 넘기려는 경향이 있다. 군대나 학교의 선배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집단 얼차례나 기압은 물론이고 인터넷이나 언론의 마녀사냥에 타겟이 되면 그 이슈가 사실이던 오해이던 때로는 고의로 만들어 졌던 간에 그 오명을 씻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촘스키는 국가적 부당함에 맞서는 국민이 혁명적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이유는 스스로 '값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약소한 개인은 '조직화'해서 혼자 감당할 수 없는 희생의 차원을 모두의 힘으로 수월하게 넘길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시민 불복종이라는 형태의 소극적 저항을 권유하고 있다.


일예로 현재 '단통법' 시행으로 핸드폰제조 업체나 통신 업체가 더 이 익을 많이 보는 구조로 시대 역행하는 새로운 법이 시행되었는데, 개개인은 물론이고 쇼셜미디어를 통해서 불매운동이나 메이저 업체보다는 중소기업이나 외국의 물품을 구매하는 식의 소극적 저항을 한다면 분명 우리는 변화를 이끌어 낼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국민들이, 대한민국의 모든 소비자들이 대기업이나 국가의 봉이 되지 않기 위해, 그리고 개개인의 권리를 찾기 위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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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말
최강민 지음 / 작가와비평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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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째 그가 떠들어 대는 말은 누구도 답을 하는 법이 없고, 이 사회에서 보수의 반대편에 서서 글을 쓰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메아리 없는 외침일 것인지 짐작은 하고 있다. 변변히 가장 역할 못하고, 그래서 아내에게 미안하다는 작가의 넉두리 섞인 불평이 이해가 된다.

 

사실 누구라도 불평하는 글 보다는 이사회의 따뜻한 이야기, 즉 힘들고 지쳐도 굿굿히 내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더 선호할 것이다. 이게 아니라고, 거짓이라고 말해야 할 때 우리는 싸울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하고, 그 싸움이 길어지면 길어 질수록 투사의 이미지는 없어지고 난폭한 불평가로서만 기억될 때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듯, 같은 진보의 입장일 지라도 언제나 큰 뜻이 같다고 한 편은 아니다. 공지영의 '의자놀이' 사태에 대해서 보듯이 말이다.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한 르뽀를 공지영작가가 집필하고 베스트 셀러가 되어 많은 사람들이 쌍용자동차 사태에 대해 알고 또한 책판매의 모든 수입은 쌍용자동차 사태의 당사자에게 돌아가게 한 좋은 의도 였지만, 보수가 끊임없이 책의 부실함을 지적할 때 공지영작가와 책에 인용되었던 하종강, 이선옥씨와의 논쟁으로 모든 사람들이 상처만 얻었던 것이 의자놀이 논쟁이었다고 한다.

 

삼성에서 각종 경제적 특권을 누린 대신 정신적, 육체적 붕괴를 맛보았던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에 대한 내부 고발은 결국 거대 경제공룡에 의해 찢기고 상처만 받은 채 소득없이 끝나는걸 보면서, 사실을 바로 잡겠다고, 비리를 알리겠다고 선뜻 나서는 것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도 성공이 미지수인 일이라는 걸 보면 그들이 얼마나 용감한 사람들인지 짐작가능하다.

 

비평 전문지 화다'를 창간하기도 한 작가는 특히 이시 대의 문인들에 대해 질타 한다. 유명인의 글도 없고 십시일반 모아 발행되는 비평지는 독자를 끌수도 없거니와 오래 갈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거의 단편소설에 대해서만 비평을 쓰는 해설 비평에 대해서도 주례사비평을 양산하는 실태를 꼬집는다.

 

힘없는 사람들이 아무리 떠들어 봐야 세상은 변하지도 않거니와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이시대 굵직한 문인들의 저항문학이 절실히 필요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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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누구나의 사랑 - 미치도록 깊이 진심으로
아이리 지음, 이지수 옮김 / 프롬북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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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을 던져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좋은 방식이 아닙니다.

하지만 동전을 던지는 순간 당신이 진정으로 보고 싶어하는 면이 어느 쪽인지 알게 됩니다.'

이 말은 사랑과 이별의 순간에 수없이 고뇌하고 여기저기 문의 해도 답을 알수 없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결국 결정을 하는 순간 자신은 이미 어떤 결정이 더 자신이 바라는 결정인지 다 알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 사람의 행동은 인생의 우선순위를 반영한다고, 링링과 피터의 이야기를 통해 말한다.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에 멀리 있는 여친에게 자신이 아끼는 사람에게 돈을 송금하라고 하는 남자는 실제 동전 따위를 던져 결정할 가치도 없겠지만...


사랑이 시작되는 걸 느끼지만 억눌러야 하는 이야기들 - 동성간에 느끼게 된 사랑이라거나 영화 <일대종사>에서의 엽문의 아내와 궁이에 대한 사랑 이야기는 본인이나 타인이나 누구도 이것이 옳고 또한 답이라고 말 할수 없을 것이다.


사람이 싫을 때 수만가지 이유를 갖다 붙일수 있지만 사람을 좋아하는데 있어 딱히 이유를 설명할수 없는 점은 사랑이 그만큼 개인적이고 함정에 빠지는 것같기도 하고 또는 어떤 호르몬에 취하는 종류의 관계인것 같다. 그래서 사랑은 미쳐야 한다고 하고 험난한 사랑에 우리가 박수를 쳐주며 응원하는 까닭이다.


이미 나도 경험 했던 이 모든 사랑의 감정, 배신의 감정, 그리움의 감정, 이별을 예감하는 감정... 이런것들이 아련하게 다가온다.

그래도 여전히 사랑하고 아낀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최우선의 대상이라는 것일 텐데, 내가 그 우선 순위에서 멀어져 있음을 느낄때는 어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단지 이해 할거라는 짐작으로 배려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지 아니면 우선순위에 있어야 함을 깨우쳐 주며 쟁취해야 하는 것인지...


우스개 소리로 들릴수도 있었지만 '여자친구나 아내의 외도와 발기부전'중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느냐의 질문에 대부분의 남자들이 여자친구나 아내의 외도를 선택했다는 것이 쓸데없는 남자의 자존심으로 짐작했었는데 겉으로 표시도 나지 않고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모를지 모르지만 자신이 가장 아끼는 상대를 괴롭게 할수 없다는 남자의 깊은 뜻(?)이 있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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