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정여울의 소설 읽는 시간 - 세계 문학 주인공들과의 특별한 만남
정여울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정여울은 문학평론가이자 작가이다. 그동안 정여울의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그때마다 '참 좋다!'는 생각을 했다.
<정여울의 소설 읽는 시간>은 2012년에 출간된 후에 지금은 절판이 된 책이다. 신간 위주로 책을 읽다가 요즘 예전에 출간된 좋은 책들을 골라 읽다 보니 도서관에서 눈에 들어와서 대출한 책이다.
책제목은 읽은 책인듯 한데, 리뷰 작성이 없는 것을 보니 미처 읽지 못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말에는 이런 글이 있다.
"문학 속 캐릭터들은 '독서의 시차'를 통해 매번 다른 기억의 풍경을 토해낸다. 사춘기에 만난 베르테르와 30대에 다시 만난 베르테르가 완전히 다른 인물처럼 다가오기도 하고, 어린 시절 그토록 '나쁜 놈'으로 보였던 후크 선장이나 메피스토펠레스가 지금은 한없이 매력적인 캐릭터로 느껴지기도 한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망각과 회상을 반복하던 문학 속 캐릭터들은 기억의 발효와 숙성 과정을 거치면서 훨씬 풍요롭고 입체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이러한 독서의 시차야말로 고전 읽기의 묘미다."
" 소설은 혼자 읽어도 좋다. 하지만 누군가의 따스한 '낭독의 목소리'를 상상하면서, 그리고 누군가가 서로 많이 닮은 캐릭터들을 오지랖 넓게 '중매'까지 해 준다면, 이 세상의 체온은 더 빨리, 더 신명나게 높아지지 않을까. "
이 책에는 11개 주제의 소설이 각각 2편의 소설을 비교하고 대조하면서 작품을 작가가 설명해 주고 독자들의 그 주인공들과 만나면서 소설을 다시 읽게 된다.
저자의 말처럼 어떤 소설은 분명히 읽었지만 그 내용만 남아 있고, 심지어는 그 소설을 읽었는지 안 읽었는지도 생각 조차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시차를 두고 읽는 소설은 처음 읽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새롭게 들어 오기도 한다.
<제인에어>, <데미안>, <폭풍의 언덕>, <위대한 개츠비>, <호밀밭의 파수꾼> 등은 학창시절에 읽은 책들이니 그때와 지금은 너무도 오랜 시차가 있기에 다시 읽는다면 분명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고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 <데미안> vs. <호밀밭의 파수꾼> : 멘토, 지상에 없는 구원을 찾아서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vs. <위험한 관계>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혹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사랑
* <로미오와 줄리엣> vs. <트리스탄과 이졸데> : ‘그대’를 넘어 ‘사랑’을 사랑하라
* <폭풍의 언덕> vs. <오페라의 유령> : 그대, 나의 가장 어두운 그림자
" 크리스틴은 에릭이 초대하는 '오페라의 유령'으로서의 삶에, 캐서린은 히스클리프가 안내하는 '야생의 집시'같은 위험한 삶에 이끌린다. 크리스틴은 에릭으로부터 자신에게 필요한 삶의 기술,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법을 배운다. 캐서린은 히스클리프와 함께한 시간들 속에서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것, 즉 자유의 공기와 야생의 기쁨을 배운다.
그러나 그녀들에게는 이 모든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돌아갈 곳이 있다. 돈과 명예와 인품을 모두 갖춘 <폭풍의 언덕>의 린튼과 <오페라의 유령>의 라울, 두 사람은 저 유령같은 존재, 알 수 없는 존재들로 부터 각자 자신의 하나뿐인 그녀들을 지키느라 혈안이 된다. " (p.p. 111~113)
* <제인 에어』 vs. 『오만과 편견』 : 행복 미루기의 달인들, 우리가 바로 지금 행복해지는 법은?
* <적과 흑> vs. <춘희> : 스캔들, 욕망의 치명적 함정
* <지킬 박사와 하이드> vs.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마음의 ‘뒷문’으로만 출입하는 어두운 욕망의 그림자
* <동물농장』 vs. <걸리버 여행기> :‘정상적 인간’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
* <위대한 개츠비> vs.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 오직 내 안에서만 일렁이는 빛을 찾아서
* <멋진 신세계> vs. <1984> : 과학의 유토피아, 욕망의 디스토피아
* <달과 6펜스> vs. <베니스에서의 죽음> : 어느 날 문득, 모든 걸 버리고 떠나다
" 스트릭랜드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이 '가족'과 '직업'이었다면, 아센바흐를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바로 '명성'과 '명예'였다. 스트릭랜드는 타히티 섬에서 그 모든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고 믿었고, 아센바흐는 베니스의 리도 섬에서 비로소 자신이 평생 완성하고 싶었던 아름다움의 이상형을 발견했다. 스트릭랜드는 자신이 직접 그리는 그림 속에서, 아센바흐는 머릿속이 아닌 실제 인간에게서 최고의 이상을 발견했다. " (p. 327)
각 주제에 따라 짝을 이룬 작품들은 닮은 듯, 다른 이야기가 대비되면서 설명된다. 소개된 12편의 소설을 다 읽지는 않았으나 꽤나 잘 알려진 작품들이다. 그래서 정여울의 해설을 읽기에 전혀 무리가 없다.
작품 중의 몇 편은 꼭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메모를 해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