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강
천운영 지음 / 창비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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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비록 황사가 하늘을 누렇게 덮은 날일지라도 3월, 봄이다. 생각만 해도 향기 나는 그런 책을 읽고 싶었다. 그 향기가 톡 쏘는 향기든, 달콤한 향기든, 사늘한 향기든 상관없었다. 냄새가 아닌 향기가 나는 이야기를 읽어 보고 싶었다. 그런 와중 때마침 천운영 작가의 <생강>이 출간되었다. 신간이 나오면 관심이 가는 작가 중에 한 명인 천운영 작가라기에, 곧바로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향기가 날 것 같은 제목의 <생강>도 내가 이 책에 이끌리게 된 데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제목만 놓고 봤을 때는, 말 그대로 생강 같은 향기가 나는 소설일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고문 기술자의 내용이라니. 그리고 그 사람의 딸의 이야기라니. 솔직히 적잖이 당황하긴 했다. 그래도 천운영 작가답다, 라는 생각과 함께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다 읽고 났을 때, 말 그대로 천운영 작가의 작품이다, 하는 생각이 강하게 떠올랐다.


고문 기술자 안과 그의 딸인 선의 이야기. 안은 우연찮은 계기로 쫒기는 신세가 되고, 여러 곳을 전전하다 결국 자신의 아내가 일하는 미용실 다락방, 자신의 딸의 궁전인 다락방으로 숨어든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딸에게 보여줬던 모습과는 다르게, 짐승의 모습이 되어간다. 잘못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하는 말을 어릴 적 딸에게 해주었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선은 멀리하고 피한다. 그러다 자신의 아버지가 고문했던, 남자가 틈만 나면 미용실 앞인 레코드점에 와 서 있는 것을 보고,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결국엔 그가 건넨 종이로 스케치북을 만들어 자신의 아버지가 있는, 다락방에 밀어 넣는다. 속죄하라는 뜻일까. 글쎄, 나는 읽으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 다양한 관점들로 받아들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뭐랄까. 소재부터 천운영 작가답다는 생각과 함께, 이야기의 서사 과정이 조금은 전과 달라지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장들도 말이다. 데뷔작이자 첫 소설집인 <바늘>에서는 그런 점이 별로 눈에 띄지 않았는데, 세 번째 소설집인 <그녀의 눈물 사용법>에서부터 슬슬 기미를 보이던 조금은 관념적으로 흐르는 문장이, 이번 <생강>에 까지 이어진 것 같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문장을 나열한다는 느낌까지 주었다. 책을 읽으면서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은 문장들을 늘어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해봤다. 그것이 심리를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효과가 놓아지겠지만, 내 생각에는 심리를 표현하는 부분 외에도 그런 부분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주로 딸의 시점인 선의 이야기에서 그런데, 선이 서술하는 부분을 읽을 때면 숨이 턱턱 맞힐 정도였다. <바늘>에서처럼 빠르게 치고 나가는 그런 것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조금은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앞에서처럼 공간이 이동하는 것이 아닌, 다락방과 미용실 안팎에서만 빙빙 도는 인물들의 동선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동선이 크면 오히려 늘어진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생강>에서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동선이 좁으면 오히려 더욱 늘어지는 구나, 하고 말이다. 내 생각에는 앞에는 인물들의 동선이 무척이나 다이내믹하고 큰 반면, 후반에서는 그렇지 않아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쉬웠던 점이 이렇듯, 좋았던 점도 있다. 우선 제일 먼저, 천운영 작가의 신작을 볼 수 있었다는 것과, 역시 천운영답다, 라는 생각, 가장 결정적으로 이야기가 큰 무리 없이 자연스레 흘러간다는 점이었다. 덧붙여 도입에 등장하는 고문하는 부분을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상상을 하면서 읽었는데, 정말 말 그대로 소름이 돋고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무척이나 디테일하게 묘사한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장면을 상상하면 내가 고문을 받는 것 같았다.


읽으면서 이야기가 서사 중심이 아닌, 묘사 위주로 흘러간다고 생각했다. 천운영 작가의 첫 장편인 <잘가라, 서커스>를 읽어보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 책도 이 <생각>과 비슷하게 흘러가지 않을까 싶다. 이 <생강>은 아쉬운 점과 좋았던 점이 비례하는 책이었다. 무조건 적으로 아쉽지도, 무조건 적으로 좋았던 것도 아니었다. 그런 것이 이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책을 기다리면서 색안경을 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말이다. 제목만 보고 느꼈던 것처럼 향기가 나는 책은 비록 아니었지만, 색다른, ‘생강’이라는 것에 대해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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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여인의 키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7
마누엘 푸익 지음, 송병선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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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스포 포함! 

조금은, 위험한 발언이 될 수 있지만, 내 나름대로는 동성애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이나 그런 것이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럴 수도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런데 이 <거미여인의 키스>를 읽어나가면서 아, 그래도 내가 조금은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동안 위선을 떨고 있었던 꼴이 된 것이다.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가 한다는 말을 듣고 읽게 된 책이다. 물론 초입을 읽는 도중 결국은 못 보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지만, 나름의 위안을 삼고자 끝까지 읽어 나갔다. 읽으면서, 이전까지 읽어왔던 책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식면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내용면, 그리고 읽고 난 뒤에 감흥도 마찬가지였다. 읽는 내내, 감옥에서 벌어지는 두 인물의 대화가 내가 흔히 생각하는 어두운 이야기라고 느껴지기 보단, 밝은 이야기라고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내 독서의 깊이가 낮을 수도 있지만, 그런 느낌이 들곤 했다.


첫 장을 펼친 다음, 가장 먼저 한 일은 혼란스러워 한 것이었다. 오직 대화로만 이루어져 있는 이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누가 몰리나, 이고 누가 발렌틴, 인지 구분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중에는 어투나 말투 같은 걸로 구분하긴 했지만, 처음, 속도가 붙기 전까지는 혼란스러웠다. 인물들의 대화로만 이루어지는 소설을 나는 처음 경험했다. 대화체로 가는 서간체나 한 인물의 독백체로 가는 텍스트들이나 책들은 많이 봤지만, 두 인물이 나와 자신의 입으로 대화해 가는 형식은 내 기억 상으로는 처음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이 <거미여인의 키스>에서는 그 형식이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만약 일반 텍스트들처럼 이어졌더라면 오히려 더욱 반감이 들었을 것 같다. 이 <거미여인의 키스>는 대화체를 사용해 얻을 수 있는 장점들을 모두 갖춘 책이라고 생각한다. 거북스러운 장면도 대화만으로 처리해 오히려 이럴 수 있겠구나, 하며 넘어가게 하는 것이다. 일반 텍스트의 형식으로는 어림없는 방법이다. 그 외에도 인물들의 심리 등도 대화체로 사용하니 오히려 그 상황에 대해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엄청난 심리묘사 문장보다 단 한 줄의 대화체로 심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책이 아닌가 싶다.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져 감옥에 들어온 몰리나와, 혁명가 발렌틴. 이 둘의 이야기가 이렇게 흥미롭게 이어진 것은 아무래도 감옥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이야기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표범여인부터 마법사와 좀비, 그리고 사랑의 가사를 붙이고 노래하는 두 남녀의 이야기. 물론 대부분은 비극으로 끝나버리지만, 어떻게 보면 이 <거미여인의 키스>라는 전체 안에 속하는 이야기들이 아닌가 싶다. 이 <거미여인의 키스>도 그렇게 행복한 결말로 이루어지진 않으니 말이다.


감옥 안에서 이루어지는, 몰리나가 발렌틴에게 말해주는 영화 이야기들을 나는 큰 뼈대가 되는 <거미여인의 키스>보다도 흥미롭게 읽었다. 사실 그런 식의 내용이 나오면 책장을 빨리 넘겨버리는 나에게는 대단한 일이었다. 부가적인 이야기가 재미있을 줄이야, 하면서도 나는 끝까지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읽으면서 조금은 의문점이 생겼다. 아마도 내 부족한, 얕은 독서깊이 때문이 아닐까 싶지만, 대화체 안에 중후반 부분으로 흘러가면 두 사람의 대화 끝이나 첫 부분에 이탤릭체로 기울어진 문장들이 등장한다. 읽으면서 이게 뭐지? 하면서 읽었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 부분도 마찬가지였다. 발렌틴이 독백하듯 흘러가는, 이탤릭체의 부분은 조금의 의문점을 남겼다. 이게 뭐지, 하는 의문 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중후반에 나온다는 이탤릭체는 이 뒷부분 때문에 나온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보는 것이다. 만약 다시 읽을 기회가 된다면 그 부분을 중점적으로 보자, 하는 메모를 남겨놓는 것으로 끝내게 되었지만, 다 읽고 나서 이렇게 기록을 남기는 지금도 그 부분이 계속 의문으로 남는다.


푸익의 책은 처음 읽어 본다. 가끔은 늘어지는 것 같으면서도, 템포 있게 치고 나가는 서사가 좋았다. 영화 이야기 하나하나 모두 기억에 남았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역시 표범여인. 아마도 푸익이 만들어낸 이야기 인 것 같지만, 그래도 뭐 괜찮았다. 라틴 아메리카 작가의 책은 이번이 처음인데, 생각보다 좋았다.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이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한 번 찾아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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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 1
이윤기 지음 / 민음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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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초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고모가 사준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한참이나 열독했던 기억이 난다. 그 때에는 뭔지도 모르고 마치 유행처럼 퍼지던 그 책을 구입해 읽었었다. 과장된 남성 캐릭터의 근육질 몸매와 기하학적인 여성 캐릭터의 머리 모양들이 멋있다며 깔깔 대던 그 때의 나에게 그리스로마 신화는 뭔지 모르지만 재미있는 이야기, 신들이 나오는 이야기라고만 생각되었다. 그러다 ‘신화’라는 매력에 조금씩 빠져들었고, 그 이후로 마찬가지로 만화로 보는 책이지만 <북유럽 신화>까지 읽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만 해도 ‘신화’가 뭔지도 모르고 열광하던 아직은 순수했던 나라고 생각된다. 물론 지금은 그 때보다 머리가 조금 굵어졌고, 그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가 원래의 이야기에서 많이 각색되고 미화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수위가 대상 연령에 따라 많이 낮춰졌다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 그다음, 원래의 신화 이야기를, 내 머릿속에서 조금씩 각색되고 미화된 신화의 ‘본’이야기를 원본과 대비해 조금씩 짜 맞추어 봤다. 그러던 중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이 나왔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고, 우연히 기회가 되어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그리스신화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거기에만 한정되어 있지 않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영웅들의 무용담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미궁의 정복자 테세우스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공주가 건네준 실타래를 가지고 미궁 속으로 들어가 미노타우루스를 무찌른 영웅. 어찌 보면 너무도 많이 회자되어 익숙해진 테세우스 무용담을, 이 책에서는 조금의 양념을 곁들여 이야기 한다. 이 책의 전반적인 특징하고도 직결된다. 이 책에서는 챕터별로 나누어진 영웅의 무용담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다른 사례들과, 일담들, 그리고 철학자 등이 말한 문구 등을 양념으로 곁들여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웅의 무용담을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그렇지만 일관성 있게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영웅의 비슷한 사례를 들어 비교 아닌 비교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테세우스, 알렉산드로스, 뤼쿠르고스, 솔론 중에서 솔론 부분에 나오는 디오니소스에 대해 더 관심이 갔다. 아버지인 제우스신의 종아리에서 산달을 채워 태어난 술의 신. 이 점이 나는 의문이 들었다. 디오니소스 신의 모친은 인간이었다. 그런데 그는 신이 되었다. 아버지가 아무리 제우스신이더라도 조금 의문이 가는 점이었다. 이유는 제우스는 누구나 알듯이 바람둥이였다. 그와 사이에서 태어난, 어머니를 인간으로 둔 아이들도 무척이나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왜 그들 중, 디오니소스만 올림푸스의 신이 될 수 있었던 걸까. 솔론 부분에 나오는 디오니소스 일화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왜 디오니소스만 신이 된 것일까.


이 책에서는 다양한 사례들이 나온다. 예를 들어 ‘스파르타의 아버지 뤼쿠르고스’ 부분에서는 스파르타 인들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간단명료하게, 하지만 그 안에 모든 뜻을 내포하고 있는 언어를 구사하던 스파르타 인들. 수사학을 배웠다는 이들에 대한 일화를 보면 정말 기똥차게 말 잘한다, 하는 생각이 든다. 무조건 적으로 밀어붙이기만 했다는 기존의 스파르타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 조금은 다른 관점으로, 새로운 것을 알게 된 점이었다. 물론 그들이 강하게 밀어붙인 것은 사실이었다. 갓난아이들을 물로 씻는 것이 아닌, 포도주로 씻는다거나 하는 일은 말이다. 그렇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기존에 스파르타 하면 가졌던 이미지와는 반대적인 일화들이 나와 있어서 흥미가 일었다. 그리고 내가 잘 알지 못했던 영웅, 예를 들어 릐쿠르고스나, 이름만 알고 있던 솔론에 대해서 체계적이고 정확하게 나와 있어 좋았다. 그리스 로마 신화 영웅하면 아무래도 헤라클레스가 대표적으로 떠올랐는데, 이 책에서는 다른 영웅들,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영웅들의 일담을 조명해서 좋았다.


조금 아쉬웠던 점이라면, 한 이야기에 대한 일화 등과 비슷한 사례의 이야기들을 끌어오다 보니 다소 산만하다는 점을 이유로 들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이해를 돕는다는 면에서는 좋았지만, 너무 어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한 가지 일화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했다면 지루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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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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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포함!> 

나는 내가 태어난 고장에서 평생을 보낼 줄 알았다. 이렇게 내가 태어난 고장을 떠나 다른 곳에서 학교를 다닐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물론 상상은 자주 해보았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학교를 다니면 어떨까 하는 상상. 그때마다 너무도 막연해 웃음이 나긴 했지만 말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중편 소설 두 편중 한 편에서는 한 고장에서 사십 여 년을 산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그곳에서 부모님과 강아지,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한 여자와 평생을 같이 할 거라고 생각한다. 표제작인 <달에 울다>에서 등장하는 남자는 십대에서부터 사십대를 한 마을에서 살아온다. 그곳에서 한 사람과 부모님, 그리고 자신이 기르는 강아지가 죽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또 다른, 사과를 본다. 사과향과 사랑하는 여자, 야에코를 본다. 시와 소설을 넘나드는 문장 속에서 주인공이자 화자인 남자의 심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묘사의 절정을 보여주는 문장으로 드러난다. 사계절에 빗대어 남자의 십대,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현재의 자신을 보여주는 구성은 그동안 봐왔던 여타의 소설과 분명히 다른 면이 있다. 현란한 묘사는 아니지만, 충분히 절제되면서도 화려한 문장 속에서 그 남자는 사랑을 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보내고, 그 여자가 돌아와 끝을 맞는 부분까지 영상처럼 흘러간다. 어느 부분에서는 빠르게, 또 어느 부분에서는 느리게 흘러가는 구성은 정말 말 그대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마루야마 겐지를 처음으로 안 것은 <물의 가족>이라는 장편소설을 통해서였다. 그 소설도 이 <달에 울다>와 같이 시소설의 형식을 취하는 장편소설이었다. 이미 죽어 혼으로 떠도는 화자의 입을 통해 그 자신의 가족들 모습을 그려나가는 소설이다. 그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문장에 대한 감정을 이 <달에 울다>를 읽으면서 좀 더 확연히 느낀 것 같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는 분의 추천으로 읽기 시작했던 <물의 가족>은 생각보다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물론 특유의 문장과 묘사법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마음에 들었지만, 생각보다 늘어지는 것 같아 지루했다. 사실 그러한 점이 <달에 울다>에도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다. 표제작인 <달에 울다>는 조금 덜 그런데, 같이 실린 중편 <조롱을 높이 매달고>라는 작품은 큰 사건 없이 잔잔히 흘러가고, 인물에 대한 심리와 풍경 묘사가 주를 이루다 보니 자연스레 늘어지고 속도감 있게 읽히는 편은 아니다. 그나마 <달에 울다>는 지루해질 만하면 일어나는 일들로 비교적 속도감 있게 읽힌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문장과 묘사가 주를 이루는 단편이다 보니 두 편 모두 여타의 서사가 빠른 소설보다는 더디게 읽힌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달에 울다>는 말 그대로 문장과 묘사의 절정을 보여준다. 어떤 것이 문장이고 묘사인지 우리들에게 제대로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과장되게 말한다면 문장의 미학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반면에 스토리는 조금은 빈약한 부분을 보인다. <달에 울다>에 등장하는 인물은, 촌장의 곳간을 털다 추격대에게 죽임을 당한 남자의 자식인 야에코를 좋아한다. 야에코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자 어머니와 함께 마을을 떠났다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그리고 사람들의 멸시를 받는다. 그리고 그 둘은 시간이 흘러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화자인 ‘나’의 아버지가 그 여자는 한 남자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여자라며 헤어지라는 말을 듣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결국 나의 아버지 말대로 야에코는 마을을 떠나고 그런 그녀를 나는 배웅한다. 그리고 다시 그녀가 돌아왔을 때, 나는 그녀가 눈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까지 본다면 전형적인 신파극이라 볼 수 있을 정도다. 크게 흠 잡을 만한 스토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서사를 보여주는 스토리도 아니기에, 나는 이러한 문장과 묘사를 보여주는 데 오히려 더욱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롱을 높게 매달고>도 마찬가지로, 마을을 떠났던 남자가 다시 마을로 돌아와 겪는 일, 이라고 단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한 스토리다. 물론 결말에서 조금은 강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장면을 보여주지만 말이다. 이렇듯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한 구조의 스토리를 이러한 문장과 묘사로 똘똘 뭉쳐 풀어내니 문장과 묘사력이 살면서 이야기를 뒷받침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자연스레 서사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속도감 있는 소설과 달리 조금은 늘어지는 소설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런 소설에서는 문장의 맛을 볼 수 없지만, 이러한 소설에서는 한 문장 한 문장 생각하고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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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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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노량진 고시촌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프로를 봤다. 대학까지 나와 이십 대라는 청춘을 노량진에서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경제 불황이 계속 되어가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이십 대의 나이에도 공부를 하는 사람들. 기약 없는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들은 언제 붙을지 확신이 없는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달려간다. 김애란의 소설집 <침이 고인다>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그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그만큼 김애란 소설집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불투명한 미래에 조금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족족 등장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자오선이 지나갈 때>라는 작품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중 노량진에 있었을 당시에 일어났던 일들을 알맞은 플롯에 의해 담담히 서술하는 작품인 <자오선이 지나갈 때>가 그 다큐멘터리를 볼 때 느꼈던 감정과 가장 비슷했던 것 같다. 꼭 노량진에서 고시공부, 재수 준비를 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 소설집 안에 든 7편의 단편 속에는 다양한 것들을 통해 ‘경쟁’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침이 고인다>에서 주인공 인물은 학원에서 체육대회를 통해 경쟁을 하거나, 자신의 집에 눌러 붙은 후배와 알게 모르게 신경전을 벌인다. 또 <자오선이 지나갈 때>에서는 인기 강의를 듣기 위해 수많은 인파에 밀리면서 수강신청을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또 <성탄특선>에서는 성탄절 전날 모텔에 빈방을 구하러 다니는 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이유를 가지면서 ‘경쟁’아닌 ‘경쟁’을 한다. 그래서 일까. 김애란의 작품을 읽다보면 인물들이 참으로 치열하게 산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이유가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김애란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 같이 지나치게 현실적이면서 평범하다. 말 그대로 현대 우리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텍스트 안으로 끌어들인 것 같다. 그러면서 그 나이 때, 혹은 그 시대 때 겪을 수 있는 이야기를 소설화 시키다 보니 자연스레 인물들이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의 특징은 인물들이 치열하다는 점과 함께 정확하고 알맞은 플롯을 들 수 있다. 김애란 작가는 플롯을 정말 잘 이해하고 사용할 줄 아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한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좀 더 효과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김애란 작가는 플롯을 통해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플롯을 그렇게 잘 다루다 보니 모든 소설들이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알맞게 짜인 플롯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작가들의 플롯이 하나로 통일 되거나 몇 가지로 정형화되어 그것만 계속 사용하는 데 반해 김애란 작가는 그 소설에 어떤 플롯이 제격일지를 따져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더욱 더 절절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물론 플롯을 잘 다루다보니 간혹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과거와 현재를 너무 왔다 갔다 하는 식의 구성은 읽으면서 쫓아가는 입장에서 조금은 난해하고 피하고 싶은 플롯이긴 하다. 그런데도 그런 플롯 나름대로 추측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그것이 바로 <네모난 자리>다. 두 가지 비슷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어디까지가 현재고 어디까지가 과거인지 헷갈리는 플롯을 사용한 텍스트다. 엄마의 이야기와 그의 이야기가 따로 진행되는 듯 싶다가도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 읽으면서 꽤나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들은 앞에서 말했듯이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요즘 문학 판에서 말 그대로 ‘판’을 치는 판타지적 상상력을 쓰지 않고 김애란 작가는 88만원 세대, 고시생, 재수생 등을 전면으로 내세워 현실적인 상상력을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김애란 작가의 작품을 읽다보면 분명 경쾌하게 말은 하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무척이나 힘들게 살아가는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들의 모습이 구차하다거나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유의 발랄하면서 위트 넘치는 문체 때문일 수도 있지만, 좀 더 정확히 말을 하자면, 김애란 작가의 작품 속에 있는 인물들이 모두 청춘의 인물들이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지나가거나, 지나 온 그 당시의 모습들이 텍스트 안에 잘 녹여져 있기 때문에 그런 인물들이 불쌍하다거나 비굴해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것 또한 김애란 작가의 작품 속에 담긴 공통점이 아닐까. 유복하지 않은 상황에서 태어난 인물들을 감성을 통해 드러내고, 그런 인물들을 위트 있게 그려내니 그런 상황들이 독자들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반어적으로 보이게 된다. 감성과 위트, 그리고 플롯의 활용도 등을 소설 텍스트에 정확하게 끌어와 사용하는 김애란 작가의 작품들이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나아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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