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이 고인다
김애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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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노량진 고시촌의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 프로를 봤다. 대학까지 나와 이십 대라는 청춘을 노량진에서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경제 불황이 계속 되어가면서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이십 대의 나이에도 공부를 하는 사람들. 기약 없는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들은 언제 붙을지 확신이 없는 불투명한 미래를 위해 끊임없이 달려간다. 김애란의 소설집 <침이 고인다>를 읽으면서 자연스레 그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그만큼 김애란 소설집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불투명한 미래에 조금은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인물들이 족족 등장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자오선이 지나갈 때>라는 작품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는 도중 노량진에 있었을 당시에 일어났던 일들을 알맞은 플롯에 의해 담담히 서술하는 작품인 <자오선이 지나갈 때>가 그 다큐멘터리를 볼 때 느꼈던 감정과 가장 비슷했던 것 같다. 꼭 노량진에서 고시공부, 재수 준비를 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 소설집 안에 든 7편의 단편 속에는 다양한 것들을 통해 ‘경쟁’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침이 고인다>에서 주인공 인물은 학원에서 체육대회를 통해 경쟁을 하거나, 자신의 집에 눌러 붙은 후배와 알게 모르게 신경전을 벌인다. 또 <자오선이 지나갈 때>에서는 인기 강의를 듣기 위해 수많은 인파에 밀리면서 수강신청을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또 <성탄특선>에서는 성탄절 전날 모텔에 빈방을 구하러 다니는 이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이유를 가지면서 ‘경쟁’아닌 ‘경쟁’을 한다. 그래서 일까. 김애란의 작품을 읽다보면 인물들이 참으로 치열하게 산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이유가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김애란 작가의 작품 속 인물들은 하나 같이 지나치게 현실적이면서 평범하다. 말 그대로 현대 우리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텍스트 안으로 끌어들인 것 같다. 그러면서 그 나이 때, 혹은 그 시대 때 겪을 수 있는 이야기를 소설화 시키다 보니 자연스레 인물들이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느낌이 든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의 특징은 인물들이 치열하다는 점과 함께 정확하고 알맞은 플롯을 들 수 있다. 김애란 작가는 플롯을 정말 잘 이해하고 사용할 줄 아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한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좀 더 효과적이면서도 자연스럽게, 그러면서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김애란 작가는 플롯을 통해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 특이한 점은, 플롯을 그렇게 잘 다루다 보니 모든 소설들이 제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알맞게 짜인 플롯을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작가들의 플롯이 하나로 통일 되거나 몇 가지로 정형화되어 그것만 계속 사용하는 데 반해 김애란 작가는 그 소설에 어떤 플롯이 제격일지를 따져 사용한다.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더욱 더 절절한 느낌이 드는 것 같다. 물론 플롯을 잘 다루다보니 간혹 헷갈리는 경우도 있다. 과거와 현재를 너무 왔다 갔다 하는 식의 구성은 읽으면서 쫓아가는 입장에서 조금은 난해하고 피하고 싶은 플롯이긴 하다. 그런데도 그런 플롯 나름대로 추측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그것이 바로 <네모난 자리>다. 두 가지 비슷한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어디까지가 현재고 어디까지가 과거인지 헷갈리는 플롯을 사용한 텍스트다. 엄마의 이야기와 그의 이야기가 따로 진행되는 듯 싶다가도 이어지는 부분이 있어 읽으면서 꽤나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들은 앞에서 말했듯이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요즘 문학 판에서 말 그대로 ‘판’을 치는 판타지적 상상력을 쓰지 않고 김애란 작가는 88만원 세대, 고시생, 재수생 등을 전면으로 내세워 현실적인 상상력을 주로 사용한다. 그래서 김애란 작가의 작품을 읽다보면 분명 경쾌하게 말은 하고 있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무척이나 힘들게 살아가는 인물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들의 모습이 구차하다거나 불쌍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유의 발랄하면서 위트 넘치는 문체 때문일 수도 있지만, 좀 더 정확히 말을 하자면, 김애란 작가의 작품 속에 있는 인물들이 모두 청춘의 인물들이기에 그런 것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지나가거나, 지나 온 그 당시의 모습들이 텍스트 안에 잘 녹여져 있기 때문에 그런 인물들이 불쌍하다거나 비굴해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것 또한 김애란 작가의 작품 속에 담긴 공통점이 아닐까. 유복하지 않은 상황에서 태어난 인물들을 감성을 통해 드러내고, 그런 인물들을 위트 있게 그려내니 그런 상황들이 독자들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반어적으로 보이게 된다. 감성과 위트, 그리고 플롯의 활용도 등을 소설 텍스트에 정확하게 끌어와 사용하는 김애란 작가의 작품들이 앞으로는 어떤 식으로 나아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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