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스포일러 포함!> 

나는 내가 태어난 고장에서 평생을 보낼 줄 알았다. 이렇게 내가 태어난 고장을 떠나 다른 곳에서 학교를 다닐 거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물론 상상은 자주 해보았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학교를 다니면 어떨까 하는 상상. 그때마다 너무도 막연해 웃음이 나긴 했지만 말이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중편 소설 두 편중 한 편에서는 한 고장에서 사십 여 년을 산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그곳에서 부모님과 강아지,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한 여자와 평생을 같이 할 거라고 생각한다. 표제작인 <달에 울다>에서 등장하는 남자는 십대에서부터 사십대를 한 마을에서 살아온다. 그곳에서 한 사람과 부모님, 그리고 자신이 기르는 강아지가 죽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또 다른, 사과를 본다. 사과향과 사랑하는 여자, 야에코를 본다. 시와 소설을 넘나드는 문장 속에서 주인공이자 화자인 남자의 심리는 생각지도 못했던 묘사의 절정을 보여주는 문장으로 드러난다. 사계절에 빗대어 남자의 십대,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현재의 자신을 보여주는 구성은 그동안 봐왔던 여타의 소설과 분명히 다른 면이 있다. 현란한 묘사는 아니지만, 충분히 절제되면서도 화려한 문장 속에서 그 남자는 사랑을 하고,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보내고, 그 여자가 돌아와 끝을 맞는 부분까지 영상처럼 흘러간다. 어느 부분에서는 빠르게, 또 어느 부분에서는 느리게 흘러가는 구성은 정말 말 그대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게 한다.


마루야마 겐지를 처음으로 안 것은 <물의 가족>이라는 장편소설을 통해서였다. 그 소설도 이 <달에 울다>와 같이 시소설의 형식을 취하는 장편소설이었다. 이미 죽어 혼으로 떠도는 화자의 입을 통해 그 자신의 가족들 모습을 그려나가는 소설이다. 그 소설을 읽으면서 느꼈던, 문장에 대한 감정을 이 <달에 울다>를 읽으면서 좀 더 확연히 느낀 것 같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는 분의 추천으로 읽기 시작했던 <물의 가족>은 생각보다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물론 특유의 문장과 묘사법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마음에 들었지만, 생각보다 늘어지는 것 같아 지루했다. 사실 그러한 점이 <달에 울다>에도 드러나는 것은 사실이다. 표제작인 <달에 울다>는 조금 덜 그런데, 같이 실린 중편 <조롱을 높이 매달고>라는 작품은 큰 사건 없이 잔잔히 흘러가고, 인물에 대한 심리와 풍경 묘사가 주를 이루다 보니 자연스레 늘어지고 속도감 있게 읽히는 편은 아니다. 그나마 <달에 울다>는 지루해질 만하면 일어나는 일들로 비교적 속도감 있게 읽힌다. 물론 아무리 그래도 문장과 묘사가 주를 이루는 단편이다 보니 두 편 모두 여타의 서사가 빠른 소설보다는 더디게 읽힌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 <달에 울다>는 말 그대로 문장과 묘사의 절정을 보여준다. 어떤 것이 문장이고 묘사인지 우리들에게 제대로 보여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과장되게 말한다면 문장의 미학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 반면에 스토리는 조금은 빈약한 부분을 보인다. <달에 울다>에 등장하는 인물은, 촌장의 곳간을 털다 추격대에게 죽임을 당한 남자의 자식인 야에코를 좋아한다. 야에코는 자신의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자 어머니와 함께 마을을 떠났다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다. 그리고 사람들의 멸시를 받는다. 그리고 그 둘은 시간이 흘러 서로를 사랑하게 되고, 화자인 ‘나’의 아버지가 그 여자는 한 남자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여자라며 헤어지라는 말을 듣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결국 나의 아버지 말대로 야에코는 마을을 떠나고 그런 그녀를 나는 배웅한다. 그리고 다시 그녀가 돌아왔을 때, 나는 그녀가 눈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여기까지 본다면 전형적인 신파극이라 볼 수 있을 정도다. 크게 흠 잡을 만한 스토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엄청난 서사를 보여주는 스토리도 아니기에, 나는 이러한 문장과 묘사를 보여주는 데 오히려 더욱 효과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조롱을 높게 매달고>도 마찬가지로, 마을을 떠났던 남자가 다시 마을로 돌아와 겪는 일, 이라고 단 한 줄로 요약이 가능한 스토리다. 물론 결말에서 조금은 강하면서도 임팩트 있는 장면을 보여주지만 말이다. 이렇듯 어떻게 보면 굉장히 단순한 구조의 스토리를 이러한 문장과 묘사로 똘똘 뭉쳐 풀어내니 문장과 묘사력이 살면서 이야기를 뒷받침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자연스레 서사가 이야기를 끌고 가는 속도감 있는 소설과 달리 조금은 늘어지는 소설이 될 수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그런 소설에서는 문장의 맛을 볼 수 없지만, 이러한 소설에서는 한 문장 한 문장 생각하고 상상하며 읽는 재미가 있었다.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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