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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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하루키 소설 많이 읽은 사람들에겐 또야? 싶은 부분들이 있음(특히 주인공인 싱글 남성의 라이프스타일 등) 후반부도 역시나 모호하고 관념적임. 그렇지만 내 기억상(틀렸을 수도 있음) 하루키 소설 중 처음으로 눈물 흘리며 우는 주인공이 등장한단 것만으로도 읽을만 하다 생각함-입문용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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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울어서 꽃은 진다 창비시선 469
최백규 지음 / 창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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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시집 인상 깊었어요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 최백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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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
김이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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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디까지 곤두박질쳐야 다시 위로 치솟을 수 있을까. 한동안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던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나의 십대 시절이 대부분 이와 같은 생각으로 이루어졌던 것 같다. 나는 내가 살아온 삶에 만족하지 못했고, 누군가 나를 여기서 끌어올려주길 바랬던 것 같다. 일종의 신데렐라 콤플렉스와 같은. 그런데 그 생각은 이십대인 지금까지 따라붙고 있다. 그런 와중에 오랜만에 김이설의 책을 집어 들었다. 전작인 <나쁜 피>나, <아무도 말하지 않는 것들>을 통해 구축해낸 자신만의 세계관,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끝도 없이 소름끼치는 그러한 정서들이 이번 책인 <환영>에도 고스란히 바통을 이어받는 전해오고 있다.

 

김이설의 <환영>은 카피 문구인 “현실의 어디를 움켜쥐어야 벗어날 수 있을까”를 지극히 잘 표현해내고 있다. 윤영은 공무원을 준비하지만 무능력한 남편과, 아이, 그리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하는 엄마와, 민영, 준영까지 합해 총 다섯 명의 생계를 부양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물론 텍스트가 시작할 때부터 그렇지는 않지만, 전반에 걸쳐 결국 그녀는 자신까지 합해 총 여섯을 건사해야 하는 위치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윤영은 시와 도의 경계를 지나 왕 사장의 백숙집에 출근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아니, 과연 어쩔 수 없었을까? 매춘을 하게 되며 돈을 모으게 된다. 물가의 ‘별채’라는 공간은 한없이 부정으로 이루어진 곳이다. 그 안으로 밀어 던져진 순간, 윤영은 모성이 아닌,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또는 훗날 무능력한 남편을 대신해 자신의 고객과의 감정을 쌓아나가게 된다. 그리고 한없이 밑으로, 밑으로 떨어져가는 삶을 살아나간다. 생계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아이를 위해서 말이다.

 

언젠가, <환영>이라는 텍스트를 놓고 김동인의 <감자>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라는 칼럼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말이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이 두 편의 텍스트는 유사점이 많다. 생계를 위해 매춘을 하는, 그런데 매춘을 하다 보니 그게 생계의 문제로 이어지지 않고, 자신안의 내재되어 있던 욕정이라는 샛길로 새게 되는. 커다란 줄기만 놓고 보다면, 이 두 텍스트는 분명 유사점이 있다. 그런데, 다른 점이라면 <감자>의 주인공인 복녀는 결말에 이르러 자신 앞에 놓인 반항을 하였다면, <환영>의 주인공인 윤영은 받아들인다. 그리고 다시 일터로 향한다. 끝없는 부정이 이루어지는 그곳으로 말이다. 다시 시작이다, 라는 다짐 아닌 다짐, 결심 아닌 결심을 하면서 말이다. 텍스트를 읽는 내내 나는 윤영이라는 인물의 삶이 도대체 어디까지 내려가는 가에 대해 생각했다. 어디까지 내려가야 바닥이라 할 수 있을까.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내가 놓인 상황은 정말 말 그대로 복에 겨운 소리라는 결론이 나올 정도였다.

 

모성을 잃었던 윤영은 다시 잃었던 그 ‘모성’이라는 자신의 본질을 찾아낸다. 남편이 사고로 병원에 입원하고, 제대로 걷지 못하는 아이에게 죽을 먹이며 말하는 부분이 슬그머니 사라져버린 그 감정이 다시 돌아왔음을 드러낸다.

 

“걱정 마. 엄마가 평생 몸을 팔아서라도 네 다리 고쳐줄게.”(p164)

 

작년 봄에 한 번 읽었고, 이번에 다시 읽은 <환영>이라는 텍스트는 나에게 조금의 위로, 위안을 안겨주었다. 너 정도면 괜찮은 거라고, 그러니 안일하게 생각하지 말고 앞으로만 나가라고 말이다. 결말에 이르러 나는 어느새 이 윤영이라는 인물이 온몸에 불을 끌어안으며 견뎌내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가야 하는 이 여자. 지극히 너무도 비현실적이라 현실적일 것만 같은 물가의 그 공간. 그리고 그 안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는 이 여자. 시와 도의 경계를 알리는 표지판이 이 윤영이라는 인물이 여자와 엄마라는 이름을 가르는 경계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 공간들은 안타깝게도 이 주인공에게 너무도 많은 영향들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는. 끝으로,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나는 <환영>이라는 이름의 뜻을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최악으로 치닫는 삶에서, 도망치지 않고 수긍하며 다시 그 안으로 걸어들어가는 여자. 이 여자가 환영, 그 자체는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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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연한 인생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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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족 없이 곧장 본문으로 들어간다. 오랜 만에 은희경의 책을 읽는다. 아니 어쩌면 처음일 수도 있다. 몇 번 시도했지만 도저히 내가 따라가지 못했던 은희경의 소설들이 순간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다시 <태연한 인생>을 돌이켜본다. <태연한 인생>은 두 번의 시도 끝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첫 시도에서는 첫 류의 서사 부분만 읽고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해 덮어버렸었다. 그런데 다시 읽었을 때에는 그 부분이 술술 읽혀 흐름을 잡아갈 수 있었다. 이런 적이 몇 번 있었는데,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이후 처음인 것 같다. 이 책도 처음 읽었을 때에는 중반부분까지 읽고 내던졌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다시 읽었을 때에는 단숨에 읽어내려 갔다. <태연한 인생>이 그 뒤를 이어 내게 그러한 경험을 안겨 주었다.

 

 

<태연한 인생>을 읽으면서 가장 내 눈에 들어왔던 인물은 남자 주인공인 ‘요셉’이었다. 사실 처음에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그저 너무나도 독특한 ‘돌아이’라고 인식되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고 내가 아는 어느 시인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고, 왠지 그 시인이라면 요셉과 같은 ‘사상’을 가졌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요셉은 뭔가 독특하게 나를 끌어당기는 인물이었다. 왜 그럴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뚜렷한 결과가 나왔다. 결국은 내가 요셉이기 때문이다. 남이 잘나가는 것은 죽어도 못보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말을 바꾸기는 물론, 자신의 말보다는 남의 말을 인용하여 입을 연다. 보통의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무척이나 냉소적인 사람. 그런 내가 바로 요셉이다. 사실, 이런 유형의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도 그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로 통일되는, ‘요셉’과 같은 인간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자연스레 요셉에게 시선이 가고 그에 시선으로 이야기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었다.

 

 

나는 <태연한 인생>을 정리하자면 연애소설로 정리해보려 한다. 다만 달달하기만 연애소설은 아니다. 쓴맛이 있고 떫은맛이 있는 연애소설이다. 그 맛들은 일련의 에피소드들로 인해 촘촘히 배열되어 있고, 그 사이사이 수많은 ‘연애’들이 등장한다. 그것이 부도덕한 것이듯, 진정한 것이든 간에 말이다. 이 뿐만 아니라 내가 이 텍스트를 보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문장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가도, 다시 곱씹어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문장들이 곳곳에 나열되어 있었다. 그것이 과잉되지, 부족하지도 않게 말이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문장은 이 문장이었다.

 

 

“상실은 고통의 형태로 찾아와 고독의 방식으로 자리 잡는 것이었다.”(p72)

 

 

수많은 문장들 중에서도 이 문장이 나를 가장 <태연한 인생>이라는 텍스트 안으로 끌어들였다. 극장 안에서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려놓고 있던 어머니를 바라보던 류. 고통과 고독, 그리고 서사로 표현할 수 있는 <태연한 인생>이라는 텍스트를 가장 잘 표현해놓은 문장이라고도 생각했다. 내가 만약 이 책에 카피를 뽑았다면 이 문장을 뽑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우습게도 해보기도 했다.

 

 

<태연한 인생>은 유동치는 서사가 있다거나 하는 작품은 아니다. 그저 일정 부분을 뚝 떼어서 그 부분에 대해 묘사하는 소설이라 보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대신 그 부분을 설렁설렁 묘사하는 게 아닌, 오감을 이용해 묘사해낸다. 그래서 처음 내가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쉽사리 적응하지 못하고 곧바로 포기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야 말로 <태연한 인생>이라는 제목이 주는 가장 명백한 전개방식이 아닐까 싶다. 인생을 과연 오감 중에 단 한가지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그 누구도 그렇다, 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오감을 이용해, 무릎을 치게 만드는 문장으로 이어진 <태연한 인생>은 제목 그대로 인생이 태연하지 않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것은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누구나 느낄 가장 첫 번째 감상일 것이다. 오랜만에, 아니 거의 처음으로 읽은 은희경 작품이었는데, 무척이나 좋았다. 단숨에 읽을 줄은 정말 나 자신도 몰랐는데,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고통과 고독, 서사라는 이 세 가지에 대해 이전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가을, 누구나 읽어야 할 텍스트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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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아리 장편소설
전아리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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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특히 십대에는 누구나 한 번쯤 죄를 짓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그것은 맞는 말이었다. 나는 의도가 어쨌든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질렀고, 그것에 대해 아직도 일말의 죄책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죄를 지음과 동시에 따라붙는 죄책감과 두려움은 그것을 직접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상상도 하기 힘들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그 파급력 때문일까. 물론 나는 다시는 그런 죄를 지으려 하지 않지만, 그 죄를 아는 사람을 만나면, 아니 그 사람이 있을 법한 동네에 가기만 해도 왠지 꺼려지고 피하게 된다. 명백한 내 잘못이지만 그것이 도리어 나의 트라우마로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요즘 들어 하게 된다. 전아리의 <앤>은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다.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라기에 기대가 되었고, 카피가 마음에 들었다. ‘치명적 관계가 불러일으킨 파멸의 서사’라. 기대가 되었고 막상 펼쳐 읽었을 때에는 말 그대로 이전에 발표된 작품들과 판이하게 달라 조금 생소하기까지 했다.

 

 

우정으로 똘똘 뭉쳐 있는 아이들이 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실수로 엄청난 죄를 짓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감당이 안 되는데, 거기다가 그 죗값을 한 명이 다 받게 되었다면? 전아리의 <앤>은 이런 의문에서 시작된다. 다섯 명의 남자 아이들이 ‘앤’이라 불리는 여자아이를 실수라 하더라도 결국은 죽이게 된다. 그 결과 한 아이가 모든 것을 뒤집어쓰게 되고,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그 이후, 감옥에서 출소한 아이와 함께 다섯 명의 아이들이 모두 모였을 때, 서로를 끈끈하게 묶어왔던 우정에 금이 가게 된다. 해영, 재문, 유성, 진철, 기완은 말 그대로 절친한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실수로 ‘앤’을 죽이게 되고, 그 자리에 있다가 충격을 받은, 앤의 시녀노릇을 하던 주홍을 해영은 끝까지 지켜주기로 한다. 훗날 이 주홍의 정체는 말 그대로 팜므파탈의 모습을 보여주지만, 거기까지 이르기 직전까지 이야기는 모두 ‘죄’라는 하나의 큰 틀 안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갈등을 드러낸다.

 

 

모든 것을 각설하고, 가장 좋았던 것은 다섯 명의 인물들이 하나의 죄를 짓게 되고, 그로 인해 서로에게 상처 입히고 파멸해가는 모습을 속도감 있게 묘사해낸 전아리에 대한 것이었다. 이야기는 정말 속도감 있게 빨리 읽힌다. 그래서 인지 하루 만에 다 읽어버린 <앤>이었다. 또, 복선을 깔아두어 훗날 어떤 이야기로 이어지게 되는, 깔끔하면서도 간결한 고리를 무척이나 잘 활용해냈다. 인물들의 캐릭터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저마다 가지고 있는 가정사 등을 통해 제각각 살아 있게 표현해 내었고, 중간 중간 비중 있게 나오는 인물들이 결국 결정적인 일들을 해내지 않는다는 점 빼면, 스토리, 주제, 인물의 삼박자를 잘 표현해낸 작품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라면, 전체적인 큰 틀 안에서 보았을 때 이야기가 너무나도 판에 익은 듯한, 익숙한 기법으로 전개된다는 점이었다. 모든 죄를 뒤집어 쓴 한 아이가 성격이 바뀌어 도리어 자신의 친구들을 협박, 그 친구를 죽인다거나 보복을 한다는 설정 등이 반복적으로 드러나는데, 이전까지 여러 명이 등장하는데 ‘죄’라는 하나의 잘못을 똑같이 지은 소설들이 답습해왔던 방식 그대로 전개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여기서 한 발자국만 더 나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들었다. 그러다 ‘주홍’이라는 인물이 작가가 한발자국 더 내딛은 걸음이었나? 라고 생각했는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약하다는 생각이었다.

 

 

<앤>이라는 텍스트를 다 읽고 났을 때, 내 머릿속에 든 생각은 이야기가 장황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약소하게 펼쳐지지는 않았다, 무척이나 역동적이다, 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앤>은 분명히 다섯 명의 아이들이 십대 때 저지른 죄로 인해 하나하나 제각각 파멸해 가는 모습을 효과적으로 드러냈다. 물론 그 부분에 있어서 이전까지의 방법을 벗어나진 못했지만, ‘죄’라는 큰 틀 안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을 생생하게 포착해낸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다. 결말 부분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이 또한 효과적이었다는 생각이다. 또한 이전까지 전아리의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무척이나 다이내믹한 전개라 생각된다. 그리고 텍스트의 초반부분에서 모든 사건의 시작인 ‘비밀의 정원’을 묘사하는 부분을 잊을 수 없다. 말 그대로 머릿속에서 그대로 그려지도록 생생하게 묘사했다고 생각한다.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던 만큼 강렬했던 부분이었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좋았던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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